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 -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
김범진 지음, 김용철 사진 / 갤리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대학시절까지는 온실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96년은 경기도 호황이었다. 비록 마지막 호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컸다. 겨우 들어간 회사에는 비정하고 암울하기까지한 현실이 버티고 있었다. 제일 힘든 건 일보다 인간관계였다. 모난 돌은 굴려서 둥근 돌을 만든다는 느낌? 처음 입사해서 4년 정도는 후배로써 힘들었고 그 후 다시 4년은 나 같은 후배들 때문에 선배로써 힘든 시기였다. 이제 15년차 정도 되니 조금 숨을 돌린다.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회사를 안 다니고 말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이 책을 보고 나니 나도 좀 섬세한 사람이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일본에서 직장생활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공감이 간다. 일본 사람들이 일하는 스타일은 피를 말린다. 완벽주의자에 다름아니다. 한번쯤 경험해보면 좋지만 평생하라면 정말 못한다. 한국에서 일하면 그 반대인 사람들이 많다. 대충해도 너무 대충한다. 일본은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사람 지치게 만든다. 한국과 일본 중간 정도면 좋으련만, 세상일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확실히 젊었을 때는 앞을 보고 달린다. 아주 멀리까지 오래오래 달린다. 그러다가 뒤돌아보면 내게 남은 가치는 무엇인가하고 허무해진다. 우리가 섬세하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섬세는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섬세해야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도 섬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섬세해져야 한다. 일은 잘하는데 결국은 회사를 나가게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너무 강해서 부러진다.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본인이 못 버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목표만 추구하려 하면 안된다. 같이 가야 한다. 이런 일이 개인의 잘못만도 아니다. 회사에서는 직무 교육은 중요시하면서 매니지먼트나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그냥 둔다. 자잘한 기술보다는 인간에 대한 기술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마음이 에너지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도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했음에 틀림없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일은 잘 진행 안되고. 일을 잘한다는 소리가 무척 듣고 싶던 시절이 있다. 내적인 충만이 없이 짙은 화장을 한 예쁜 얼굴만을 바랬던 것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내 마음가짐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일 잘하고 똑똑했던 내 동료들은 타고난 본능으로 일찌감치 그 비법을 터득했는지 모른다. 나같은 지진아는 오래 걸린다. 어찌 되었든 당도하면 다행이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예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빨리 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삶은 정해진 법칙이 아닌 우연적 만남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분기된다' 우리 삶은 많은 우연의 조합이다. 하지만 이 우연속에서도 우리는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 결국 섬세해진다는 것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기 깨닫는 것이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하루 하루가 힘겹다고 느낀다면 그럴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자. 이 책처럼 마음을 위로해주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속삭여주는 책을 말이다.

 

▷ 마음에 드는 구절

P. 12 더 작고 미세한 것과 그들 사이의 연결을 느낄 수 있으려면 민감함과 동시에 평온함을 가져야 한다.

P. 13 세상은 결코 고립된 개체들이 사는 외로운 땅이 아니라 섬세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 것이다.

P. 28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섬세함을 가진 사람이며 결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그 결을 볼 수 있고 결에 따라 슬러가는 사람이다.

P. 34 소명 찾기란 내 영혼의 결을 발겨하는 것이다. 소명을 찾는 과정은 매우 세밀하게 자신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P. 36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P. 65 긍정적이고 행복해지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보면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 기여하라, 기부하라.'라는 말이 바지지 않고 나온다.

P. 76 세상은 작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더 넓게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결'이 있다. 누가 그 결을 느끼고 알아차리는가에 따라 누가 앞서가는지 결정된다.

P. 81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장벽은 여전히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는 우리의 행보를 막고 있다. 생물학자 윌슨은 <통섭>에서 인간 지성의 흐름은 결국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것으로 진단했다.

P. 86 인간은 성숙할수록 자아의 경계를 초월하여 더 깊고 커다란 존재와 연결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자아실현을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놓았던 심리학자 매슬로가 노년에 발견한 '자기 초월의 욕구'다.

P. 102 이제 가장 높은 부가가치는 아웃소싱 가능한 논리적 분석적인 일이 아니라 더 섬세함을 요하는 부분, 즉 감성과 창조성을 요하는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

P. 111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경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

P. 118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악은 가만히 홀로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했다.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면에서 나오는 작은 느낌과 소리를 듣는다면 삶이 더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P. 135 미국의 사상가인 켄 윌버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전승 지혜에는 '존재의 대연쇄'라는 보편적인 믿음이 있다고 한다.

P. 179 섬세한 사람 역시 고통 받는다. 섬세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거친 방식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거친 방식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고 자기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기에 거리감을 느낀다.

P. 185 어린 시절의 풍부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오래도록 잃지 않은 사람일수록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해냈다.

P. 196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남자와 어린아이들 사이가 멀어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시간을 보내면 얻어진 섬세함과 순수함은 감성과 창조적 에너지의 기반이 된다

P. 205 생선을 얼마나 깨끗하게 발라 먹느냐가 일본에서는 가정교육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것,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다.

P. 206 일본 사람들은 무척 민감하고 예민해서,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경을 쓴다. 그런 민감성은 일본이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반면, 민감한 삶의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피곤함이 쌓였을 것이다.

P. 221 마음이 거칠 때는 삶의 에너지를 우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얻는다. 그런데 마음이 섬세해지면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고, 내 자신이 다른 존재와 깊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그런 열망이 서서히 엷어진다.

P. 245 붓다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욕망을 충족시킬 때 얻어지는 행복과 욕망을 비울 때 느끼는 행복이다.

P. 266 삶은 정해진 법칙이 아닌 우연적 만암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분기되고 진행된다고 했던 어떤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P. 322 옥시토신을 연구하고 있는 폴 작은 사람들이 SNS를 하면 이 옥시토신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발견했다.

P. 351 내 안의 거칠고 탁한 곳을 맑고 섬세하게 만드는 일, 더 나아가 내가 딛고 있는 세상의 거친 곳, 숨이 닿지 않은 어두운 곳에 잎맥을 만들고 피를 돌게 하고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몸처럼 여기게 만드는 일, '느낌의 공통체'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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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insula 2016-02-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략 손으로 직접 노트를 했습니다... 저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시네요. 살면서 책읽으며 직접 손으로 노트한 책이 몇권 되질 않는데 그중 한권인듯...많은 page가 저와 비슷해 글남깁니다~~^^*

블루버드 2016-02-16 17:51   좋아요 0 | URL
정말 반갑습니다!
아주 예전에 쓴 리뷰라 지금 보니 너무 새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