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 P113

지금도 아침 일찍 진구가이엔이나 아카사카고쇼 주변 코스를달리고 있으면, 그들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코너를 돌면 그들이 맞은편에서 하얀 숨을 내뿜으면서 묵묵히 달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혹독한 연습을 견뎌온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품고 있던 희망과 꿈과 계획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하고.
사람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다지도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하고. - P119

그러나 재능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자가 잘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양이 부족하니까 약간양을 늘려보고 싶다고 생각해도, 절약해서 조금씩 꺼내 가능한한 오래 쓰려고 해도 그렇게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다. - P120

훨씬 많은 에너지를 장기간 동안 필요로 한다.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뼈를 깎는 듯한 노동이 몸 안에서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물을 생각하는 것은머리(마인드)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이야기‘ 라고 하는 의상을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해서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ㅡ대부분의 경우 혹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P124

삽을 써서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발밑의 구멍을파 나가다가 아주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비밀의 수맥과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경우다. 이런 경우 정말 ‘행운‘ 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그 같은 ‘행운‘ 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지면 깊은 구멍을 파 나갈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근력을 훈련에의해서 몸에 익혀왔기 때문인 것이다. 만년에 재능을 꽃피운 작가들은 많든 적든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것이 아닐까. - P125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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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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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스물셋, 이모가 마흔다섯이 되던 해에 태어났다.
나이 차이 때문에 우리 셋이 함께 다니면 사람들은 이모를 나의할머니로 여겼다. 그때는 그 나이에 할머니가 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이모는 자기 또래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편이었다. - P215

나는 이모가 싫어했던 것들을 종이 한 장에 빽빽하게 쓸 수 있다. 춤추는 사람,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 짧은 치마 길에서 노래 부르기, 껌으로 풍선 불기, 강아지를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 헤픈 웃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태도, 술에 취한 사람, 경박한 사람…..…… - P217

이모의 그런 양육태도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안다. 이모의 태도가 감정적 방임에 가까웠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이모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런 판단은 너무 쉬우니까. 나는 그런 쉬운 방식으로 이모에 대해 말하고싶지 않다. - P217

그가 돌아가자 이모는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지친 표정의 엄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개가 짖었다고 생각해.‘ - P223

이모가 현관문을 열어주자마자 나는 이모의 품에 덥석 안겼다.
이모는 차마 나를 안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마치 작은 북을 울리듯 두 손으로 내 등을 조금씩 두드렸다. 나는 이모를 더 꽉안았다. 그제야 이모도 내 등에 팔을 둘렀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로. 그러자 내 체온으로 데워진 뜨거운 물이 한쪽 귀에서 흘러나왔다. - P231

"오늘은 왜 들어갔어?"
"널 자랑하고 싶었나보지."
이모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날 뭘 자랑해." - P238

나는 그렇게 답하고자리를 떴다. 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멋대로 나를 판단했다고 분노하면서도 나는 그애의 말에 마음을 다쳤다. 그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 P247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너 어릴 땐 네 마음 여린 게 그렇게 불안해서 고치려고 했어."
"그럼 성공했네. 나, 마음이돌이 됐거든."
예보에 없던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나는 와이퍼를 켜고 속도를줄였다. - P254

이모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이처럼 웃다가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면서 노여워했다. - P258

그러자 이모는 천천히 내 곁으로 와서 손바닥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세상에 단 한 명, 약한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언제나 이모였으니까. 그건 내 자존심이자 이모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는 고르게 숨을 내쉬면서 잠이 들었다. - P261

옛날 사람들은 하늘 위에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고 하늘에 구멍을 뚫어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는저 너머 누군가의 눈빛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들에게 별빛은 신의눈빛이거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시선이었다. - P265

내가 아는 하늘은 그런 것이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의 믿음을 떠올린다.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만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이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 P265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남은 한참을 서 있었다. 인천에서 부친 두 개의 캐리어 중 하나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나자 수화물 벨트는 텅 비었고, 기남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온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떴다. 기남은 안절부절못하고 그곳에 서있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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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을 열면 빵의 중심은 백에 가깝다.
일상을 가르고 활짝 열린 꽃과 시처럼, - P194

그렇게 빵과 시는 활기차게 열린 자유다.
눈이 오면 신나게 달리는 강아지처럼. - P194

한 방송에서 라면의 달인은 면발을 집게로 들어내면서 공기와자주 접촉하게 해줘야 면이 살아난다고 했다. 따라 해보니 실제로 면이 쫄깃해졌다.한 식품영양학과의 분석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냥 라면이 충분히 익지 않아서라고 한다. - P196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빵을 구우러 간다. 가장 아름답게 밀가루를 과장하는 것.
나는 시로, 너는 밀로, 엄마는 존재로 ‘아름다운 과장‘이 우리의 직업이라고.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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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층별로 용도가 달랐는데, 1층은 냉장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냉동 창고, 꼭대기 층은 식당이다. 이 건물이 바로 내가 일하게 될 곳이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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