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뭐 좋은 일 있어요?"
"사실은 내가 아지매한테 멀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 잘 왔소. 주책맞은 늙은 할망이 별소리를 다해서 아지매 놀라겄넹,
허허. 내 눈이 자꾸 쳐져 침침하니 쌍꺼풀 수술을 할랑하는데사람들 웃겄지마는……"
소맷부리로 질금거리는 눈물 찍어내며 웃는 할머니. 눈이 안 보인다는 핑계 삼아 할아버지에게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은 건 아닐까. - P99

"니 새끼들은 니 사랑 마이 처 묵어서 쪼매 먹어도 괘안타."
"하모여" - P115

교수님이 아픈 학우들에게 마음을 나눠주시는 걸보는 건 우리 모두에게 보약이 되었다. 그게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랬다 - P118

"이게 뭐여?"
"이모가 조카에게 주는 입학 선물! 예쁜 코트 하나 사서입히고 인증샷 보내."
"허얼~~ 순자 이모 선물이라고 전할게, 됐나? 씨!"
무뚝뚝한 부산 말투가 맛깔졌다.
새벽 4시 15분. 별 하나 없는 하늘을 쳐다본다. 가슴에 은하수가 흐른다. K도 그럴 것이다. 우린 이 밤에 별을 꺼내 반짝반짝 닦는다. - P121

나는 죽는 날까지 움켜쥔 300달러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 P126

이상하게 남자들하고 언쟁이 붙으면 아들을 부르게 됐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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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덜컹했다. 짧은 내 생각은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이 특정 드라마와 그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에게 실례가 된다는 데까지는 겨우겨우 가닿았으나, 그것이 막장에서 일하는 분들께도 상처가 되는 표현이라는 점에는 미처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이중의 무례함. 그 증거가 335 주 전 게시물에 박제되어 있다. ‘몰랐다‘는 말이 온전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말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렵지만 말을 하고서는 부덕을 피하기가 어렵다. 내 말과 글을 어딘가에 계속 남긴다는 것은 ‘N년 전 오늘‘을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저 그 과거의 오늘들이 쌓여 덜 무례하고 덜 실수하는 오늘을 만들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 지나는 오늘 또한 미래의 오늘이 좀 더 낫기 위한 뒷받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P73

그의 직업, 드라마 작가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일종의 시위로 해진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 해진과대구는 무려 기념일에도 불 꺼진 쏭쏭돈까스에서 만나 돈까스를 튀겨 먹는다. - P76

물론 작품성과 연기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결과 아침드라마 구성원 중에는 수상 적격자가 없었을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적격자없음‘이 시상식의 권위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해 시상식이 뜨는 드라마 몰아주기와 나눠 먹기 논란으로 시끄러운 것을 모두가 아는마당에 ‘베스트커플상‘과 남녀 ‘베스트 캐릭터상‘, ‘디렉터즈 어워드‘라는 괴상할 만큼 창조적인 이름들 사이에 특별상을 하나 얹을 수는없는 것이었을까? 상을 주지 않더라도 장르 자체가 사라지는 아침드라마에 대한 짧은 고별 순서조차 없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로 여겨졌다. 찾아보니 2020년까지는 ‘중장편 부문이 있어, 아침드라마를 비롯한 일일드라마와 중장편드라마를 시상했다. 2021년에 이 부문을 아예 없애버림에 따라 시즌 1이 방영된 2020년 당시 ‘중장편드라마‘에 속했던 <펜트하우스>가 2021년 시즌 2, 3으로 이어지면서는 ‘미니시리즈‘로 부문을 옮기게 되는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도 벌어졌다. 1818 펜트하우스>가 중장편에 속했던 2020년에는 SBS <연기대상> 중장편드라마 여자 최우수 연기상 부문에 <펜트하우스>의 김소연, 이지아, 유진, 그리고 <불새 2020>의 홍수아 배우가 후보로 올랐다. 네 명의 배우 중 김소연, 이지아, 유진 등 세 명에게 공동 수상을 안긴 것도 참으로 무례한 일이었다. 홍수아 배우가 후보 구색 맞추기에 장기짝처럼 사용되었다는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는지. 그 해 SBS 연기대상> 시상식은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 - P80

이토록 많은 사건들이 한 해 만에 다 튀어나온 까닭은 삶의 역동을 오이지 누름돌처럼 누르고 있었던, 혹은 나의 삶의 평탄함을 위해 나를 대신해서 가파른 오르내림을 반복해주었던 아침드라마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을까. 세상이 그 정도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을테니 당연히 그럴 리는 없지만, 적어도 아침드라마가 사라진 이후 삶이 조금 바뀐 것은 사실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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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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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써내려간 그의 해방일지 누구의 글도 아닌 자기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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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이 300부가 팔렸다, 좋다,
3천 부가 팔리고 3만 부가 팔리자슬그머니 겁이 나고 무서워졌다10만 부가 되어가자 아이쿠,
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뭔가 잘못된 것이다내가 잘못한 것이다10만 명이 읽었는데도 세상 사람들에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책은그냥 간식거리거나 쓰레기일 테니 - P21

누가 알까, 오늘 여기의 그대가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다른 길을 여는최초의 그 사람이 될지, 누가 아는가지금 감히 누가 안단 말인가 - P23

고통받을 그 무엇도 하지 않으면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 테니까 - P30

내 마지막 투신을 슬퍼 마라단 한 번 크게 던진내 삶의 절정낙과落果 - P33

여행을 떠나지 않은 이에게세상은 한쪽만 읽은 책과 같아탐험을 나서지 않은 이에게인생은 반쪽만 펼친 날개와 같아 - P39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나에게 가장 낯선 자인나 자신을 탐험하고 마주하는 것을그 하나를 찾아 살지 못하면내 생의 모든 수고와 발걸음들은다 덧없고 허무한 길이었기에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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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을 홀로 걸을 때나시련의 계절을 지날 때도널 지켜줄게붉은 목숨 바친그 푸른 약속이날 지켜주었음을 - P11

그래도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오고어려움이 많은 마음에 좋은 날이 오고눈 녹은 땅에 씨 뿌려가는 걸음마다봄이 걸어오네요꽃이 걸어오네요 - P15

작게 살지 마라지금 가진 건 작을지라도인간으로 작게 살지 마라 - P17

진정 사랑하다 죽어서내 품에 안고 걸어가 묻어준 것들은그 무게와 깊이만큼 생생히 살아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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