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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평소에 인권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가끔 언론에서 다루니 문제성을 인식하기도 했지만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매일 나와 같이 밥 먹고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인권'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자식한테 무슨 그런 잣대를 들이대냐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니가 뭘 알아!'", "하라면 하지 말이 많네!" 아동 학대까지는 안가도 비슷한 수준의 언어 폭력은 평범한 가정에서 흔히 일어난다. 사회가 개인화 되고 이웃과의 교류도 예전만 못하면서 이러한 가정내의 부모에 의한 아이의 인권 유린은 다양한 형태로 더 많이 생길것이다. 가끔 아이 학교의 문제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금 사회가 이런 사회다.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도 그리 썩 잘하고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개성말살에는 학교가 으뜸인 듯 하다. 또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 대해 학교가 얼마나 그 아이들의 개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주변을 보고 판단해보면 결국은 개인의 문제, 그 가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 학교, 이웃은 방관자적인 입장이 되고 있다.
영화 <오아시스>에 나타난 장애인 인권문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영화를 봤다면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놀라웠다. 감독과 배우조차 놓쳤으니 평범한 관객은 모를 수 밖에. 이런 일이 일상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한국 사회는 너무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모르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유난히 심하다. 동네나 거리에서 다운증후군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 많지 않아서? 아니라고 본다. 일본에서 부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운증후군 아이를 데리고 쇼핑다니는 모습을 많이보았다. 부모도 아이도 표정이 무척 밝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들이, 아이들이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아니,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장애인 시설은 발붙일곳이 없다는 기사는 단골기사가 되어 "또?"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이런 소리한다 할지 모른다. 인간은 얼마나 더 이기적일 수 있을까.
한국 드라마에는 정말 따귀 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따귀가 아니더라도 '막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인기있는 드라마들은 전부 "쎈" 장면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보면서 왜 좋아할까.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일까? 드라마에서의 그런 장면들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이 보기때문이다. 도대체 왜 아이들과 같이 막장드라마를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거야말로 '티없이 해맑고 건전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다. 부모들이여 각성하라.
인권이라는 말자체는 무겁고 딱딱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도 인권은 숨쉬고 있다. 인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책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거야." 이것이 인권이다.
▷ 마음에 드는 구절
p. 18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p. 23 아무리 돈 많고 성공했어도 딸에게 "니 인생 자체가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아버지가 아닙니다.
p. 25 사람은 영혼을 가진 묘한 존재여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달되는 메씨지가 있습니다.
p.32 부모들이 자기 아이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심과 이중적 태도부터 버려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교육 개혁 시도도 늘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p.46 자연스럽게 분출하게 놓아두면 1~2년 안에 지나갈 수 있는 것을 억지로 누르니까 사춘기가 30~40년 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p.60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국 섹스를 통해서입니다. 동성애의 핵심인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 이성애자들은 '다름'의 본질을 직면하고 불편을 느낍니다.
p.70동성애자를 차별하려면 우선 어떤 사랑이 다른 사랑보다 우월하고 가치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증명도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p.79 제 주변에도 커밍아웃을 놓고 고민하는 게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 중에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고통스런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눈을 뜬 사람들이 많습니다.
p.79 누군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를 준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p.101 제가 살아오면서 보거나 당한 폭력의 느낌을 이렇게 정확하게 전달한 영화는 <똥파리>가 처음이었습니다.
p.107 박민규의 말처럼 "단언컨대, 인류는 단 한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항해주지 않았습니다."
p.131 효과적으로 다듬어진 시각적 무기가 인종주의를 북돋우며 여성과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 거슬릴 수 있는 영화 - 영화 <300>
p. 140 홈즈에게 오점을 남긴 이 판결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성인 사람이 열성인 사람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불임시술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는 이상한 믿음은, 히틀러 같은 한두 미치광이의 마음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지던 시대의 조류였습니다.
p.161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p.192 집에서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투쟁은 '외박' 일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외박'은 즐겁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 대한 부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p.194 누가 억지로 시켜서 그리된 게 아니라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길입니다. 교수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원하는 글을 쓰면 그걸로 월급을 받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명예와 존경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자기들이 철도공사 직원보다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p.210 20면 안팎의 짦은 소설을 통해, 작가 이청준은 지나치게 빠른 용서, 너무 쉬운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에 대한 강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p.332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다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만명이 폭격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제노싸이드로 부르려면 최소한 100만명쯤은 죽어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