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질이 뭐야?" 샘이 물었다.
"설사병." 세이디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도 처음엔 몰랐어." - P38

"동&봉 뉴욕스타일 피자하우스‘ 동하고 봉은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이름이야. 한국어로는 딱히 웃긴 이름은 아닌데. 이를테면 잭과 질 같은 거지." 샘이 말했다. "가게는 K타운의 윌셔에있어." - P39

다른 사람하고 같이 노는 것은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그것은속마음을 열고, 나를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다치더라도 감내하겠다는 뜻이다. 개로 치면 배를 드러내고 누워 꼬리를 흔드는 셈이다-네가 나를 해코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난 알아.
그리고 이 개는 주둥이를 들이대고 내 손을 마구 핥지만 절대 물어뜯지는 않는다. 같이 노는 것은 신뢰와 사랑을 필요로 한다. - P44

"아가, 나중에 가면 그 얘기가 나올 테고, 그럼 그 친구 마음이상할 수도 있어, 그 친구가 네 의도를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자선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 P47

"자바를 존중해? 아 진짜, 누군지 몰라도 좆까라 그래. 하여간.
자기 자신을 흥분시키는 언어를 고르라고." - P51

시구가 몇 구절씩 화면 상단에서 떨어지고, 화면 하단을 따라 움직이며 잉크를 쏘는 깃털 펜을 이용해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맞게 시구를 순서대로 쏘아 맞혀야 한다. 그렇게 시를 몇 편 완성하여 레벨을 클리어하고 나면, 애머스트 생가에 있는 에밀리의 방을 꾸밀 수 있는 포인트를 얻는다. - P55

샘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 공유한 게임에 대한 언급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같이 놀자는 초대였다.
세이디는 뒤로 몸을 돌렸다. - P64

세이디는 메모를 반으로 접고 겉면에 README라고 적었다.
샘이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넣으면 화면은 온통 미안해, 샘으로가득찰 것이다. 만약 샘이 세이디의 사과를 받아들이면 프로그램은 끝난다. 반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샘이 사과를 받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 P74

"항상 명심하렴, 우리 세이디. 인생은 아주 길어, 짧지만 않으면." 세이디는 그 말이 동어반복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말은 진실이었다. - P76

"웬 남자의 페티시 모음집인 게임을 하고 싶진 않은데요." 세이디가 말했다. - P81

"네가 뭔 상관이야? 우린 진짜 친구도 아닌데, 기억 안나?" 세이디는 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리고 사전에 연락도없이 남의 집에 불쑥 나타나는 건 실례야." - P89

"걔가 갖고 싶어하는 건 걔네 부모님이 다 사줄 텐데요. 봉투뒷면에 그린 그딴 시시한 그림이 갖고 싶겠어요?" 샘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동현이 말했다. "원하는 건 부모님이 다사줄 수 있으니까." - P93

"왜냐하면, "샘은 말문을 열며 생각했다. 이 단어를 클릭하면 그뜻을 설명하는 링크가 전부 뜹니다. 왜냐하면 넌 나의 가장 오랜 친구니까. 왜냐하면 옛날에 내가 바닥을 쳤을 때 네가 나를 구했으니까. 왜냐하면 너 아니었으면 난 죽었든가 어린이 정신병원에 갔을 테니까. 왜냐하면 너한테 빚이 있으니까. 왜냐하면 내 맘대로 우리가 함께 엄청난 게임을 만드는 미래를 꿈꾸고 있으니까, 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만 한다면. "왜냐하면, "샘은 버벅거렸다. - P101

우리는 다시 걸어서 시내로 돌아왔어요, 돌아오는 길에샘이 진지한 얼굴로 저를 보면서 이러더군요. "세이디,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내가 너한테 유리꽃 전시장에 가자고 했다고 말해줘. 문이 닫혀 있더란 얘기는 빼고." 신화, 전설, 일화, 뭐라 부르든 하여간 그런 게 샘한테는 항상 최고로 중요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샘을 배신하는 셈이네요. - P113

