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건 쓸 수 없다. 진짜인것, 불의핵, 어둠의 씨앗, 사랑의 시발점 같은 것. 그런 건 밤의 한강에 빠져 죽었거나 펼쳐보지 않은 공책 귀퉁이에서 죽어간다. 발견되지 않는다. 납작하게 숨어있다. 적당히 좋은 건 쓸 필요가 없다. - P143
사장님은 창작이 전무와 전부라고 했고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잘 쓰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 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 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 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 P190
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다. 때로 급진주의자들은 문을 찾지는 않고 벽이 너무 거대하고 견고하고막막하고 경첩도 손잡이도 열쇠 구멍도 없다고 벽을 비난하는 데 안주하거나, 문을 통과해 터벅터벅 나아가면서도 새로운 벽을 찾아댄다."♦ 리베카 솔닛, 어둠 속의 희망, 창비 - P142
내해여, 내해여평생 땅만 바라봐서땅하고만 이야기할 줄 안다는 어르신여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여흙 한 줌 없는 곳이 어데 사람 살데여아들 따라 낯선 동네 와보니겨울바람처럼 쌩한 며느리 밥그냥 목구멍에 처넣으면 죽기야 하련밥을 퍼 넣다 혼절하셨다던데밥 위, 얹어드린 생선 토막과 나를 한참 쳐다보다일주일 만에 처음 입 여셨다샥시도 묵으야지 수저를 내민다눈물 한 방울 얹어 밀어 넣자내해여, 내해여한껏 신명 나셨다무엇이 내해일까?
희망은 있을까? 희망이 있다면 어떤 크기인지,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희망은 늘 어딘가에 ‘끼어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눈과 눈 사이, 귀와 귀 사이. 손과 손 사이, 발과 발 사이에 책과 책 사이, 집과 집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대륙과 대륙 사이에 끼어있는 것. 누구도 희망을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끼어있으므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