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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해금이라는 낯선 악기로 삶을 연주하다.”
“예술은 특별한 이들의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다.”
김보미의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해금을 들고 세상 한복판을 걸어온 한 예술가의 고백이다. 이 책은 음악을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매뉴얼도 아니고, 화려한 성공담을 늘어놓는 자서전도 아니다. 오히려 서툰 손끝으로 하나의 악기를 붙잡고 버티며 흘려온 시간들을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음악은 늘 무대 위에서 반짝이지 않는다. 김보미가 들려주는 음악의 진짜 얼굴은, 연습실 구석에서 울고, 실수로 자책하며 버텨온 그 지난한 순간들 안에 있다.
어린 시절, 영화 『서편제』를 본 어느 날의 기억은 그녀의 삶 전체를 바꿔 놓는다. 이상하게도 아름다웠던 그 소리. 구불구불 질척거리는 음색 속에서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음악을 들으며 처음으로 울었던 그날, 그녀는 이미 해금이라는 세계의 문을 조용히 열고 있었다. “왜 이상하게 소리를 내는데 시끄럽지 않은 걸까?”, “왜 그 소리를 듣고 울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들은 어느덧 진로가 되었고, 예술이 되었다. 그날, 고사리 손으로 골라든 김소희 명창의 음반은 우연이 아니었다. 맑았다 흐렸다 하며 꽃비처럼 내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그날 이후 판소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 선택이 평탄할 리 없었다. 국악을 한다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해금을 한다는 건 더 큰 외로움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연습실에 틀어박혀 소리를 다듬고, 무대에서는 실수로 상처받으며 홀로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왜 하필 해금이냐”는 질문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 말 앞에서 그녀는 더 단단해졌다. 해금 안에 잠들어 있는 소리들을 깨우고 싶었고, 언젠가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닿은 곳이 바로 ‘잠비나이’였다. 록과 국악, 낯설고도 강렬한 조합 속에서 해금은 다시 태어났다. 2013년 핀란드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 무대에서 그들의 가능성은 처음 세계에 각인되었고, 이후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넘나들며 수많은 무대를 누비게 되었다. 프랑스 헬페스트, 스페인 프리마베라, 미국 코첼라, 영국 글래스톤베리…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 해금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요하고도 격렬한 음색으로 해금은 낯선 청중의 심장을 흔들었다.
그중에서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는, 멤버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고 한다. 인내와 고통의 시간에 비해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무대의 환희는 너무 짧지만, 그 순간 이전과 이후의 삶은 분명 달라져 있다. 그 농도 짙은 무대 경험은 그녀에게 ‘뮤지션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녀는 “예술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길가의 돌 틈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해금을 들고 자연 속에서, 삶의 틈에서 마주한 예술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것들을 더 깊이 바라보는 시선이고, 살아가는 태도였다. 그러니 음악을 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산다는 일과 다르지 않다. 결국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닮아 있고, 사랑과 감정은 소리로 이어지는 법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그녀가 참여한 잠비나이의 곡 ‘온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대가 지내온 아픔들이 빛나는 축복의 별이 되어 온다.” 이 가사는 투어 밴 안에서 지쳐 잠든 멤버들을 보며 만든 곡이라 한다. 그 노래는 단지 밴드의 경험담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향해 달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응원가가 된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그래서, 음악가를 꿈꾸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에 지친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다. 해금이라는 낯선 악기가 들려주는 이 조용한 고백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음악을 한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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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익숙한 세계가 깨지면 보통은 두 가지 결론이 난다. 찬란히 아름답거나 대단히 위험하거나, <서편제>에서 만난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는 압도적으로 전자였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왜 소리를 저렇게 내는 걸까? 왜 이상하게 소리를 내는데도 시끄럽지 않은 걸까? 소리가 구불구불 질척거리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나는 울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오로지 혼자 부르는 그 노래가 자꾸 가슴을 할퀴고 갔다.초등학생의 인생이랄 것에 무슨 설움이 그리 많겠냐마는, 겪지도 않은 인생의 굴곡을 소리 안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의 아픔이 얹힌 소리에서는 때때로 통곡이 섞여 나왔다. 내가 생각하던 아름다운 소리의 기준, 그 정반대의 길로 소리꾼은 내 멱살을 잡고 거침없이 달렸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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