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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0 세트 - 전20권 (반 고흐 에디션) - 박경리 대하소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품절

#도서협찬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필사단 #다산북스출판사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제5권은 ‘북국의 풍우’라는 부제처럼,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인간들이 흔들리고 고뇌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권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게 다가온 장면은 길상과 상현이 술집에서 나눈 대화였다. 그들의 말 속에는 단순한 옛 친구 간의 회포를 넘어선 시대의 긴장과 인간 내면의 갈등이 겹겹이 쌓여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메시지가 그 대화 안에 압축되어 있었고, 길상의 독백은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또렷하게 비춰 주었다.
길상은 서희와 함께 용정촌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 그곳에서 상현과 다시 마주한다. 둘은 과거 최참판댁과 함께한 인연 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다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상현은 이제 세상과 타협해 현실적 입지를 다진 지식인이고, 길상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과 ‘주인에 대한 도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이들의 대화는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말끝마다 부딪히는 가치관의 충돌이 뼈마디처럼 느껴진다.
길상은 술잔을 기울이며 말한다. “빈터가 즐비하니 생겨날 건데, 거간이라고 공치라는 법이 있겠소? 망하는 사람이 있어야 흥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겠소?” 이 말에는 시대의 냉혹함에 대한 체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체념은 그가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길상은 단순히 ‘충직한 머슴’이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그는 권력과 출세라는 껍데기보다,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상현은 그런 길상을 불편해한다. 그에게 길상은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 고지식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되묻는다. 과연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더 깊은 삶인가.
길상의 독백은 이 모든 질문을 껴안는다. 그는 상현과 헤어진 뒤 홀로 술잔을 마시며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게,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오이다. 그렇다고 무슨 뜻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린 왜 이렇게 괴롭고, 왜 이렇게 붙들고 사는 것일까…” 이 말은 단순한 회한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명확하게 삶을 바라보고 있고, 그 안에서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고 있다. 흔히 대하소설에서 조연으로 치부될 법한 길상이지만, 이 장면에서 그는 누구보다 강한 주체로 부상한다.
『토지』는 단순히 땅의 소유를 다투는 이야기나,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배경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뿌리’를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것이 땅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내면의 어떤 신념일 수도 있다. 길상은 그것을 잃지 않으려 했고, 상현은 그것을 효율적 삶과 바꿨다. 그 누구도 완전히 옳거나 그르지 않지만, 독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은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권력은 오르내리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만이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토지』 제5권은 그 거대한 서사의 중간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길상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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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다산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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