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가 해로운 것은 그것이 우리 자신을 똑바로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153

그런 의미에서 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수혜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 준다. 약자의 지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든지 존중하고 보호하는 법안이다. - P154

언제나 자신처럼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지 모를 어린이들의 삶을 걱정한다. 어린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반드시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는데, 거인답게손이 커서 달걀 1,728개를 넣어 만든 초대형 푸딩을 내놓기도 한다. - P157

심리학에 ‘부모화‘(parentification)라는 용어가 있다.
자녀가 오히려 부모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받는, 서로의 역할이 뒤바뀌는 상황을 말한다. 방치된 가운데 상상의 거인이라도 되어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어린이들은 동화 속에도있고 가까운 이웃집의 모진 사정 속에도 있다. - P159

글쓰기는 가장 용맹한 연대다. - P164

우리가 더 널리 분양해야 하는 것은 어린이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 P169

이익을 주는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약삭빠른 돈의 말들이 떠다닌다. 돈의 발화에 짓눌려 약자의 삶은 종종 거래의 대상이 된다. 이걸 줄 테니 저걸 달라는 탁한 목소리에휘둘리기 쉽다. 어린이는 경제적 권리도 정치적 투표권도없는 약자다. 그러나 어린이를 놓고서는 어떤 거래도 벌이지 말기 바란다. - P169

어린이는 모험으로 기존 권력을 무너뜨리는 전복적인순간을 사랑한다. 어린이는 ‘내가 다른 존재라면 어떨까 상상하기‘ 부문의 최강 실력자일 것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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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은 죽으면 안 되죠. 나쁜 놈을 죽여야죠."
"나 나쁜 년이야." - P116

상처는 벌어져 있고 핏물이 고여 있다. 딱지가 앉지않도록 계속 손으로 만진다.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단번에 피해자와 상처투성이로 되돌아가야 하니까. - P120

"안인수는 말했어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할 수 없는이들이 있다고 예정되지 않은 존재. 처음부터 천하게 쓰다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 그래서 결국엔 깨뜨릴 수밖에 없는 인생들도 있다고. 그리고 뻔뻔하게 이렇게 말했죠." - P129

아직도 우는 벌레가 있다니. 맞은편 빌라 4층 창가에 앉은 하얀 집고양이가 밤거리를 걷는 검은 고양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고요히 보는 것. 고요히 걷는 것. 고요히 생각하는 것. 무엇이 더 고요한가. - P140

둘은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았다. 정오의 빛이 잔잔한 물결을 따라 산란하게 흩어졌다. 등이 굽은 노인이 보조보행기 손잡이를 붙잡고 느리게 걸었고 한 무리의 자전거 동호회가 노인을 추월해 일렬로 지나갔다. - P145

유희진은 그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가 무엇인가를 완력으로 움켜쥔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한없이 약하게만 보였던 장선기의 오른팔은 주먹을 쥐는순간 잘 발달된 전완근이 도드라졌다. 유희진은 화제를살짝 틀었다. - P149

장선기는 웃었다. 눈동자가 사라지며 초승달 모양으로접히는 눈. 앞니가 살짝 보이며 팔자 주름이 깊게 새겨지는 얼굴. 재밌지도 않은 이상한 순간에 웃네. 의아했지만웃음에 전염되어 유희진도 따라 웃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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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의 죽음에 대한,‘ 굴욕에 대한‘ 후버 댐에 대한, 그리고 글 쓰는 법에 대한 글이 있다. 어느 저자의 책상 위물건들을 적은 일람표‘가 있고, 안경을 쓰지 않는 그 저자의 안경 착용 설명서‘가 있다. - P11

이런 글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글이름이 무려 에세이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40 - P15

다시 말해, 에세이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시험하는 글이 아니라 대상을 측정하는 글이다. 글 자체의 힘, 글을 쓰는 저자의 힘을 재는 글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재는 글이다. 에세이쓰기essaying는 가늠하기assaying이다. - P13

