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그림 - 매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명화의 힘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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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을 떨치기 위해 앞만 보고 십수 년간 일만 해온 탓일까? 저자는 어느덧 긴장에 중독된 사람이 되었다. 쓰러질 만큼 피곤해도 푹 쉬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는 상태.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일이었다. 그저 하루라도 더 열심히 살고자 애썼을 뿐이었다.


 저자는 마흔쯤 되면 초연해질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언제나 의젓하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줄로 믿었지만, 이제는 안다. 마음 한편에는 여린 꼬마가 여전히 웅크려 있고, 그 옆에는 세상 모든 것이 서툰 청년이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인생의 이치에 실망감이 밀려올 때면, 예술을 통해 마음을 다독여왔다고 한다.


 10년 넘게 위대한 화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남긴 작품을 바라본 덕일까. 처음엔 그들의 인생이 마냥 비범해 보이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인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작품 또한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괴로움, 고통, 외로움을 견디고 극복하려 몸부림친 흔적이었다. 그런 작품들은 당시 저자의 상태를 비춰주는 창이 되었고, 동시에 영감과 위로,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하메르스회(Hammershøi)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마치 갑갑한 터널을 걷는 듯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알폰스 무하의 삶을 전해주고 싶다. 무명 시절을 성실함으로 견뎌내고, 결국 <지스몽다> 포스터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며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여정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가업을 등지고 공방을 차린 후 꿋꿋하게 버티는 사람에게는 폴 세잔을 소개하고 싶다. 가족과 동료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고 고유한 길을 개척한 그는, 결국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런 세잔의 삶이 어떤 이에게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하나하나 말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글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렇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여덟 편의 편지로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반갑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었다. 10년 전,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8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관리비가 싸다는 이유로 8년을 그 집에서 지냈지만, 햇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는 우울감을 더욱 크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그림으로라도 햇빛을 들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게 된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의 <볕을 쬐는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시골 들판에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햇살을 쬐는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은, 보자마자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그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실제로 햇빛이 그리울 때나 우울함이 밀려올 때면 이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림 하나가 내게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에드워드 호퍼를 포함하여 이 책에는 총 18명의 작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지금 삶이 버겁고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떤 책은 읽기도 전부터 ‘평생 소장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책을 보자마자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책 표지에 실린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그런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읽고 난 후에도 책장 속에 오래도록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책으로 남게 되었다.


'우주북스타그램 @woojoos_story' 모집,

'빅피시 출판사 @zmanz_classic'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주북스타그램 인스타 @woojoos_story


성공의 반열에 오른 호퍼는 이후 이렇다 할 부침을 겪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밀도가 더 높아졌고, 깊이 또한 더 깊어졌다. 1961년, 생의 말년을 맞은 호퍼는 <햇빛 속의 여인>을 그렸다. 그의 후기작 중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자, 나비슨을 모델로 한 대표 작품이다.

그림 속 여인이 햇살 아래에 홀로 서 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창문을 바라본다. 여전히 호퍼 특유의 쓸쓸함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그보다 강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용기와 희망의 공기다.

그녀의 표정은 <자동판매기 식당> 속 여인보다 단호하고, 자세는 <아침 해> 속 여인보다 당당하다. 위로받고 치유도 마쳤다면, 그래서 재차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림 속 그녀처럼 어디 한 번 굳건히 맞서보자는 듯하다.

아쉽게도 세상은 당분간 더 삭막해지고, 더 딱딱해지기를 반복할 듯하다. 그럴수록 호퍼의 존재감 또한 커질 게 분명하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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