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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중년의 나이가 대체.. 몇살부터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아마도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 같다.
늘어난 주름살과 쳐진 피부를 보면서, '나도 늙어가는 구나~'라고 느낄테고,
어느날 찾아온 갱년기로 달아오르는 볼과 한없이 흐르는 땀에 당황할 것이다.
또는 앞으로 더 늙게 될 자신이 두려울 지도 모른다.
30대를 살고 있는 내가 50대가 되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짐작을 해본다.
단지.. 짐작이다.
바로 나의 일이 아니면 그저 짐작만 할 뿐.. 당사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는 없다.
도피행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지금의 내 생각들을 대비시키며, 주인공인 타에코를 바라보았다.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했을때... 과연 타에코처럼 살인을 저지른 개를 데리고 도피행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외딴 곳에서 홀로 사는 삶을 선택했던 것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아니.. 옳다기 보다 이해는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딱 반반이라고 스스로 답했었다.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도피행을 감행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의 마음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녀라면 도피행을 선택했을까?
그건.. 아니었을것 같다.
남겨진 가족들과 내가 사랑했던 삶을 팽개치고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결혼을 하자마자, 한 남자의 아내로써, 나의 모든것을 그에게 맞추고, 그를 위해서 헌신했다면,
생살같은 두 딸을 지극 정성으로 아낌없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배려해주고 키웠다면,
그리고.. 그들에게서 어떤 사랑도, 위안도 받을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갱년기를 보내고,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혼자 동네바깥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고 운전면허증조차 없이 살아온 나이 50의 여인이라면,
세상에서 완전히 배척당하는 느낌 속에
단 하나.. 변함없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개가 있다면,
그래도 역시 도피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타에코는 엄마이고, 아내라고만 여겨질 뿐 여자로써, 인간으로써의 존재가 아니었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남편도 있고, 필요할 때면 엄마편이 되어 주던 둘째딸이 있었고,
냉정하지만 현명하고 이성적인 큰 딸도 있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개가 딱총을 터뜨리며 괴롭히던 아이를 공포심에 그만.. 물어서 죽게 만들었을때,
그로인해 세상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 현실에서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살인을 저지른 개는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순서였다.
그 때.. 타에코는 깨닫는다. 늘 그녀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그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존재는 그녀의 가족이 아닌 바로 그녀의 개 '포포'였다는 것을~.
그녀의 마음이 아플때, 그녀를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을 주는 이는 포포였고,
그녀가 그동안 그 집에서 외로움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이유도 바로 포포였다.
이제.. 아홉살이 되어버린 늙은 개.. 포포..
그녀에게 포포는 단순히 '개'가 아닌,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고,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포포의 죽음을 더이상 나약하게 지켜보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도피행을 결심한다.
남편이 따로 챙겨놓은 비자금을 챙겨서 그녀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한밤중에 집을 탈출한다.
혼자 살 노후를 대비하고, 아내인 타에코를 그의 동료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기는 남편과
결국은 제 인생이 먼저인 두 딸을 남겨두고......
쌀쌀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렇게 포포와 길을 떠난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가족들에게 쓸모없게된 퇴물이 아니다. 그녀에게 더이상 가족이 필요없어진 것이다.
그녀에게 외로움과 아픔과 수치심을 안겨주던 가족을 버리고, 포포와의 새로움 삶을 시작한 것이다.
가족과 영영 이별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한없이 슬프지만,
함께 있으면서 가슴시키게 외롭게 만드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때 차라리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을 만큼 그녀의 외로움은 깊고, 고독감은 컸던 것이다.
타에코는 함께 사는 동안에도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 딸들은 알면서도, 혹은 알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
큰딸이 입시학원을 다니던 고등학교시절 늦게 돌아오는 딸이 걱정스러워 얼어붙을듯이 추운날에도 매일밤 마중나가고, 입사 첫해에 매일 새벽에 택시로 집에 오는 딸을 기다렸다가 목욕물을 받아주고, 뜨거운 스프를 먹여 잠자리에 들게 해준 엄마인데... 잠시동안 포포와 머무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싹둑 거절하는 딸에게...
타에코는 이제 여자로써 끝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노후를 제멋대로 준비해버린 남편에게,
더이상의 사랑도 관심도 받을수 없는 존재란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절망감의 크기를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마.. 함께 살아온 날들, 정성과 사랑으로 대해왔던 수많은 날들에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떠난 것이다.
늙은 개와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도피행을 떠나.. 과연 얼마나 잘살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수 밖에 없었던 타에코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슬픔에 잠시나마 동화되어 가슴이 시려왔다.
도피행을 떠나 포포와 단둘이 살던 동안,
타에코는 오랫만의 평화를 느낀다. 행복감에서 오는 평화라기보다.. 집에서 느끼던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녀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리라...
타에코는 나의 엄마이고, 나의 미래이다.
어릴적 그렇게 매달렸던 엄마의 품을 벗어나, 이제는 늙어버린 엄마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사랑도, 관심도,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해주지 못하는 냉정하고, 매정한 딸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한없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체..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나의 엄마를 이토록 외롭게, 허무하게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인지....
타에코의 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내 모습을 깨우쳐준 아프고, 시린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