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요?
지수는 그 표현이 좀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순순히 고개를끄덕였다. 며칠째 잠을 설친데다 오늘도 새벽에 겨우 눈을 붙여 몇 시간 못 잔 상태였다. - P263

그러곤 지수 눈에 어린 불신을 의식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저 이거 오년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 P264

지수는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머물다 떠난 자리가 늘 단정하고 깨끗하길 바랐다. - P269

-확정일자는 자정 이후 효력이 생기는 반면 근저당권 설정은 등기를 접수한 순간 바로 적용돼서요. 아무래도 임대인이 그걸 알고 두 분 입주일에 대출을 받은 것 같습니다. - P269

-세탁물 넣기 전에 주머니 꼭 확인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나한테 겨우 그 정도도 못해줘?
그러곤 그대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P271

지수는 천장 속 어둠을 응시했다. 십자 철골이 마치 ‘땀 흘리는 십자가, 온몸에 고름이 맺힌 십자가‘처럼 보였다. 준오가지수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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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 P219

-응. 평소 자기 고통을 남한테 잘 표현 안 하는 사람이 부른 이별 노래 같아. - P220

그것참 흥미롭다. - P222

그러면 너희는 그 두 ‘안녕‘을 어떻게 구분해? 억양이나발음이 달라? - P222

-네가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뭐야?
나는 고민하다 비교적 솔직하게 답했다.
- 언젠가 이곳을 떠나고 싶어서? - P226

장례를 마치고 집에 머물며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경력이 단절된 사십대 중반 여성을 찾는 곳은 많지 않았다. 있더라도 업계에서 소문이 안 좋거나 환경이 열악한 곳뿐이었다. - P228

-당신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보면 그가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두의 안식과 평안을 빕니다. - P231

일말의 더듬거림과 망설임, 지연과 기쁨, 찰나의 교감, 수치심과 답답함, 긴장과 해소,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 실수와용서 등이 그랬다.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 P234

-공감 능력, 유머, 야망이에요.
나는 ‘음, 나쁘지 않은 대답이네‘ 하고 국을 떴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거시기가 정말 중요해지죠. - P237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아직 ‘인생‘을 얘기하기엔좀 젊다 싶은 세 살 연하 애인에게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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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순교자들을 위해

맙소사,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방금 떠올랐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잘못된 약을 맞는 순서로 써서 그런지도 모르고, 맞는 약을잘못된 순서로 써서 그런지도 모른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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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한곳을 향해 이동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둥글게 비행했다. 목적지는 다른 어디도 아닌 이 한가운데에 있다는 듯, 고리 모양으로 돌면서 서서히 땅으로내려앉았다. - P160

화수를 떠올릴 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로 여러 중요한 선택 앞으로 떠밀리는 어떤 사람을 상상하며 썼습니다. 자신이 믿는 사람이 내린 선택이니 옳을 거라 예상하고 그에 따르는 사람입니다. - P53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공간적 배경에우선 눈길이 가요. 소란스러운 일도 없을 것 같은 어느 지방 소도시인데 이상하게 민원이 끊이질 않죠. 그 중심에는 천문대가 있고요. - P163

현재 한국에서는 인구 50만 명 미만의 도시를중소 도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인구 10만명이 되지 않는 도시가 매우 많아요. 전체 인구수는 줄어드는 데 비해 고령화 인구는 늘어나고 있어 지방 쇠퇴라든지 소멸 같은 이야기도계속 불거지는 중이고요. - P164

"그러게 왜 누웠어." 반이 말했다.
"어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와." 백이 말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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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긴 노후에 돈이 어느 정도 있었으면 좋겠어? - P157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 - P159

지수네 집에 가기 전 기태는 편의점에서 레드와인 한 병과콘돔을 샀다. 그러곤 위생용품 진열대 주위를 서성이다 요샌편의점에서 이런 것도 다 파네?‘ 하고 병따개 모양의 플라스틱혀클리너를 하나 집어들었다. - P163

-자기야, 근데 나이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쉽게 찢어지더라. - P163

그런데도 수천 픽셀 위를 단숨에 미끄러지는 손끝 감각이 대책 없이 편안해 기태는 남의 삶을 자꾸 넋 놓고 바라봤다. - P167

눈빛이 아주 라스푸틴 같네. - P170

눈빛이 아주 라스푸틴 같고 자뻑 캐릭터네! - P171

람 같았다. 그러나 보다 인상적인 건 차대표의 안색과 표정이었다. 그건 기태가 거래처의 고위 간부나 임원을 접대하며 종좀 봐온 낯빛이었다.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뿜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가 있었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랄까.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 P176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
이라 불렀다. 음식의 원재료가 품은 바람의 기억, 햇빛의 감도와 함께 대장 속 섬모들이 꿈꾸듯 출렁일 때 그 평화와 소화의시간이 졸아든 게 바로 ‘내장의 관상‘이었다. - P179

-참, 요새 요가는 어때요? 배울 만해요?
요가라는 말에 기태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웠다. 차대표는 뭔가 고민하는 듯 살짝 뜸을 들이다 이내 활짝 웃으며답했다.
-음...... 요새 슬슬 지겨워지네? - P185

-오늘 만날까?
기태가 용기 내 반말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성적 기류가흐를 때 기태가 꺼내드는 카드였다. 이번에도 바로 ‘읽음‘ 표시가 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태는 여느 때처럼 목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게 식도염 탓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식도 위로 또 정체불명의 뜨거운 덩어리가 역류해 가까스로 삼켰는데, 그 덩어리에서 어느 짐승의 내장 맛이 났다. - P185

기진이 대학병원 본관 건물로 들어섰다. 인파 사이로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기진이 그쪽을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 P191

선주가 두 눈으로 딸의 옷차림을 훑었다. 단순한 갈색 면바지에 진회색 티셔츠를 걸쳤을 뿐인데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선주는 칠순이 다 된 나이에도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서울에만 오면 호기심어린 눈으로 행인들의 옷을 살폈다. 그러면서저중 본인 사이즈도 있을지 궁금해했다. 저런 건 어디서 사는지, 값은 또 얼마나 하는지도. 그러다 문득 자신의 입성을 점검하고 의심하는 얼굴로. - P193

서울에서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자꾸 할말이 떠오르는, 그러나 종일 그 말을 참는 얼굴을 하고. - P197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아니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예.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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