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배낭여행자란 애초에 제대로 된 식당에서 식사할 여유가 없을 거란 얘기다. 나이는 어리고, 체력은 넘치며, 돈은 부족할 테니까 - P25

그리고 어지간한 건 여행지에서 산다. 이렇게 말하면 네에? 돈 많은가 봐요? 라는 소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고요. 잠깐 여행하는 데 뭐 그렇게까지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가 다 필요하지 않단 걸 이젠 알게 된 거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텐데, 출발 전에 미리 손톱을 짤막하게 자르고 가는 걸로 2주 정도는 오케이인 사람이 있고, 이틀에 한 번은 손톱을 다듬고 싶은 사람도 있다. 평소에 쓰는 딱 그 손톱깎이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브랜드의 생리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도, 익숙한 제품이 아니면 곤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 P27

여행 중에 돈 쓸 일이 생기면, 이라고 이야길 시작하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여행은 애초에 돈을 쓰러 가는 거다.
1월 한 푼 벌지 않고 수십 수백만 원을 쓰고만 오는 거죠. 어쨌든 이럴 때, 일단은 가능한 그 지역의 것을 소비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은 숙소를 고를 때나 식사를 할 때, 이런저런 체험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우선순위의 기준이 되어준다. 이왕이면 이쪽으로 하자는 마음. - P33

지하철 누에보스 미니스테리오스 역 바로 앞이라 찾기도 쉽다. 무려 1,800평 넓이의 4층짜리 거대한 자라 건물이라니 굉장하죠. 그야말로 자라 중의 자라랍니다. - P35

그만큼 무서웠지만, 그 와중에 또 재미는 엄청나게 있어서 멈추진 못했다. 2주 동안 그렇게도 열심히 걸어다닌 나의 방콕은, 이제 와서 구글 지도를 켜고 다시 들여다보니 도시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좁거나 넓은 길을 돌고 또 돌았는데도, 그렇게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았는데도.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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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안정제 주사 한방이면 엄마가 전처럼 괜찮아질 거라 확신했고, 그때그때 적당히 무마하면서 몇 년은 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P207

이제 무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고, 모든 것이 작용과 반작용일 뿐이었다. - P209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모습에서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 P215

엄마의 승인을 받지 않는다면 절대로내가 예쁘다고 느끼지 못할 텐데. 엄마가 그 자리에 없다면 보나마나 나는 쓸쓸한 신부가 될 것이다. - P219

욕창과 오줌줄 대신 배색과 올림머리와 새우칵테일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결혼식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무엇이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축하 행사였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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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전날엔 별게 다 먹고 싶어진다. 배달앱을 켰다 껐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기를 정신 사납게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시켜, 말아? 건강검진 취소해, 말아? 마감이 코앞일 땐 갑자기 옷장을 싹 정리하고 싶고, 잔고가 간당간당할 땐 너무너무 쇼핑이 하고 싶다. 요건 진짜 지금 안 사면 재입고 안 될 것 같은데! 양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나면 우와, 당장 휴대폰을 만지고싶다. 거울같이 닦아둔 액정에 손자국이 미친 듯이 찍히겠지만 SNS를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더 미치겠다. - P3

가끔 생각한다. 세상엔 분명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이걸 믿지 않으면 창작을 할 수 없다. 휘발되어버리기 쉬운 연약한 확신이지만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고 북돋운다. 어딘가엔 있을 거야. 나만 할 수 있는 노래와 춤, 맛과 향, 소리와 그림 그리고 이야기가. - P4

그분 : 한국 사람은 이게 문제야. 촌스럽게, 어,
외국 나와서까지 한식을 먹고 말이야.
나 : (대답하지 않음)그분 : 세계화가 안 되어서 그래. 나는 비프로 줘요.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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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자기모순을 일으키며 느낄 수 있는 모든 통점을 자극한다. 고독은 내가 함부로 길들이거나 달랠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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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점은 애당초 세살 아이에게 합당한 곳이 아니었다. - P92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p134, 〈열과裂果》 - P95

다툼은 서점 안에서도 카운터에서 벌어지는데,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터이자 가게라는 장소성 덕분에 언성을 높인 적은 없었다. 절제된 보컬리스트처럼 감정이복받치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일상적 대화에서 벗어나지 않은음역대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우리였다. - P99

이른 아침 돌연히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는 내게 묻는다. "서점 해볼 생각 있느냐."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 후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도 내 입은 똑같은 대답을 발음하게 될까, 아니면 고개를 젓고 미지의 삶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될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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