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사 - 멸망으로 시작해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5,000년 역사 이야기
조경철.조부용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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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자리다.”


 우리는 대개 한국사를 ‘시작되고, 번성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흐름으로 배운다.

고조선이 세워지고, 삼국이 흥하고, 고려가 다시 나라를 세우고, 조선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역사의 중심은 언제나 ‘건국’에 찍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경철, 조부용의 『거꾸로 읽는 한국사』는 그 익숙한 흐름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책은 나라가 사라진 뒤, 그 빈자리에서 꺼지지 않고 이어졌던 이야기에 집중한다.

한마디로, ‘멸망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다.


책은 “나라가 망하면, 그걸로 정말 끝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조선이 무너진 후에도 그 문명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백제와 고구려가 패망한 이후에도 복원을 꿈꾼 사람들이 존재했다.

조선이 쓰러진 뒤에도, 우리는 일제에 맞서 싸웠고, 결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이 책은 그 ‘끝 이후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역사란 단지 시작과 끝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바로 그 사이에서 몸을 던진 이들의 시간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진짜 이야기라고 말한다.


책의 목차를 처음 펼쳤을 때, 각 장이 ‘첫 번째 편지’, ‘두 번째 편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 편지글 형식을 따랐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편지—인삿말이나 회신이 오가는 글—형식은 아니었다. 대신 마치 독자에게 말을 걸 듯, 정성스럽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야기 중간중간 던지는 질문들이 인상적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한 걸음 멈춰 서서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그 덕분에 책을 읽는 일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이 된다.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멸망 이후의 시간도 역사다.”

우리는 흔히 한 나라가 망한 뒤의 시간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역사의 중심 서사에서 밀어내곤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자리에 남겨진 이들의 삶을 다시 불러낸다.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지켰던 이들, 

무너진 터전 위에서 다시 시작을 꿈꿨던 존재들을 복원한다.

역사는 단지 승자의 이야기, 권력의 기록이 아니다.

그보다는 패배와 부서짐 이후에도 묵묵히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특히 고조선 멸망 이후의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통 우리는 고조선이 무너지고 곧장 고구려로 이어졌다고 배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유민의 이동, 공동체의 재편, 타 민족과의 충돌 같은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들이 존재한다. 이는 단지 다음 나라로 넘어가는 중간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역사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사이의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거꾸로 읽는 한국사』가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협업으로 탄생한 책이라는 점이다.

조경철은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정통 역사 교육과 연구를 기반으로 한 서사를 제공한다. 반면 조부용은 영화와 책을 소개하는 에디터 출신으로, 역사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나만의 한국사 편지> 뉴스레터를 연재했고, ‘유물시선’ 팀을 통해 유물과 역사를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해왔다. 이러한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나, 이 책은 학문적인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와 구성으로 채워졌다.


이들의 글은 특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잊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면, 그걸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야말로 역사공부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저자들의 질문처럼 이 책은 독자와 함께 질문하고 함께 사유한다.

역사란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사건의 목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선택, 그리고 남겨진 자취들이 엮인 서사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읽는 한국사』는 단지 다르게 보는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승리와 번영만이 아니다. 

오히려 좌절과 실패의 뒤편에 남겨졌던 이야기야말로 지금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기억하는 멸망(실패) 이후의 시간은 어떠하였는가?”


책장을 덮고 나면, 역사책을 한 권 읽었다기보다 오래 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들은 기분이 든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도, 누군가는 살아 있었고, 역사는 그 속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거꾸로 읽는 한국사』는 기억을 되살리는 책이다.

식상하지 않게, 교훈만 전하지 않게, 단단하고도 따뜻하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역사는 멈추지 않았다. 무너진 자리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클랩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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