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라는 이름은."
"수차水車 이름." - P75

"왜 여기에 수차가 있어?"
"여기는 발전소야. 작은 수력발전소." - P75

땅울림 같은 소리는 암모나이트 내부에 대량의 차가운 물이두께와 중량을 수반하고 흘러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속도에너지‘와 ‘압력 에너지‘라고 가즈히코가 말했었지. 압력에는소리가 없을 테니까 이것은 아마도 속도의 소리일 것이다. - P78

"다른 방을 돌아서 즉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나 에어컨에 뺏긴뒤의 하급 전기로는 음이 탁해지거든. 그러니까 까다로운 사람은 벽의 콘센트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전봇대에서 직접 전기를끌어오기도 해. 웃기는 소리 같지만 내가 직접 귀로 듣고 확인한 거니까 사실이야." - P79

눈을 감고 듣던 게이코는 자기가 시카고의 호텔 로비에서 소파에 앉아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P85

며칠 지나서 체크아웃을 마치면 방은 정돈되고, 앞에 묵었던손님의 기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호텔 소리를 천천히 페이드아웃시키면서 가즈히코는 오디오 스위치를 껐다. - P85

지금까지 한동안 없이 지내던 일, 멀어져 있던 일이 이렇게갑자기 시작되었다. 강을 건넜다. 강을 다 건너서 다리 이음새의 단차를 덜컹하고 넘었을 때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게이코 안에서 솟구쳤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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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등장인물도 극영화의 배우들처럼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건축 스케줄에 대해서나는 결정권이 없다.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 사이를 중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 P55

나는 왜 정기용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는지를 다시자문했다. 나는 정기용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정기용이 죽기를 바란 것은아니다. 촬영하는 내내 정기용의 건강을 염려했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일이 그에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랐다. - P61

누가 이야기와 플롯의 차이를 묻는다면 나는 이 책에서 읽은 부분을 말하곤 했다. 소
설가 E.M. 포스터가 소설의 이해란 책에서 설명한 이야기와 플롯의 차이를 책에서 다시 인용한 부분이다. "왕이 죽고 나서 왕비도 죽었다. 두 가지 사건에 대한 간단한 해설,
이것은 줄거리다. 그러나 첫째 장면(왕의 죽음)과 둘째 장면(왕비)을 연결 짓고, 한 행동을 다른 행동의 결과로 만들면플롯이 된다. 왕이 죽자 슬픔에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 - P65

찬란한 하얀 성이라 믿었던 논픽션의 문턱에서 암초를 만났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의 메인 사건은 마치 극영화의 캐스팅을 기다리는 과정처럼 지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67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며 플롯은 단단히 구축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에 있어서의 플롯은 촬영이라는 물리적 과정을 동반하고 비용을 발생시키는 안타까운 잉여노동의 생산물이다. 생산물인데 부산물인 셈이다. - P69

이 영화를 본 이후부터 나는 빨리 서사를 구축해야겠다는 망상에서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억지로 사건을 만들고 플롯을 구성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이야기는 억지로 이야기를 쥐어 짜내서 만든 이야기다. - P75

당분간은 편하고 자유롭게 정기용의 옆에서 그의 일과 그의말을 지켜보기로 하자.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책을하지 말자. 오늘 하루도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 P75

땅속에 잠들고 있는 흙을 일깨워 지표면 위에 벽을 세우고공간을 만들며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위대한 일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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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의 조건」은 미국에 사는 어느 백인 모녀의 이야기다. - P42

꼬마 콜리는 경악했으며 이내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순서대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어떤경우에는, 딸이 엄마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 P43

"보면, 엄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는 거 같아. 나는어제의 나를 이길 거야. 그런데 사실, 요즘 사람들이 다들그렇지 않아?" - P46

한참 뒤에 깨달은 거긴 하지만, 그때 콜리 엄마가 한 말은 참으로아름다웠다.
"여긴 해 떴잖아. 괜찮아." - P47

"하루는 아빠가 이러는 거야. 조깅할 때 총은 왜 안 가지고다니는 거냐고. 내가 그랬지. 첫째, 총은 무겁잖아. 둘째,
총이잖아."
"음, 그럼 총을 아예 양손에 들고 다니면 어떨까? 덤벨처럼?" - P50

"나왔어."
콜리의 시카고 시절에 엄마는 불쑥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말하곤 했다. - P52

문득 콜리는 자기 가슴 위로 손을 가져와 작게 토닥이는 시늉을했다. "괜찮아, 엄마도 잘 해냈잖아." 그러면서 그녀는 글썽거렸고,
"미안해" 하고 웃으며 후드를 잡아 당겨와서 두 뺨 위에 흘러내리고있던 눈물을 슥슥 닦아 냈다. - P57

콜리의 말이 옳다. 시간은 정말 이상하다. 시간은 절대로 당신‘ 손에잡히지 않지만 늘 곁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죽음 같은 것이다. 혹은,
죽은 엄마 같은 것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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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블루다. 흑진주처럼 까맣게윤이 나는 콜리의 피부에 너무 잘 어울리는 로열블루. 한두 주에 한번 우리가 만날 때마다 콜리는 늘 짙은 파란색 헤드폰을 끼고 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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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나는 것은 거의가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모든 시선에 이름표가 달려 있다. - P43

젖먹이를 아기용 욕조에서 꺼내 타월에 싸고, 꼼꼼하게닦아서 옷을 입히는 듯한 매끄러운 손놀림에 게이코는 시선을빼앗겼다.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움직임인가. - P45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이 저물어서 부엌 유리창에 비친 강가의 나무들이 점점 어둠에 빈틈없이 잠기기 시작하고 대신 백열등에 비친 네 사람의 얼굴이 유리창에 떠오르고 있었다. - P46

"거들까요?"라고 해보았지만, 데라토미노는 "아뇨, 오늘은손님이니까"라고 말했다. ‘오늘은‘이라는 말이 게이코의 귀에남았다. - P47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각의 리얼한 광경이 냄새와 습도,
기온과 바람, 진동까지 수반하면서 눈앞에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지금 움직이고 있다. - P50

문에 이고요함의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아직 괜찮다. 나가려고 하면 가즈히코가 붙들까?
게이코는 문에 등을 돌린 채 시야 안에 의식을 표류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욕실의 수증기처럼. - P63

가즈히코가 소리 없이 웃는다. 그 숨결이 게이코의 쇄골을 쓰다듬는다. - P70

"홍차를 마시고 나면 오두막으로 안내할까?"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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