훌륭한 도둑이 되는 비결은, 늘 느끼는 거지만, 극도로 두꺼운 낯짝이었다. 그 주 후반에 샘은 하버드 대학생협에서 컬러 마커 한상자를 훔쳤다. 마크스가 준 거대한 코트의 거대한 주머니에 그냥슥 넣고 유유히 문밖으로 걸어나왔다. - P117

"바로 그거야. 내가 공주님을 구할 수 있었어, 침대에서 몸을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웠을 때에도. 그래, 난 부자가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어. 너도 알다시피 난 바닥 모를 야심과 욕망의 구렁텅이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기분좋은 걸 만들고 싶어. 우리같은 꼬마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문제를 잊은 채 플레이하고 싶어할 만한 것을." - P119

그러나 그때쯤엔 이미 자신들의 후원자 마크스와 연극 공연은 세이디의 안중에 없었다. 세이디는 자신이 만들어낼 폭풍우를 상상하는 중이었다. - P125

*
‘실제 인과관계가 없는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일컫는 칼 융의 심리학 용어.
136

봉자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넌 백 퍼센트 완벽하고 훌륭한 한국 아이야, 이 할미가 사랑하는."
빨간불에 걸리자 봉자는 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어서 이마에 뽀뽀하고 그다음엔 유대인 촌의 부처처럼 동그랗고 달콤한 양쪽 뺨에도 뽀뽀했다. 샘은 할머니의 거짓말을 토 달지 않고 받아들였다. - P145

그러나 마크스가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믿었다. 마크스는 이치고를 아주 좋아했다. 샘을 아주 좋아했다. 세이디 역시,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 P153

"그게 그렇게 만만하면 네가 저 빌어먹을 폭풍우를 한번 구현해보든가!" 세이디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고, 일단 혼자가 되자 두 눈에서 아주 쉽게 폭풍우가 만들어졌다. - P159

샘이 세이디와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날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후, <이치고가 완성됐다. 샘이 약속했던 것보다 3개월반이 더 걸렸다. - P169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샘은 <이치고>와 세이디 얘기를주절주절 늘어놓았고, 게임을 하지 않는 안데르스는 샘을 멍하니, 그러나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자네는 사랑을 찾은듯하구먼?"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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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가 스스로를 메이저라 칭하기 전에는 샘슨 메이저였고,
샘슨 메이저Mazer이기 전에는 샘슨 매서Masur였으며 단 두 글자를 바꿈으로써 겉보기에 멀쩡한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 창조 전문가로 변신했다-어린 시절에는 샘이었고, 할아버지 가게에 있는 <동키콩> 오락기 속 명예의 전당에는 S.A.M.으로 올랐지만,
어쨌든 대체로는 샘이었다.

막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찰나, 세이디가 돌아서더니 샘에게 달려왔다. "샘! 너 아직도 게임하니?"
"그럼." 샘은 좀 과하다 싶게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 P25

"자." 세이디가 3.5인치 디스켓을 샘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내가 만든 게임이야. 아마 넌 무시무시하게 바쁘겠지만 혹시시간 나면 한번 플레이해봐. 네 의견이 무척 듣고 싶거든." - P26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었다. "자네에겐 놀라운 재능이 있어, 샘. 하지만 무언가를 잘한다는 게 꼭 좋아한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둘필요가 있지." - P27

마크스가 코트를 걸쳤다- 세이디 것처럼 낙타색 코트였다.
"네 친구 진짜 죽인다. 어쩌면 천재일지도. 그런 놈은 또 어떻게알게 됐어?" - P29

샘을 처음 만난 날, 세이디는 언니 앨리스의 병실에서 쫓겨난상태였다. 앨리스는 열세 살답게 기분이 오락가락했고, 한편으론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답게 기분이 안 좋았다. 이들 자매의 어머니 섀린은, 하나의 몸뚱이로 사춘기와 암이라는 이중 폭풍 전선을 붙잡고 싸우는 건 감당하기 벅찬 일이라며 앨리스에겐 아주많은 양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아주 많은 양의 자유란세이디에게는 앨리스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대기실에 있어야 함을 뜻했다.

