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에 대해 잘 알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 까요.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굉장히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새롭고 신선하다' 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일본이란 무엇인가', '한권으로 읽는 일본 역사' 같은 책들도 좋긴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내용이 딱딱하거나 지루하기도 합니다. 의외로 재미있게 잘 읽히는 문화서는 드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최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이, 관심 있는 나라의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 좀 더 구체적이고 재미있게 그 나라 문화나 그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결국 한 나라의 문화도 개개인이 기반이 되어 만들어 지는 거니까요. 더군다나 유명 작가라면 분명 자국이나 해외의 독자들과 어느 정도 공감을 이루어낸 사람이니, 이 사람들의 실제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만큼 그 나라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인용하는 것을 읽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후 처음 접했습니다. 소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하는 데 서투른데, 예외로 택시 기사와 얘기하는 것은 싫지 않다. 어차피 내리고 나면 끝나는 관계이니 부담이 없고, 게다가 택시 기사가 하는 얘기 중에는 흥미로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P.35 지바현 택시 기사>  

 

이 글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우리와 비슷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반가움마저 느꼈습니다. 

 

"야쓰가타케에 가려면 고우미 선을 타야 한다. 고우미 선 전철에는 진짜 여자가 많다. 그런데다 이 지역은 도쿄원과 간사이권에 겹치는 곳이라 도쿄에서 온 여자 군단과 간사이에서 온 여자 군단이 고부치자와 언저리에서 한류와 난류처럼 쿵 부딪친다. 한바탕 난리다. 지옥이다. "어머나, 바보 같아"라느니 "내가 그런 걸 우째 아노"라느니, 아무튼 꺄악꺄악 무의미하게 시끄럽다. 고막이 푸르르 떨린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P.72 나 홀로 여행>  

 

이 부분을 읽고는 어찌나 웃기던지. 지옥이라고까지 표현을 했네요. 

 

"이건 사랑과는 무관하지만,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 이 두 가지는 인생의(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의) 양대 키워드이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P.88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 

  

중년이라면 이 말에 절대 공감하지 않을까요. 다 그런 거지 뭐... 이러면서. 

 

"평범한 여섯 살 아이가 왜 2개 국어를 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모국어도 잘 못하는 어린아이가 표층적으로 2개 국어를 좀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재능이 있거나 혹은 필요가 생기면, 굳이 어린이 영어 교실에 다니지 않더라고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영어 회화쯤이야 반드시 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먼저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P.151 Can you speak English?> 

 

이 글을 읽고는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너무 영어영어 하는 우리 현실에도 딱 맞는 말이 아닐까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을 굉장한 취미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미권의 유명 작가들 작품을 다수 번역하기도 했어요.

 

"소설 쓰는 일과 번역 하는 일은 쓰는 머리의 부위가 달라서 번갈아 하다 보면 뇌의 균형이 좋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또 하나는 번역 작업을 통해 문장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이다. ... 그 글을 단지 눈으로 읽을 때보다 보이는 것이 훨씬 많아지고 또한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하다보면 '좋은 글은 왜 좋은가'라는 원리 같은 것을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실제로 - 이런 얘길 쓰자니 몹시 부끄럽지만 - 가난은 정말 즐거웠다. 한여름 무더운 오후에 너무 더워 머리가 띵해서 찻집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마누라와 둘이 '참자'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간신히 집에 돌아가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시는...... 그런 게 정말정말 즐거웠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P.196 가난은 어디로 가버렸나?>

 

젊은 날을 회상하며 가난했지만 상상력이 있어서 즐거웠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 소탈함과 솔직함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이 아닐까요? 신작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여파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책들도 덩달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정도 작가가 되는 일이 바로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아닐지, 약간은 부러운 마음도 듭니다. 한국에도 하루키 같이 폭 넓은 사랑을 받는 작가가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쿨하고 와일드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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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30년 방랑은 끝났다. 지금 그 자신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 있다. 이단이, 정통 없는 시대의 정통이 된 것이다." 

- <하루키 소설의 마침표를 찍다> 가와니시 마사아키

  

 <1Q84>가 출간되어 한국에서 붐을 일으키던 2010년, 아버지가 이 책을 읽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와,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생각해 냈을까?" 

당시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대단하다. 감각이 젊으신데?"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무라카미 하루키(49년생)와 아버지(42년생)는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무라카미 하루키(49년생)와 아버지(42년생)는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왠지 하루키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40대 정도의 젊은 작가로 인식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하루키 붐과 적게나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책을 읽으면 트랜디하고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느냐는 독자의 욕구! 책도 분명 하나의 문화상품이고 그것을 소비하는 나를 표현하는 매개체입니다.

 

"분명한 건 부담 없는 교양을 세련되게 포장한 문화상품에 대한 독자들의 선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3000원짜리 밥을 먹고 나서 5000원자리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는 세대' 아닌가. 하루키가 제공하는 건 적당한 무게와 함량의 교양이다." 

"하루키 소설을 읽는 건 "그 자체로 교양 있고 세련된 문화 행위" -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문학평론가 박진 

출처 :  중앙SUNDAY 

 

문화를 소비하는 집단의 교양에 대한 열망. 물론 허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중의 니즈를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맨 위의 글에서 하루키를 이단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하루키가 특정 문단에 소속되는 기존의 일본 문학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위험을 수반하듯이 그가 누리는 이 특권 또한 마찬가지다. 그 결과가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잘못하면 작가로서의 대인관계만 망가뜨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다."  

