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평 살림을 14평으로 줄이는 일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엄청나게 팔고 버렸지만 여전히 많았다. 집 크기에 비해옷, 책, 그릇, 신발이 넘쳤다. 꾸역꾸역 살림을 집어넣었다.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게 아니라, 물건 더미에서 살곳을 찾는 느낌이었다. 끝내 못 들여놓은 아빠 책상은 1층주차장에 두었다. - P111

"엄마 덕분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잖아."
엄마가 잠깐 손을 멈추더니 뒤돌아서 나갔다. 우는 것 같았다. - P115

"왜 못 하게 해. 동거녀, 좋잖아. 뭔가 아직도 꽤 근사한남자랑 연애하고 막 같이 살 가능성이 남아 있는 느낌이잖아?" - P117

"어른이 왜 솔직해? 마음을 좀 숨겨. 솔직히 말하는 인터뷰한 다음에 아파트 카페에서도 쫓겨났잖아. 거북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왜 진하한테는 길고양이랑 빌라촌 애들 얘길 같이 했어. 진하는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 P127

안방과 내 방 사이에 거실이 사라지면서, 벽걸이 에어컨냉기에 의지해 네 명이 잠들어야 하는 열대야를 보내면서,
많은 걸 엿듣게 되었다. - P135

"제 용돈은 그만 주셔도 돼요. 저 알바할 거거든요. 이건잘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 P151

이사 온 지 사흘이 되었다. 화장실이 하나라 순서를 정해씻어야 했다. 방이 넷, 화장실이 둘인 곳에 살 땐 겪지 않았던 불편함이었다. 대소변을 참기 힘들 땐 402호 화장실을이용했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마음대로 못 먹는 것보다, 마음대로 못 싸는 게 가난이라는 - P157

"진하 엄마는 인상이 저래서 미용실을 어떻게 하니?"
엄마가 물었다.
"실력으로."
내가 대답했다. - P164

진하가 약을 올렸다. 할 말이 없었다. 진하 말이 맞으니까.
진하의 비결은 ‘달력종이‘였다. 달력종이 뒷면에 리모컨을크게 그려 놓고, 사용법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해 준 것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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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손자를 괴롭힌 아이들이 하늘의 벌 대신 현실의 벌로 단죄되기를 강력히 원한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두메시지 다 발신 시각이 오전 다섯 시 30분경으로찍혀 있었다. 그 이른 시간에, 타인에게 저런 장황한 메시지를 보내는 이의 머릿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런 사람과도 이성적인 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세영은 잠시 생각했다. - P15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냈는지 아직 모르는 물건이었다. 종이 쇼핑백은 흰색의 미끈한 유광 재질이었고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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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영어로 시를 써본 적이 없는데?
저는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오릿이 말했습니다. - P111

그럼 시를 쓰지 않을 때의 나는 박스 뚜껑을 닫고 잠자는 사람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 P87

오릿이 말했다. - P71

어제는 코토미의 책을 읽다가 잤다. 코토미에게 할질문을 줄이기 위해서? 혹은 코토미에게 할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 둘 다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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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섬나라다.
반도가 아니다. 삼면이, 삼면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이 형용모순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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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오미림은 왕의 지시에 따르는 동시에, 시녀에게별걸 다 시켜 먹는 왕자 공주 같았고. - P67

"여보, 우리 수림이가 밥을 할 줄 아네요. 김치찌개 맛있어요.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요. 당신은 역경을 이겨 내는 멋진 여자잖아요." - P69

"난 이 집에서만 모지리였어." - P75

나는 더 이상 원더 그랜디움 103동 1504호 모지리가 아니다. 1군들이 다 말아먹은 시즌 마지막 경기, 눈부시게 등판한 구원투수랄까. - P79

순례 주택 사람들은 자꾸 꿈같은 얘길 한다. 1군들을대평가하고 있었다. 어려운 순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려고 애쓰는, 본인들과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 P90

나는 옥탑방을 나섰다. 두려웠다. 1군들 때문에 나까지 거북 마을 사람들이랑 멀어질까 봐. 진하, 병하 오빠, 원장님, 박사님, 길동 씨 부부, 사장님…………… 멀어져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93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씨를 만났을까.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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