세이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진짜 잘한다. 난 네가 죽은다음에 하지 뭐." - P34

"너 좀 이상한 애구나." 샘의 말투에 흥미와 관심이 묻어났다.
"나도 알아." 세이디가 말했다. "발을 절단해야 할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 샘. 그나저나 우리 언니는 암이야."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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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말을 좀 믿겠어?
"아니, 갑작스럽게 무릎 속에서 말해 봤자 누가 믿어요, 그걸." - P213

그런 건 인간의 기준일 뿐이야. 우리에겐 훨씬 더 심도 깊고 유능한 선별 시스템이 있었지. 시스템의 결정은언제나 옳아. 선택된 자들은 선택되지 않은 자들보다 공동체에 덜 기여한다. 그건 확실해.
"확실하긴 뭐가 확실해요. 고등하다더니 순 엉터리네 - P215

…………너는 정말로 지구인이구나. 그래, 내가 지켜본 지구의 역사도 그랬다.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따지고 덤비고, 흐르는 피를 아까워하지 않고 싸웠다. - P217

딱히 어려운 일은 아냐. 그냥 지금처럼 달리기만 하면된다. 운동에너지는 내가 알아서 흡수할 테니까. 정말 조금만 있으면 된다. - P219

아니다. 거길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지만 너는꽤 잘 달렸어. 그런데 매일 뛰어서 어디로 가고 있었던거지? 그 늦은 시간에.
"어딜 가긴요. 그냥 달렸죠. 할 일이 없으니까." - P221

달리기는 보통 해가 지고 나서 시원해진 시간을 택했으므로 아침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릎에 외계인이 사는 것과는 별개로 나도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 P226

"어딜 가냐니까요?"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다 모인 거예요?"
그래, 이 정도면 지구의 중력쯤은 충분히 벗어날 수있어. - P231

나 오늘 비눗방울 되는 약 먹었어.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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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로 닥쳐왔다.
진평강 하류에 떠내려온 두 사람의 시신을 처음 발견하고 신고한 건 여름 보충수업에 등교 중이던 진평고 학생들이었다. 두 남녀의 시신은 엉켜 있어 끌어안고 있는 듯 보였고 사체를 뜯어먹는 다슬기가 얼굴을뒤덮고 있었다. 8월 초 무더운 여름날 높은 수온으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된 상태였다. 남자는 진평 소방서구조대 반장 최창석이었고 여자는 작년에 진평으로 이사 와 미용실을 운영하던 전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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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가 왜 중앙공원이냐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맨해튼 중앙에 있는 공원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센트럴파크가 계획될 때는 조금 더 동쪽에 치우친 66번가에서 75번가 정도의 위치였고 규모도 훨씬 작았다고 한다. 후에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크기도 커지고 위치도 도시 중앙으로 결정되었다. 덕분에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모두의 공원이 될 수 있었다. ‘중앙공원‘이라는 명칭은 이 공원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꽤 정확한 번역인 것이다.

베데스다테라스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존 레넌이 살던 아파트 더다코타(The Dakota)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으로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가 있다. 존과 요코가 중앙공원을 산책했다면 반드시 지나갔을 법한 위치다. 여기에는 언제나 비틀스 팬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 비틀스의 음악을 연주하고
‘IMAGINE‘이라고 쓰인 모자이크 위에는 존 레넌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 P123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땡땡이란 역시 좀 싱겁다. - P128

재즈는 무규칙적이고 즉흥적이면서 지적이다. 화음과 코드 진행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자유롭고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한히 확장한다. 이 음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닮아 있다. 뉴욕에서 재즈가 발전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느껴진다. 지난 세기 내내 7번 애비뉴 한구석 피자집과 세탁소 사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래된 재즈 클럽의 문을 열고 열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생각한다. 현재의 뉴욕에 사는 나도 지금 재즈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고

상대의 모든 면을 나열하고나면 귀납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감정의 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그 대상에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누더기같이 콜라주된 이 모순된 도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리스트를 계속 이어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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