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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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김연수 옮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시작된다. 이 책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처음부터 위엄 있고 매혹적인 여왕이 아니다. 아직 어린 소녀 같은 두려움과 상상력,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가 진짜 여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권력, 성장과 용기를 느낄 수 있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이 극은 클레오파트라가 어린 여인에서 진정한 여왕으로 성장해가는 여정을 카이사르와의 관계 속에서 정교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로맨스도, 고전적인 위인전도 아니다.

이 작품은 권력, 두려움, 성숙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연극의 무대 위에서 유려하게 펼쳐낸다.


작품의 문을 여는 1막은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클레오파트라가 피난처로 숨어든 스핑크스 근처에서 로마 장군 카이사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클레오파트라는 어린 소녀의 상상력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존재다. “그들은 야만인이에요. 그의 코는 코끼리의 코 같다고 해요”라는 대사에서는 로마군과 카이사르에 대한 과장된 공포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만남은 단순한 충돌이 아닌 전환점이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단호히 말한다. “그대가 피라미드 밑에 숨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곳으로 바로 가서 한 손으로 피라미드를 들어 올릴 거요.” 이 장면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의 존엄과 권력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극의 후반부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를 진짜 여왕이 됐어!라고 외치며 소란을 피우고,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카이사르에게 던진다. 이 장면은 그녀가 권력의 상징을 흉내 내려 하지만 진정한 여왕의 품격과 내면은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그녀를 시험한다.

“여왕은 카이사르를 홀로 대면해야 하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시오.”

카이사르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클레오파트라에게 프타타티타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대가 이 소리 때문에 죽겠다면, 그대는 여왕으로서 적합한 말을 해야 합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로마 병사들의 환호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며 성장의 첫 단계를 밟는다.


2막에서는 궁정 내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점차 정치적 자의식을 갖춰가는 모습이 드러난다.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닌, 전략과 지혜의 균형을 맞춰가는 그녀의 모습은 고전적인 ‘성장 서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진다. 카이사르와의 갈등과 협력은, 그녀가 그저 남성의 권력에 의존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3막 ‘그녀가 요람에서 깨어나다’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의지와 신념이 구체화된다. 왕권에 대한 감각, 민중에 대한 감정적 책임이 조금씩 그녀의 사고에 스며들며,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왕비’가 아닌 ‘자기 의지로 이끄는 통치자’로 자각한다.


4막의 ‘그녀를 현명하게 만드는 존재’는 카이사르라는 타인이 아닌, 고난과 선택이라는 자신의 경험이었음을 드러낸다. 이 막에서는 사랑도 권력도 모두 일시적일 수 있으며 오직 내면의 의지와 신념만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철학이 강하게 반영된다.


5막 ‘이집트에서 그대를 기다리다’는 클레오파트라가 스스로 선택의 자리에 서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로마로 떠나야 할 시점이 왔음을 알리고,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는 “그대를 위해 고귀한 로마인을 남겨두겠다”고 말하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언급한다. 이 인물은 역사적으로 클레오파트라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 인물로 저자의 희곡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장치로 활용된다. 이는 이 극이 단순한 이야기의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서사의 문을 여는 시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도, 자신이 익숙했던 보호와 지지의 자리에서도 이별한다. 하지만 그 이별은 끝이 아니라 자립의 시작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나라, 자신의 백성,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진짜 통치자로 성장했다. 이는 곧 진짜 여왕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외적인 권력만이 아닌, 내면의 자율성과 두려움을 뚫는 의지에서 비롯됨을 강조한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두려움과 사랑, 권력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말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안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시작으로 성숙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도 처음엔 두려움에 떨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통치하는 힘을 길러간다. 여왕의 진정한 자격은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선택하는 내면의 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바로 그 용기야말로 누구든 통치자이자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첫걸음임을 이야기한다.

'히스토리퀸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클레오파트라 : (아주 진지하게). 오, 그들이 우리를 붙잡으면, 그들은 우리를 먹어버릴 거예요. 그들은 야만인이에요. 그들의 지휘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이지요. 그의 아버지는 호랑이, 그의 어머니는 불타오르는 산이에요. 그의 코는 코끼리의 코 같다고 해요. (카이사르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기 코를 문지른다.) 그들은 모두 긴 코와 상아색 엄미, 짧은 꼬리, 각각 100여 개의 화살을 쥔 7개의 팔을 가지고 있대요. 그리고 그들은 인간 고기를 먹고 살고요.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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