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이야기에서 촉발된 감각에 감정과 사고와 욕망이 뒤엉킨 잔여물을 우리는 기억이라 이름 지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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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사라졌는데 내 안에서는 여전히 사무치는 것이있다. 부유하며. 명멸하며. 빛나던 것이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 여전히 보인다. 보았던 것이 보이는 것에 잔존한다. 영상이 중첩되면서 정지된 것조차 운동하는 것만같다. 죽은 것이 산 것만 같다. 잔상이라 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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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걸린 일이다. 본다는 것은. 빛이 달려, 물상에 부딪힌 다음, 안구에서 굴절되어, 이미지를 이룰 때까지는. 어둠이 퍼져, 망막으로 흡수되어, 나약하나마확실한 존재감을 주장할 때까지는. 이 모든 작용은 동시에, 찰나에, 완수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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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X언니 키키
백요선.김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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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힌다고 쉽게 쓴 글은 아니다 성실하게 부딪힌 삶의 조각들을 뜨끈하게 맞춰낸 두 사람의 퍼즐 부스터가 되는 문장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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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칼질한 것을 편집자가 또 칼질하면 그 작가의 문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역자는 번역을 하는 사람이고,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사람이다. 칼질을 하든 못질을 하든 편집자의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번역을 넘긴 뒤에는 전문가인 편집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주의다. 물론 역자 교정을 볼 때, 문장을 잘못 이해하고 고친 부분이나 터무니없는 칼질과 못질은 바로잡는다. - P177

하루키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하여 그의 소설은 도맡아 번역하고 있다. 번역을 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많아도, 소설쓰다 번역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거라며 은근 자화자찬하는 하루키. 요즘 우리나라에는 소설을 쓰다가 번역하는 분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 P180

탈고한 뒤에는 절대 자기 책을 돌아보지않기 때문에 어디가 빠졌는지 더해졌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탈고한 책을 다시 읽어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런 멋진 표현을 썼다. "그건 마치 벗어놓은 양말 냄새를맡는 것과 같아서." - P181

그러나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품이 알고 보면 부품이 담긴 비닐봉지일때가 있다. 판매할 때는 부품을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하지만, 조립할 때는 봉지가 필요 없다. 부품인지 비닐봉지인지 구분하는 안목은 아무래도 경험에서 나오겠으나, 되도록 깔끔한 번역을 위해서 군더더기가 될 것 같은 단어나 조사는 미련 없이 버리자. - P189

누구든 남의 번역을 보고 고치고 트집 잡는 건 참 쉬운데, 원문에 심취한 사람이 자기 번역의 문제점을 찾는 건쉽지 않다. 그래도 며칠 뒤에 다시 보면 약간은 객관적인시각으로 문장을 보게 된다. 아무리 그 작업이 "벗어놓은양말 냄새를 맡는 것"처럼 괴롭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의번역문을 자꾸자꾸 읽고 다듬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 P192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치는 총명함……… 이라고 자랑하고 싶지만, 번역한지 십 년도 넘은 뒤의 일이어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 P195

"혹시 역자 후기를 읽으세요?"라고. 그랬더니 번역해주는사람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고 했다. 식사시간에 우리의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날 나의 콘셉트는 과묵한 여자였다(……… 라고 하기에는 한국말이 통하는 주위 사람들과는 수다를많이 떨었구나). - P205

그런데 간절히 원했던 그 판권은 메일을 보내기 전에 이미 결론이 났었는지, 머잖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다행히(?) 잘나가지 않았다(이거 무슨 놀부 마누라 심보람).
한국어만큼 자유롭게 일본어를 구사한다면 꼭 메일을쓰고 싶은 작가가 있긴 하다. 바로 『애도하는 사람』의 작가인 덴도 아라타 씨다. 이유는 잘생겼기 때문에(푸하하).
『애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나의 심금을 울렸는지 얘기하고 싶고, 인터뷰에서 보니 그 책의 한국 독자들 서평을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싶다고 하던데 그 서평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일본어를 한국어처럼 능숙하게 구사할 날이과연 오려나. - P216

"몇만원 되지도 않는 걸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몇 장안되지만 그거 쓰느라 며칠을 보낸 걸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아깝고 말이지." - P219

아사다 지로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살아볼 만한 세상이구나, 하는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교정지를 받아들고 "정하야, 연필 한자루 갖다줄래?" 했더니, 딸은 굴러다니는 연필들도 많은데, 굳이 자기가 아끼는 새 연필을 깎아주었습니다. 무언으로 엄마에게 보내는응원이었는지, 번역이란 작업에 대해 나름대로 갖는 경건함인지 알 수 없지만, 아사다 지로를 처음 읽던 날, 제 손바닥만큼 휴지를 뜯어서 눈물을 닦아주던 꼬맹이가 벌써 이렇게컸구나 하는 생각에 뜬금없이 아사다 지로 표의 감동이 솟구쳐올랐습니다.
-아사다 지로, 산다화』(문학동네, 2005) - P224

다른 번역가 선생님들의 고차원적인 후기를 볼 때면 ‘나 번역가 맞나?‘ 싶긴 하지만, 쉬운 내 후기를 좋아해주는 독자들도 많아서 앞으로도 꾸준히 내 스타일대로 쓰려고 한다. 쓰는 사람이 편한 글을 써야 읽는 사람도 편할 테니까. - P230

나는 가나다라만 알면 누구든 읽을 수 있는 쉬운책을 쓰고 싶다. 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읽히는 책, 책을싫어하는 사람도 읽고 싶어하는 책. 이를테면 태교를 위해책은 읽어야겠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책하고는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든가,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싫어하는 젊은 층을 위한 교양 책이라든가. 세상에는 나처럼 딱딱하고 어려운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을터, 그들에게 맞는 쉬운 책을 기획해보고 싶다. - P233

솔직히 스크루지 영감보다 더한 구두쇠에다 욕심 많고이기적인 노인네여서 좋은 아버지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지만, 그 성실함만은 정말 금메달감이다. - P240

부모님은 무학이니 글을 쓸 리가 없고 형제들 중에도 글을 그리 잘 쓰는 사람이 없는데, 나만 유난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막내여서 아버지의 얘기를 제일 오래,
제일 많이 듣고 자란 덕분이 아닌가 싶다. - P241

늘 작가에 가려진 역자의 자리 같지만, 작가의 생각과작가가 선택한 단어와 작가의 메시지를 얼마나 독자에게잘 전달하는가 하는 것은 역시 역자의 재주다. 소설가가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는 산모라면, 번역가는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는 산모라 생각한다. 아픔의 차이는 크겠지만, 아프지 않고 태어나는 아기는 없으리라. - P243

"이 책 꼭 하세요. 정말 괜찮은 책이에요!"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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