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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 : 유럽 편 - 5,000년 유럽사의 흐름이 단숨에 읽히는 ㅣ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
저스티스(윤경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평점 :

세계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거대한 이야기다.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는 그 이야기를 단절된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각각의 문명과 인물, 사건을 낱개의 정보로 나열하지 않고, 시대와 시대를 잇는 다리처럼 연결하며 설명해준다. 마치 두꺼운 교과서에 묻혀 있던 역사의 숨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긴 서사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인류 최초의 문명에서 시작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단지 오래된 유산이 아니라, 이후의 그리스·로마 문명, 나아가 고대 유럽 문명의 토대가 된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탄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문자를 발명하고 60진법과 태음력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훗날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고대 수학자들에게 이어진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통해 농업과 도시 문명을 발전시켰고, 미라 제작과 피라미드 건축을 통해 의학, 천문학, 수학 등의 지식을 쌓아갔다. 이 지식들은 고대 유럽에 전해져 과학과 철학의 기초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유럽은 기독교가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교황 중심의 체제로 들어선다. 중세 서유럽에서 교황은 종교 지도자를 넘어 정치, 군사, 세금까지 장악한 실질적인 권력자였다. 반면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강력한 권위를 유지했다. 이런 두 축의 긴장 속에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의 야심은 프랑크 왕국과 교황이 손을 잡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렇게 역사는 다시 방향을 튼다.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카롤루스 대제다. 그는 프랑크 왕국을 하나로 통일하고 서유럽 전체의 질서를 재편했다. 교황은 그에게 서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씌우며 교회와 제국의 이중 권력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제국은 분할되었고, 베르됭 조약을 통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뿌리가 형성된다. 통일이 새로운 분열을 낳고, 그 분열이 오늘날 유럽의 지도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후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교류를 열었고, 그 결과 유럽은 고대 문명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중심에 선 곳은 이탈리아였다.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지식과 미술을 재발견했고, 그렇게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 시기는 단지 예술의 부활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사고와 이성의 힘을 회복하려는 ‘정신의 혁명’이었다.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인본주의가 있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자유, 존엄,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간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자 주체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사상은 미술, 철학, 과학, 정치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인문학자 에라스뮈스는 당시 교회의 부패를 꼬집으며 신앙의 본질을 물었고,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하며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밝혀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는 실험과 계산을 통해 세계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려 했고,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고민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인간 내면의 모순과 욕망을 풍자적으로 풀어내며 근대 문학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꽃피운 시대였다. 그것은 단지 문화의 변화를 넘어, 권위 중심의 중세 질서를 흔드는 움직임이었다. 그 결과, 교회는 점차 권위를 잃어갔고, 사람들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로 나아갔다. 이런 흐름은 결국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며 근대 유럽의 문을 여는 결정적 토대가 된다.
14세기 초 아비뇽 유수 사건은 그런 변화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교황청이 프랑스 왕의 압력으로 로마를 떠나 아비뇽으로 옮겨가자, 교회의 독립성과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는 교회의 말만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신앙은 다시 고민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은, 근대 유럽, 특히 러시아 제국의 근대화와 혁명으로 향한다. 농노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빈곤, 전제정치의 강화, 러일전쟁의 패배와 경제적 불안은 결국 민중의 분노를 키우게 되었고,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변모한다. 이는 단지 러시아만의 일이 아니라, 이후 20세기 세계사의 축이 이동하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다.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과거의 사건들을 따로따로 설명하지 않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연결해서 보여준다. 각각의 문명과 인물, 전쟁과 변화는 모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세계사는 외워야 할 어려운 지식이 아니라, 오늘의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데 이 책만큼 친절하고 명쾌한 책도 드물다. 역사에 흥미가 없었던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세계사의 큰 흐름을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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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믹스커피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테오도시우스 1세 집권 시기부터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여 서유럽에선 자연스럽게 교황이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권력을 장악했죠. 당시 성경은 매우 귀했습니다. 대다수의 백성은 문맹이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죠. 그러니 백성은 자신의 삶과 신앙의 규범을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직자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직자의 해석과 가르침이 곧 성경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졌고 자연스레 성직자들은 막강한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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