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저희는 두 시간마다 공간값을 받고 있고요. 음료를 주문하시면 자리로 가져다드려요. 결제는 나가실 때 해주시면 됩니다." - P74

스스로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못하는 풍선처럼 나는 손님 한마디에,
별거 아닌 몸짓에, 주변의 소음에, 주방기기의 미세한 진동에도 지나치게 수축하거나 팽창했다. - P75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초대장을 흩뿌린 뒤 도착한 첫 답장이었다.
뭐든 처음은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믿기에 무조건 처음 요청서를 보내준 분을 반드시 첫 손님으로 모시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메일을읽고 링크로 보내준 개인 블로그의 글들을 훑으며 어떤 사람일지 퍼즐 조각을 맞추어나갔다. 그러는 사이 오후 세시가 되었다. 앞마당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한 여성이 제 몸집만한 캐리어를 끌고 서재의 유리문을 열고 있었다. - P80

이십구 년을 사이에 두고 치른 두 번의 큰 가족행사에서 철저히 비존재가 되었던 경험, 그 긴 시간의 틈에서 어떻게든 존재를 증명하려 살아온 이야기를 J는 하나씩 꺼내놓았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 P84

무엇보다 이곳까지 찾아온 귀한 손님이 멀리서 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소리. 그 손님이 읽을거리를 고를 때 책의 두툼한 모서리가나무 책장에 둑둑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가게 어딘가에서 책장이 넘겨질 때마다 들려오는 종이의 여린 마찰음. 아마도 책이 있는 공간을 운영하기에 주워담을 수 있는 특권 같은 소리일 것이다. - P90

몇천 원 대신 건네받은 한 장의 편지에 값진 하루의 문이 닫혔다.
노곤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빈 소파에 철퍼덕 누워 웅얼거렸다. ‘첫서재하길 잘했어. 그래도 내일은 손님이 조금은 더 왔으면 좋겠어.‘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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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배운가장 분명한 기도 - P91

몸을 잃어버린다는 건 기쁜 일 - P90

망가진 천국보다 온전한 지옥을 택하는완벽주의자 - P103

나는 가끔 신과 유사하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겪는다고 - P85

전력으로 페달을 밟는다 - P93

가라앉는데 왜 떠오르는 것 같은지 - P92

겁도 없이 혼자 여기까지 왔니여자가 물었다 - P92

괜찮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 P140

희망과 함께 손을 잡고 걷는다나 있잖아, 더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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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진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가르치려 드는모어의 태도는 마뜩지 않았지만 나보다 아는 게많으니 별수 없었다. 어쨌든 모어는 이번에도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이 깨달음이 어디필요한진 모르겠지만…………. 모어는 가르치고 나는배운다. 이것이 우리가 연인 사이를 유지하는암묵적인 프로토콜이었다. - P77

모어는 파운데이션에 죽은 남편이 냉동 보존되어있다고 말했다. 새해에 그를 부활시킬 예정이었다.
오늘은 12월 29일이다. 그러니까 3일 후면 내여자친구의 전남편, 아니 이혼한 건 아니니 남편이돌아올 예정이었다. 죽음에서 말이다. - P80

그러니까 너도 너무 당황하지 마. 모어 같은여자랑 만나려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니가전남편보다 나은 점도 있잖아.
뭐?
살아 있다는 거.
몰랐네, 나한테 그런 장점이 있는 줄…………. - P85

하지만 정말 그녀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일까. 왜그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 P89

그럼 심장 이식수술을 한 사람은요? 전신성형을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사고로 뇌에 손상이생겨서 성격이 전혀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사람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 P95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영생이니 불멸이니 이딴이야기는 다 엿 먹으라고 해요.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있으니까. - P107

닥터 쉬멜이 말하며 나와 포옹했다. 그의 체온이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문득졸탄이 한 말이 생각났다. 정신의 엑기스를 다른 DNA에덧씌울 수 있다. 그때 머릿속에서 FM의 말이 들렸다.
지금 어디 있어요? 내 말 들려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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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기억을 떨치기 위해 두 눈을 깜빡였다.
민기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콧날이 오똑하게 서있었다. 펑퍼짐했던 콧볼도 갸름하게 바뀌어 있었다. - P47

"이상한 사람이 누군데."
"민영아, 이거 잘 익었다."
민기는 고추장아찌 하나를 민영의 밥그릇에올려놓았다.
"그래 민영아. 너 그거 한번 먹어봐." - P53

"언니가 저렇게 나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누가 할 말인데." - P55

정화가 답답하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달걀을향해 손을 뻗었다. 닭은 정화가 달걀을 꺼내는 것을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화는 민영의 두 손에 달걀을올려놓았다. 달걀이 따뜻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바깥으로 나오려는 닭들을 정화는 닭장 안으로몰아넣었다. - P66

"언니, 해볼래? 자기가 운전하면 멀미가 안 나."
"안 한 지 오래됐는데."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 P69

비상등을 켰다. 한쪽 손을 정화의 손 위에 포갰다.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민영은 민기에게 배운 말을 뱉었다. 정화가 고개를끄덕였다.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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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은 짐을 싸다 친구를 불러 커피를 마신다. 친구는 담배를 피우며 편지를 부치러 갈 것이라고 했다.
"언제?" - P112

잠시 잠자코 생각하던 델핀은
"글쎄 나는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어."
"모두가 그것을 기다리지.",
"모두는 아니야. 난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는걸. 그리고 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 P115

"유자차 차갑게도 되는데."
"나는 그럼 차가운 거."
"저도 그럼 차갑게 주세요." - P120

"그럼 영화를 보다 자는 게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그건 상관없고 일단 밤에 자는 게 좋은 거지.""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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