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옥 시의 반복과 계속은 과격함을 지양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잠의 호흡"처럼, 여름 하늘과 대지에서서서히 부풀며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들처럼.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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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잘못했는데. 무책임하게 멋대로 뒈져버린 건너잖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 P79

"죽어도 끝나는 거 없어. 사라지는 것도 없고. 나도 안 사라져.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더라고, 형이 나 생각하면 나는 형 옆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몸 없이 사는 거. 영혼이 되는 거. 자유로운 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생각 좀 그만해. 아니, 하더라도 다른생각 좀 해. 좋았던 것들도 있잖아." - P80

눈을 떴다. 눈앞에 닥터. 눈을 감는다. 닥터의 목소리. 나는 말한다. 제발 좀 내버려둬. 차분한 닥터의 목소리.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하라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얼굴 근육을 부들부들 떨며 그에게 차가운 감정을 내비친다. - P84

비 내리는 새벽의 편의점.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위아래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갈색 모자를 쓴 남자였다. 점원은 게임을 하다 말고 어서오세요, 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자는 편의점을 한 바퀴, 두 바퀴,
천천히 거닐었다. 점원은 하품을 하며 창밖을 봤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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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족한 돈이었다. - P15

결혼 후 10년은 전월세로 살았지만 이후 30년은 내 집이었기 때문에 전세로 지내는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도 ‘왜 그 나이에 아직도 전세야?‘라고 묻지 않았으나 매일 추궁당하는 것 같았다. - P16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스타일대로 살아갔다. ‘늙은 당신이나 잘 하세요.‘ 남편과는 불과 네 살 차이였지만 나와 달리 남편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국가공인 노인이었다. - P17

‘이곳은 실버아파트라 언제 비상사태가 생길지 모르므로 소방차 구역에 주차를 하는 것은 불법이나 이미 사다리를 장착했으니 신속하게 이사하시고…………‘ - P21

40년 결혼 생활을 하며 이사를 숱하게 했고 그 대부분이 아파트였지만 이렇게 모르는 이웃이 쑥 들어온 경우는처음이었다. 더욱이 그 당당함이라니. 나는 마치 집주인 앞에선 세입자 같았다. - P23

언제부터인지 오래되고 낯설어진 문장.
우리집에 놀러 와. - P25

아버지도 그랬다. 점심 이후엔 잠시 주무시고 저녁 이후에도 잠시 주무셨다. 그리고 밤엔 잘 안 주무셨다. 아무 때나 주무시고 아무 때나 깨어 계셨다. 아버지는 혼자 남은 삶을 지루해하시며 밤낮을 당신 맘대로 사시다가 밤도 낮도아닌 이른 저녁에 돌아가셨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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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겨우 이 정도였나? 겨우 하프 마라톤을 적당한 속도로 달린 정도로 지쳐버린다면, 마라톤 풀코스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주자는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특히 여성이 많다. 왜 그런지 소수민족출신 주자는 별로 볼 수 없다. - P19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감은 떨쳐낼 수 없다. 한순간 내 눈앞을 스쳐간 검은 그림자는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버것일까? 그것은 지금도 이 몸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으면서빈틈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 - P202

랜덤하우스에서 내 책을 담당하고 있는 리즈로부터 이메일이왔다. 그녀도 뉴욕 시티마라톤에 참가한다는 내용이다. 그녀로서는 처음 달리는 마라톤 풀코스이다. "즐겁게 달리세요! Have agood time!" 라고 답장 메일을 보낸다. 그렇다, 마라톤 레이스는 즐기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몇만 명의 사람들이 42킬로미터를 달린단 말인가. - P203

덧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저이국적인 풍경에 한숨을 내쉴 거야이것이 뉴욕의 가을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 P204

그러나 어쨌든 트라이애슬론 전의 몇 달은 불평불만을 접어두고,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브라이언 아담스의 <죽는 날까지 열여덟 살>의 후렴을 입속으로 흥얼거리면서, 때로는 세계를 저주하면서, 나는 페달을 힘껏 밟고 또 끌어올린다. 그 회전의 리듬을 내 두 다리에 각인시킨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평양을 건너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뺨을 세차게 때리고 스쳐 지나간다. - P208

그러나 실제의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 P221

다만 이것만은 꽤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잘 달렸다‘ 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라는 점이다.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 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라고 충고해도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 P227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 P229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오늘의 레이스를 내가 진심으로 즐겼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자잘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그렇지만 나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고,
그 노력의 보상 같은 것이 아직도 몸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 P255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 P257

무라카미 하루키작가(그리고 러너)1949~20**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 P259

그리고 끝으로, 이제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길 위에서 스쳐 지나며 레이스 중에 추월하거나 추월당해 왔던 모든 마라톤 주자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만약 그 주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이렇게 계속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2007년 8월 어느 날무라카미 하루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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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버아파트는 전국 최대 규모의 분양형이에요. 중요한 건 대형 병원이 옆에 있는 거죠. 아파트에서 병원까지전용 통로가 있는 데는 아마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그리고저기 보이는 건 장례식장인데,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장례식장이 보이는 동은 별로 좋아하시지 않거든요. 어떠세요?" - P9

"아유, 여기서 살다가 바로 장례식장으로 직행하면 되겠네. 아주 좋아요."
그렇게 우리는 실버아파트에 입주했다. - P10

나의 이야기는 베이비붐 1세대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많은 베이비부머 중 한 명이 늙어 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쳐 줄 어딘가의 내실버 친구들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늙어 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귀한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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