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앞에서 나는 약간 어리석은 쪽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다. 불안할 때 책점을 본다. 일종의 미신인데, 불안한 마음을 어디에라도 잠시 기댈 수 있게 하려는 나만의 꼼수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 손으로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다른 한손으론 그날 눈에 들어오는 책을 쥔다. 마음을 책 속으로 욱여넣은 뒤 양손으로 책을 잡는다. 경건한 마음이어야 한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책장을 더들어, 마음에 잡히는 페이지를 찾는다. 이거다 싶을 때, 선택한 페이지를 펼치며 눈을 뜬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인쇄된 환자 중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한 문장‘을 찾는다. 나를 위해 신이 준비해 놓은 문장(구절이나 단어라도 좋다)이라는 듯, 그걸 취하면 된다. 얼핏 수동적인 일 같지만, 문장을 찾는 일은 본인이 해야 하기에 좋은 눈을 장착해야 한다. - P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