몽테뉴의 에세이들이 어떤 종류의 자아를 수용하고 표현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세이의 주체, 써보는주체가 어떤 존재인가 하면, 몽롱하고 산만하고 정신을잃을 위험이 있는 존재, 그렇게 자기를 잃어버렸다가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하면서 정신을 차리는 존재다. 의식의 자리를 떠난 ‘나‘는 의식의 반대편 끝에서 사방으로흩어진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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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중반이었다. 나는 고향의 한 작은 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그해가 가기 전 고향을 영영 등졌다. 공교롭게도 그해 늦여름과 이른 가을의 시간이 지금도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나기에, 그때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한다. 나도 슬슬 과거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현재는 고단하고 맹숭맹숭하게 흘러가는 그런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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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숍 직원이 아로마 오일을 듬뿍 바른 손으로 서진의 목과 어깨, 쇄골을 부드럽게 매만진다. 그 옆에서 발마사지를 받으며 서진의 기분과 안색을 살핀다. - P242

괌 다녀와서 사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엄마, 사주기 싫어서 그래? - P244

실소가 터져나온다. 새벽마다 약수터 다니는 사람이 각혈은 무슨. 지지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들을 흘려듣다서진에게 묻는다. - P248

지지. 나는 그 말이 끔찍이 싫었다. - P250

나는 아이가 나를 닮았기를 내심 바랐다. 물에 물 탄 듯주견 없는 남편을 닮기보다는 나처럼 강단 있기를, 제주관을 마음껏 펼치며 살기를, 이 아이의 기원은 그러하기를 바랐다. - P258

부모랑 연이 없는 이름이란다. 특히 엄마랑 불화하게된다더라. - P257

네 할아버지가 너희 집에 부적 붙이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아니, 네 할아버지는 너희 집 비밀번호 모르는 거지?
그거 엄마한테만 알려준 거 맞지? - P261

기가 차다못해 헛웃음만 나온다. 범죄? 과외 금지령 선포되었을 때 제 아들 승용차 과외 시켜 대학 보낸 사람이,
거래처에 술값 하라며 찔러준 뒷돈만 돈천은 될 사람이범죄 운운하다니. 손주를 위한 계획과 희생을 그런 말로오염시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서진은시부의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전한다. - P265

사랑에 갈급해서 제가 받지 못한 걸 죄 자식에게 쥐여주려고 하잖니. - P272

육아는 남편이 아닌 시부와 하는 것 같았다. 겨루듯 치열히. - P277

시부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나를 본다. 시부의 안색은좋지 않지만 아랑곳 않고 마음 깊은 곳에 들러붙어 있던노여움을 끄집어낸다. - P285

괌행 비행기 출국 알림 방송이 들려온다. 시부와 나사이에서 서진은 무슨 말인가 한다. 연갈색 눈을 굴리며, 아주 작게, 기운이 다 빠진 소리로, 힘겹게. 하지만 나는, - P297

우린 시대를 잘못 탔어. 80년대에 젊음을 누렸어야 했는데, 백두산, 시나위, 블랙홀에 모두 열광하던 시대에. - P300

그들이 내뱉는 「Ich Will」의 독일어 가사는 관객에게이질감을 느끼게 했으나, 그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는 데에는 충분했다. - P302

피서철이 되면 우림은 퇴실을 마친 방에 몰래 들어가투숙객이 두고 간 맥주를 챙겼다. 김이 빠졌건 미지근하건 가리지 않고 전부. 그렇게 챙긴 술을 백팩에 넣고 해변으로 가면 시우와 조현이 오토바이의 전조등을 밝힌 채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 P304

시우는 메탈리카도 창고에서 첫 데모를 녹음하지 않았냐며 위대한 밴드는 모두 창고에서 탄생했다고 말했고,
조현과 우림은 그 말에 깊이 동조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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