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4 - 5호16국과 남북조시대 미술 중원과 변방의 충돌, 새로운 중국이 태동하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4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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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감상평 먼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중국 미술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훼손되거나 마모되어, 세부를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그림의 원형을 일러스트로 재구성하여 함께 제시하고, 설명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덕분에 복잡하거나 낯선 장면도 보다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작품에 대한 몰입도 또한 높아졌다.

 또한, 본문의 곳곳에는 저자의 짧은 코멘트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문득 떠오를 법한 의문들을 저자가 먼저 짚어주며, 전문가로서의 통찰과 개인적인 사유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는 독자와 저자 사이에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주며,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단단한 학문적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고전 미술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생생하고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렵고 멀게 느껴졌던 동양 미술이 한층 가까워졌고, 그 과정을 통해 얻는 지적 즐거움 또한 크고 깊었다.


***


경주의 박물관에서 마주했던 옛 벽화와 유물들 앞에서 나는 늘 무덤덤한 관람객이었다. 사람들은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설명문을 읽었지만, 나는 그저 대충 훑고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찬란한 문화재도 내 눈에는 낡고 먼지 쌓인 물건처럼만 보였고, 고분 벽화나 불상조차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참 아쉬운 일이다.


그러던 내게, 우연히 펼쳐든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4』는 뜻밖의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엔 고대 미술 이야기가 어렵고 지루할 것 같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아 겁부터 났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는 의외로 술술 풀렸다. 딱딱하고 학문적인 느낌은 없었고, 마치 박물관 해설사가 곁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친근함이 있었다. 글 곳곳에 저자의 질문과 코멘트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미리 짚어주고 답해주는 점도 매우 인상 깊었다.


이 책은 3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중국 미술, 특히 북방과 남방에서 펼쳐진 미술의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시기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교역이 활발하던 시기로, 페르시아와 로마에서 온 외래 문물이 중국에 밀려들어오던 때였다. 북방의 유목민들과 소그드인 같은 이민족들이 남하하며 중원에 정착했고, 이 과정에서 한족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5호(五胡)’로 불리는 북방의 다섯 이민족이다. 그들은 마치 굳은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중국 문화를 뒤흔들었고, 미술 또한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했다.


특히 이들이 받아들인 불교는 미술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인도와 서역의 고승들을 초빙해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석굴사원과 불상, 벽화 등을 조성하면서 한나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교 미술이 형성되었다. 이민족의 개방성과 문화적 다양성은 불교 미술을 더욱 풍부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한편, 북쪽에서 밀려난 한족은 남쪽에서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새로운 자연관을 바탕으로 산수화를 개척했고, ‘그림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는 화론(畫論)을 발전시켰다. 또 남방의 풍요로운 자원을 활용해 도자기 기술에서도 눈에 띄는 성취를 이뤘다. 북방과 남방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예술을 개척하며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형성해 갔다.


이처럼 이 시기는 ‘한족과 이민족의 충돌과 융합’, 혹은 ‘남과 북의 개척 시대’라 불릴 만큼 역동적인 변화를 품고 있다. 삼국 시대에서 5호 16국, 남북조 시대로 이어지는 이 격동의 시기에,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예술 속에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담아냈다. 책은 그런 시대의 미술을 통해 우리가 단순히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의 생각, 그리고 변화의 힘을 함께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한 ‘계세적 내세관’이라는 개념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죽은 뒤에도 생전의 지위와 삶이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유로, 한족의 무덤 미술 전통에 깊이 스며 있다. 그래서 무덤 안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내세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상상한 ‘생활풍속도’가 그려졌다.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며 잔치를 벌이는 장면, 음악과 춤, 사냥과 기마 행렬까지—이 모든 장면은 저세상에서 다시 이어질 삶을 예비하는 시각적 장치였던 것이다.


정가갑 5호분 벽화에서도 그러한 장면들이 뚜렷이 나타난다. 저자는 그림 속 인물들의 배열과 구도를 통해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권력 구조와 세계관이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를 세심하게 짚어낸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 한 장이 하나의 완성된 세계처럼 느껴진다.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훼손된 고대 그림들을 일러스트로 복원해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다. 덕분에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생각과 의문을 녹여낸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읽게 만든다. 동양 고대 미술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놀라웠고 반가웠다.


그동안 나는 미술을 눈으로만 봐왔다. 감상이라는 이름 아래 단지 겉모습을 훑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림은 읽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느낀다. 그림은 이야기이고, 기록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4』는 단지 동양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그 그림을 통해 내 삶과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준 책이다.


앞으로 다시 박물관에 가게 된다면, 나는 아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고분 벽화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벽화 속에서 사람을 찾고, 삶을 읽고, 사유를 떠올리며 조금 더 천천히, 더 오래 머무를 것이다. 동양 미술이 이렇게까지 흥미롭고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이 책이 내게도 참 다행스러운 만남이었다.



'사회평론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신라 천마도는 그림 속 천마의 정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유물입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적외선 촬영 결과, 천마 정소리에 뿔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은 더 가중됐죠.
아래는 당시 적외선 촬영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천마도예요. 천마 정수리에 커다란 뿔이 보이나요?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신라 천마도가 중국의 기린을 그린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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