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중간에 끼어 있는 ‘나도 무슨 소리를 내야만할 것 같은, 그런 식으로 나도 여기 살고 있다고 알리고싶은 밤에,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 P47
아이였을 때 꿈결에 걷곤 했다. 몸은 이불을차고 일어나 방을 나왔지만, 실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루를 맴돌 때도 있었고, 아예 집을 벗어날 때도 있었다. - P115
나에게는 낮이고 그녀에게는 밤인 시간이었다.진실을 모두 말해 하지만 삐딱하게 말해진실은 차츰 눈부셔야 해안 그러면 다들 눈이 멀지도‘ - P143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 P137
가장 좋은 건 쓸 수 없다. 진짜인것, 불의핵, 어둠의 씨앗, 사랑의 시발점 같은 것. 그런 건 밤의 한강에 빠져 죽었거나 펼쳐보지 않은 공책 귀퉁이에서 죽어간다. 발견되지 않는다. 납작하게 숨어있다. 적당히 좋은 건 쓸 필요가 없다. - P143
사장님은 창작이 전무와 전부라고 했고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잘 쓰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 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 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 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 P190
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다. 때로 급진주의자들은 문을 찾지는 않고 벽이 너무 거대하고 견고하고막막하고 경첩도 손잡이도 열쇠 구멍도 없다고 벽을 비난하는 데 안주하거나, 문을 통과해 터벅터벅 나아가면서도 새로운 벽을 찾아댄다."♦ 리베카 솔닛, 어둠 속의 희망, 창비 - P142
내해여, 내해여평생 땅만 바라봐서땅하고만 이야기할 줄 안다는 어르신여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여흙 한 줌 없는 곳이 어데 사람 살데여아들 따라 낯선 동네 와보니겨울바람처럼 쌩한 며느리 밥그냥 목구멍에 처넣으면 죽기야 하련밥을 퍼 넣다 혼절하셨다던데밥 위, 얹어드린 생선 토막과 나를 한참 쳐다보다일주일 만에 처음 입 여셨다샥시도 묵으야지 수저를 내민다눈물 한 방울 얹어 밀어 넣자내해여, 내해여한껏 신명 나셨다무엇이 내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