- <하루키, 키티, MUJI를 통해 본 일본의 문화 아이콘1> 

 

 문단에 속하지도 않고 30년이 넘게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는 것은 하루키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나태함에 빠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오히며 이 부분이 대중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도대체 소설 내용이 어떻길래 다들 이 난리야?" 하면서 말입니다.

 

"단카이 세대(전후 1차 베이비붐 시기인 1947년에서 49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이전 세대인 평론가들이 하루키에 대해 주로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단카이 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평론가들은 하루키의 소설에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 <문학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문학잡지 그란타 편집장 존 프리먼은 무라카미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평단의 호평을 받기 어려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로 그의 이야기는 즉흥적이지 않음에도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진다. 둘때로 그의 작품에는 익살과 해학이 있는데, 그런 요소를 가진 작가들은 당분간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 <이코노미스트> 2013.7.22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하루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비교적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알려졌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말에서 하루키의 인기 비결이랄까 논란의 정점에 있는 이유의 유추가 가능합니다. 

 

"일본은 1970년대 끝무렵에 무라카미 하루키, 1980년대에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가 나오자마자 전 세계로 이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펴져 나갔어요. 이 두 작가의 힘은 대단해서 그들의 구어푼 문체는 더욱 더 세계적인 추세로 확대되어가고 있지요. ...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소설은 잘 씌어진 문장이라 번역하기 쉽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어나 프랑스어 번역가들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서 좋은 번역을 해내고 있답니다. ... 노벨상 수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일본적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우리들이 걱정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자들이 생각할 몫이겠지요." 

-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소설의 문체가 문어풍에서 구어풍으로 바뀌는 시점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문학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분명 쉽게 씌여진 구어풍의 문체, 번역하기 쉬운 문장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면에 조금 가벼워진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팔리지 않더라도 여유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소 순문학 소설을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흐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분명 무라카미 하루키로 시작되는 세대와의 선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 보다는 단편소설, 단편소설 보다는 에세이 (가 좋다)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의견에 굉장히 동감합니다. 물론 이번 작품도 좋지만 말입니다. 에세이 중에서는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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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본 문화에 대한 책이나 일본 여행 에세이 등을 즐겨 읽는다.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일본에서 창조적인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나의 발길은 예술, 미술에 다가가 있다. 예술하고는 무관한 삶을 살아와 무척 당황스럽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 그래서 생각한 한 가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많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었고, 언젠가 아이들과 일본 박물관, 미술관 일주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1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보고 "명로진 작가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이라는 반가움에 얼른 집어 들었다.

 

그냥 도쿄 미술관 예술 산책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여행가를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달려있다. 어디를 가나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지금, 과연 이 창조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나마 아마추어적인 견해지만 찾은 답 중 하나는 '도쿄에는 창조적인 영감을 줄 만한 소재가 많다'는 것이다. 꼭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여행만으로도 창조적인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 일본, 그 중에서도 도쿄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에 오면 이런 영감이 팍팍 솟아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한 일본인 친구는 "한국은 편의점만 가도 볼 것이 많다"라는 말을 했으니 그 들이 우리 박물관이나 문화, 여행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낄 것이라 상상이 가지 않는가? 예술은, 창조성은 새로운 것 낯설은 것을 마주했을 때 퐁퐁 샘물처럼 솟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조금 더 깊이 창조성에 대해 파고들었으면 하는 점이다. 읽는 재미는 훌륭하다. 워낙 잘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작가기 때문이다. 글 솜씨는 무척 부러웠지만 컨텐츠적인 면은 조금 아쉬웠다. 가볍게 도쿄 미술관을 산책하는 기분을 내려면 읽는 동안 충분히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것을 원한다면 더 딱딱한 책을 읽어야겠지? 화창한 일요일, 도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낼 수 있어 읽는 동안 행복했다. 아쉬운 부분은 후속작에서 기대하면 될까? 창조성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 아마 도쿄 사람이 서울이나 부산에 온다면 새롭고 창조적인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울 사람이면서 서울에서 반짝이는 힌트를 얻지 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사는 이곳을 떠나는 순간, 우리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도쿄는 창조적이면서도 선진적이고 동시에 개방적이다. 이 세 가기 요소를 모두 갖춘 도시로 아시아에서 도쿄를 따라갈 만한 곳은 없다.

P.51 조직에 매몰되면 그 건축가는 이미 끝난 것이다 - 안도 다다오

P.52 네트워크에 집착할수록 크리에이티브에서 멀어진다.

P.52 작가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실 작가, 특히 소설가에게는 친구를 만나 술 마시고 어울려 다니고 할 시간이 없다. 자료 찾고, 책을 읽고, 취재를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고, 인터뷰를 하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소설가 김탁환

P.53 안도가 30~40대 시절에는 부하 직원의 빰을 때리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다. 안도가 참지 못하는 것은 디자인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는 제자들의 부주의. 태만함, 치밀하지 못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놀 곳 다 놀고, 잘 것 다 자면서 무슨 크리에이티브냐!"

P.62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크리에이티브는 달아난다. 단체에 충실할수록 크리에이티브로부터는 멀어진다. 보스에 충성할수록 크리에이티브는 줄어든다.

P.86 오카모토 다로는 '예술은 폭발'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이 말은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라는 말만큰이나 신선하다.

P.94 과학과 산업은 발달했지만 우리는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한 현대인일 뿐

P.109 곰브리치가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다른 눈으로 세계를 보게 도와준 두 가지 요소는 사진기술과 일본 채색 판화'라고 할 정도였다.

P.150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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