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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법 - 헤르만 헤세의 그림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은주 옮김 / 국민출판사 / 2025년 3월
평점 :

헤르만 헤세는 우리가 사랑하는 문학가이다. 그의 유명한 저서 『데미안』이나 『싯다르타』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으로, 삶과 존재를 묻는 철학적인 문장들이 담겨 있다. 비록 얼마 전까지 헤르만 헤세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 책에서 헤세가 그린 그림 몇 점을 볼 수 있었지만 많은 그림을 접하지는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책 『헤르만 헤세의 그림여행 색채의 마법』을 통해 헤르만 헤세의 그림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림 뿐만 아니라 그의 솔직한 에세이 글과 자작한 시까지 모두 아우르며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헤세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헤세의 그림이 단순히 취미 활동의 결과물이 아닌, 그가 삶을 바라보는 모습, 삶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는 헤세가 남긴 다양한 수채화들이 담겨 있다. 알프스의 작은 마을, 햇살이 부서지는 골목, 붉게 물든 가을 산책길… 그의 수채화는 정교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더 깊숙이 파고든다. 그의 그림에는 밝은 색채가 돋보이는데, 그가 머물던 풍경이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자연의 경이롭고 평온한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은 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그의 색채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그림과 나란히 놓여 있어 더욱 특별하다. 문장마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 삶의 고단함 속에서 찾은 한 줌의 위안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이 글들 속에서 화려한 수사 없이, 그저 솔직한 어조로 자신이 왜 그림을 그리고, 왜 자연으로 향했는지를 말한다. 그 고백은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친구와의 짧은 편지처럼 다정하다. 덕분에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 안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헤세가 그림을 그리러 나설 때마다 항상 간이 의자를 챙겼다는 사실이다. 그 의자는 그에게 단순한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휴식처이자,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작은 의자 위에서 몇 시간이고 말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붓을 통해 장면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책이나 세상의 일, 철학적 사유마저 잠시 내려놓고 색채가 주는 온기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시간이었을 테다. 간이 의자는 그에게 ‘멈춤’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나가는 계절과 무심코 흘려 보내는 감정들. 헤세는 그 작은 의자 위에서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고, 감정을 붙잡앗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잘 그렸다’는 말보다 ‘잘 머물렀다’는 말이 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색과 선 하나에도 시간과 그의 침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의 그림여행 색채의 마법』은 그림이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가 고요한 시간 속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없는 시간으로, 잠시 동안 말을 멈추고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바람을 느끼고, 빛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가 숨통 조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힐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쉼표의 시간을 선물한다. 일상에 지친 마음이 잠시 머물다 가기에 좋은 시간을 선사한다. 헤르만 헤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종종 작은 시간을 내서라도 자연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삶을 힘들고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헤르만 헤세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느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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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국민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느지막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햇살이 비치는 날의 한낮 시간을 누려야지요. 이 시간은 우리의 것입니다. 이때는 햇살이 우리를 따사롭게 품어주기 때문에, 풀밭이나 낙엽 위에 누워서 겨울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까운 산들에 눈 쌓인 새하얀 길들이 아래로 뻗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히스(Heidekraut, 황무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류다.)나 시든 밤나무잎 사이에서 몇몇 생명체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작은 뱀이나 고슴도치 같은 것들이죠. 여기저기 나무 밑에는 마지막으로 떨어진 밤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사람들이 주워다가 저녁에 난롯불에 구워 먹기도 합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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