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앞에서 나는 약간 어리석은 쪽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다. 불안할 때 책점을 본다. 일종의 미신인데, 불안한 마음을 어디에라도 잠시 기댈 수 있게 하려는 나만의 꼼수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 손으로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다른 한손으론 그날 눈에 들어오는 책을 쥔다. 마음을 책 속으로 욱여넣은 뒤 양손으로 책을 잡는다. 경건한 마음이어야 한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책장을 더들어, 마음에 잡히는 페이지를 찾는다. 이거다 싶을 때, 선택한 페이지를 펼치며 눈을 뜬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인쇄된 환자 중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한 문장‘을 찾는다. 나를 위해 신이 준비해 놓은 문장(구절이나 단어라도 좋다)이라는 듯, 그걸 취하면 된다. 얼핏 수동적인 일 같지만, 문장을 찾는 일은 본인이 해야 하기에 좋은 눈을 장착해야 한다.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울었다.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를 감동하게 만들지만, 정확한 문장은 독자를 상처받게 한다. 살리기 위해 내는 상처다. ‘그 장면‘을 쓰려 할 때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 허기, 절박함, 떨림, 슬픔의 이유를 알았다. 고발이 아니라, 표현욕구가 아니라, 나는 떨어내고 싶어서 쓰고 싶은 거다. 쓴다는 건 벗어나는 일, 변태 후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그 장면‘에 속해있다. ‘그 장면‘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 P1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지금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쓸 수 없다. 깨끗한 실패. 깨끗한 성공. - P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 중간에 끼어 있는 ‘나도 무슨 소리를 내야만할 것 같은, 그런 식으로 나도 여기 살고 있다고 알리고싶은 밤에,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 P47

아이였을 때 꿈결에 걷곤 했다. 몸은 이불을차고 일어나 방을 나왔지만, 실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루를 맴돌 때도 있었고, 아예 집을 벗어날 때도 있었다. - P115

나에게는 낮이고 그녀에게는 밤인 시간이었다.
진실을 모두 말해 하지만 삐딱하게 말해진실은 차츰 눈부셔야 해안 그러면 다들 눈이 멀지도‘ - P143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좋은 건 쓸 수 없다. 진짜인것, 불의핵, 어둠의 씨앗, 사랑의 시발점 같은 것. 그런 건 밤의 한강에 빠져 죽었거나 펼쳐보지 않은 공책 귀퉁이에서 죽어간다. 발견되지 않는다. 납작하게 숨어있다. 적당히 좋은 건 쓸 필요가 없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