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곁에 존재한 준이치. 나와 다른 종이지만 함께한 모든 순간에 ‘곁에 있음‘을 가르쳐준 고양잇과 동물. 그 ‘있음‘을 알면서 떠나려고 했던 내 선택을 후회한다. 반성한다. 사죄한다. 나는 이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게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떠나지않고 존재할 것이다. - P204

아니, 이게 몸이 되게 무겁지 않아?
뭐 뜨지도 않고, 아예 몸이 땅에 붙은 거 같다니까.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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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장르적‘이거나 ‘감정을 지시하는 식으로 음악을 쓰는 데 너무나 노련해서 너무나 잘 알아서 닳고 닳았다 - P182

<아바타>를 눈을 가리고 본다고 생각해보라.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지금 어떤 장면이 나오고 있을지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을 것이다. 액션인지, 로맨스인지, 감동인지를. 하지만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 P182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침묵하고자 한다면 완벽한침묵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관은 그 어떤 공간보다도 방음이 잘되는 곳이니까. 그래서 ‘무음‘은 비일상적 사운드이다. - P196

움직이던 사람은 ‘시작‘ 사인이 떨어지면 ‘얼음‘ 상태로 멈춘다. 그래야 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노이즈를 만들어낸다니까. 그리고 촬영이 시작된다. - P188

영화 속에서 가족의 일상 대화와 비일상적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해야 이 대목이 우리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때로 가족과도 못 할 이야기를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를 타인과 나눈다. - P191

영화관 바깥의 삶이 스크린 위의 삶과 겹친다. 그것은 전혀 같지 않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어떤 것은 영영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질 테고, 어떤 것은 영원히 내 것이 되어 남이 보지 못하는 곳에 꼭꼭 숨겨질 것이다. 그리고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영화관을나선다. - P191

이 엔딩의 뜻이 무엇인지 정답을 찾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내 삶의 90분 혹은 180분을 어떻게 대신 살아냈는가를 체험하는 데 있다. 복선도 중요하고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자기 전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들은 줄거리 때문이 아닐 때가 많다. 영화가 보게 만든 빛, 듣게 만든소리, 따라 짓게 만든 표정과 웃고 울게 만든 리듬. 공명하는 순간을 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있을 것이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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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셔터를 잘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 수한은 평소와 달리 좀처럼 일에 집중할 수없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화분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치우고 물을 듬뿍 주며살며시 마른 가지를 어루만졌다. 마치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듯이.

수한은 거실 소파 끄트머리에 기대 앉았다. 소파를 놀이터 삼아 방방 뛰어놀기 좋아하는 재이 탓에수한의 자리는 늘 끄트머리였다. 수한은 움푹 파여있는 소파 가운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가만히 손으로 어루만졌다.

"러시아 옆에 있는 작은 나라요."
"모델 일로 잠깐 한국에 왔는데, 마라톤 대회에서제가 첫눈에 반해 붙잡았습니다."

리수한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상자 이전의 기억은자신에게 없다고 말했다. 있다 한들 뱃속 태아의 기억처럼 상실되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 말 때문인지, 기억을 공유한 탓이었는지, 다음 날부터 수한은서재 문을 열어둔 채로 집 밖을 나섰다. - P57

"손을 먼저 누가 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아,
그건 행복한 순간이라 안 따지는 건가. 불행에만 인과관계를 따지는 거야?" - P67

"불편한 감정을 불편해하면 평생 네 마음으로부터도망치면서 사는 거야."
"..."
"마음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아. 어딘가에 쌓여 있을 뿐이지."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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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구속되고 속박된 채 정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족쇄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사유와 운동의 절대적 자유를 주는 것이다. - P41

여기서 우리는 자리가 지속적인 헌신, 소속과 동의어임을 알수 있다. 자리는 장소만큼이나 시간과 관계를 맺는다. 자리는 자기와의 관계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이기도 하며, 그리하여 강제적이고 구속적일 수 있다. 이따금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P43

"그녀는 나를 보고는 말했다. 아마, 넌 곧 빠져나가게 되겠지.
날이 갈수록 굳어 가는 생각. 그것은 무엇엔가 도달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곳에서 빠져나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 P45

"우리는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위한 땅과 나라를 만들기 위해노력한다. 우리의 육신이 그저 흘러가는 계절보다 더 가치 있고 오래 지속되도록 "54 - P51

"백인의 세상에서 흑인은 일종의 항성으로, 움직이지 않는기등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므로 흑인이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면 백인으로서는 하늘과 땅의 기틀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 P58

다시 말해, 모든 자리 옮김은
"공간의 시련"인 것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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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렉은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있다. 이따금 충돌은 가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 P12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 벽을 쌓는다. 문은 가로막고 갈라놓는다. (...)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며들 듯 건너갈 수없고, (...) 비밀번호가 필요하며, 문턱을 넘어야 하고, 식별표지를보여줘야만 하며, 죄수가 외부와 소통하듯 해야만 한다." - P13

환대하고 돌보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방법이다. - P16

운동하는 삶의 격렬함과 충동, 강렬함을 잃어버린다는미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팽이와 같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아주 조금만 이동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이처럼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 자기만의 공간에대한 열망과 운동의 생명력을 결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 P21

우리는 어떤 논리에 따라 공간과 삶을 점유하게 될까? 한곳에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은 무슨 예기치 못한 사건과 우연으로 거기있게 되었을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물들, 우리 삶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결국에는 어느 정도 우연에 의해 그곳에 있게 된 게아닐까? - P25

그 정도로 자리가 미리 규정되어 있을 때, 내 실존의 그림이가장 세세한 윤곽까지 미리 그려져 있을 때, 나를 가시화하기 위해할 수 있는 일은 부재밖에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저항하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리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지워 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 최후의 방편인 것이다. - P34

자유는 찢겨져 나오는 일이며, 선재하는 것의 파괴를 통삭하므로한 해방이다. 짐 없는 인간의 개운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관계의 끈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작가 미하엘 페리에는 『바다저편의 회고록」에서 이러한 인물을 묘사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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