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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평점 :

아즈텍 연구를 이끄는 권위 있는 역사학자인 ‘캐럴라인 도즈 페넉’은 이 책 ’야만의 해변에서’를 통해 인디저너스의 문화, 공동체, 부족민, 개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어떻게 불려야 할지에 대해 꽤 구체적이고도 정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용어들 중 무엇도 보편적이지 않다.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에서 인디저너스들은 스스로를 ‘푸에블로스 인디헤나스’(Pueblos Indígenas), 즉 ‘토착민들’이라 칭하며, ‘인디오’라는 말은 누군가를 ‘무식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모욕적인 표현으로 간주한다. 브라질에서는 아직도 ‘인디오’가 흔히 쓰이지만, 국제기구와 학계에서는 ‘인디저너스’라는 표현이 가장 중립적인 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용어 선택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이야기를 쓸 권리를 갖는지, 누가 주체이고 누구의 역사가 서술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정치적 문제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 한다. 이 책은 전통적인 식민주의적 역사 서술에서 지워졌던 인디저너스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다시 역사를 구성한다. 그들은 유럽으로 간 ‘야만인’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세계를 ‘발견한’ 이들이었으며, 오히려 유럽 문명의 이면을 가장 먼저 목격한 선구자들이었다.
이 책은 유럽 궁정에 불려간 토토낙족, 아즈텍, 잉카 출신 인디저너스들의 사례를 따라간다. 어떤 이들은 ‘선물’이 되어 보내졌고, 어떤 이들은 통역사나 공연자로 활용되었으며, 때로는 제국의 전리품처럼 전시되었다. 스페인 왕실에 선물로 바쳐졌던 보물에는 금과 보석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존재는 역사의 주변부에 밀려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또한, 1520년대 브뤼셀 궁전에서 전시된 인디저너스의 무기, 옷, 일상용품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다. 유럽인들은 이들을 통해 자신의 문명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물과 인간을 하나의 전시물로 통합시켜버렸다. 예술품으로 거래된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오점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문화적 약탈과 시선의 폭력에 대한 반성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인디저너스는 단지 유럽 제국의 정복과 확산에 희생당한 존재가 아니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세계사의 동력이 되었는지를 과학, 정치, 예술, 무역의 영역에서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유럽에서 벌어진 무역과 외교, 예술 교류의 시작점에 인디저너스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에게 거의 들려지지 않은 진실이다. 특히 초기 유럽 탐험가들과 함께 유럽을 방문했던 이들의 여정은 단지 ‘전시’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교류의 기점이었다.
그들의 발자취는 남아메리카 대륙 곳곳의 교회 벽화, 유럽 궁정의 예술품, 종교적 의식, 의복, 심지어 농작물 교역과 미각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흔적이 ‘유럽 문명의 영향력’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며,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지워졌다는 데 있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잊혀졌던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책이다. 단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지금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짚게 만든다. 이 책은 그저 또 하나의 식민지 역사 연구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하나하나 되살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누구의 이야기로 만들어졌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의 인디저너스 공동체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그 투쟁의 역사를 오늘의 독자에게 연결해 보여준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단순히 과거를 읽는 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세계를 믿고, 어떤 목소리를 듣고, 어떤 이름을 기억할 것인지를 되묻는 역사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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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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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포카혼타스"라고 잘못 알려진 여성의 이름은 마토아카다. 그녀는 22세가 되기도 전에 영국에서 사망 했는데, 그녀의 정체성은 400년 동안 이용당하고, 허구화되었으며, 착취되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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