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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관찰 일기 쓰기 - 관찰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친해지는 법
클레어 워커 레슬리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자연은 온갖 소박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빛과 색의 향현, 공중에 맴도는 향기, 살갗과 근육에 와 닿는 태양의 온기, 꿈틀거리는 생명의 맥동이 느껴집니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하지만 인위적 자극과 쾌락이 도처에 널린 이 시대에 주의를 기울일 힘이나 의지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그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삶의 속도를 씨앗과 바위의 시간에 맞추고, 번잡한 자아를 가라앉히고, 계획과 조바심은 제쳐놓고, 그저 내 몸속에 존재하며 자아를 자연에 내어주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 로레인 앤더슨 <지구의 자매> / p53, 본문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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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워커 레슬리의 『자연 관찰 일기 쓰기』는 자연을 바라본 시선과
그때의 마음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일기이자, 잊고 지낸 삶의 감각을 천천히 되찾게 해주는 책이다.
자연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온몸으로 바라보고 손으로 기록하는 과정은 단순한 예술이나 과학을 넘어선 삶의 연습이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은 일종의 여행이다.
바깥세상의 계절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계절을 통과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어떤 감정이 스쳤고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일기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기록은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읽을 때, 잊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요즘 필사가 유행이다. 필사는 집중력을 높이고 문장력과 어휘력을 길러주는 동시에 글쓴이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을 차분히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자연 관찰 일기 역시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바라본 풍경을 단순히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손으로 그려보면 그 장면은 훨씬 더 풍성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길가에서 다람쥐나 달팽이를 보고 “귀엽다”고 지나치는 대신,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느낌과 감정을 함께 그림과 글로 남긴다면, 그 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이후 다시 그 기록을 꺼내 보게 된다면, 과거의 감정과 풍경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클레어 워커 레슬리는 1978년 2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페이지를 마주하며 시작했다. “무엇을 그려야 할까?”라는 막막함 속에서 출발한 그녀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살아왔다. 이 책은 그 오랜 시간의 축적이며, 관찰자의 눈과 손으로 세상과 소통해온 기록이다. 그녀가 쓴 55권의 일기장에는 아메리카개미핥기 둥지, 토끼의 배설물, 나뭇가지의 이빨 자국 같은 소소한 단서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그 흔적들을 통해 자연의 패턴과 생명의 흐름을 읽었고, 그 순간들을 다시 들춰볼 때마다 짜릿한 기쁨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연 관찰 일기를 예쁜 그림책쯤으로 여겨선 안 된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은 ‘잘 보려는 의지’이며,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도심 보도 틈새에 핀 잡초, 하늘을 떠가는 구름 한 조각, 나뭇가지 끝의 미세한 변화까지 모두 관찰의 대상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봤는가’보다 ‘왜 그것을 보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기록하는 태도다.
초판 서문에서 하버드 대학의 곤충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자연 관찰과 드로잉을 인간의 본성과 연결된 행위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 일러스트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창조의 과정이며, 사진이나 그래프가 담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즉, 관찰자의 시선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무엇이 가치 있는가’를 드러내는 창의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예술적 감각이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도심에 살든, 병상에 누워 있든, 나이와 배경, 건강과 무관하게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의 자연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관찰은 시작된다. 구름을 바라보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를 그려보는 것. 그 모든 것이 일기이고, 하나의 예술이 된다.
자연 관찰 일기는 삶의 감각을 되살리는 통로다. 프레더릭 프랭크는 “무언가를 똑바로 보려면 그것을 그려야 하며,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결국 하나”라고 말했다. 이는 존 버스티의 말과도 닿아 있다. 그는 “예술가의 눈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기계와 달리, 생각하고 집중하는 방향에 따라 초점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자연 관찰 일기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며 삶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연습인 셈이다.
이 책은 자연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그림을 잘 못 그려 망설이는 사람, 단조로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사람, 자녀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부모에게도 좋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풍경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자연 관찰 일기 쓰기』는 말한다. 자연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지식이나 도구도 필요 없다. 하루 20분, 창밖을 보며 귀 기울이고 펜을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진짜 돌아가야 할 현실은 스크린 너머가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가 속삭이는 바로 이 순간의 자연임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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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
자연은 온갖 소박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빛과 색의 향현, 공중에 맴도는 향기, 살갗과 근육에 와 닿는 태양의 온기, 꿈틀거리는 생명의 맥동이 느껴집니다. 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하지만 인위적 자극과 쾌락이 도처에 널린 이 시대에 주의를 기울일 힘이나 의지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그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삶의 속도를 씨앗과 바위의 시간에 맞추고, 번잡한 자아를 가라앉히고, 계획과 조바심은 제쳐놓고, 그저 내 몸속에 존재하며 자아를 자연에 내어주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 로레인 앤더슨 <지구의 자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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