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보통 때라면 결코읽지 않았을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 P104

책은 침대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 P107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의 시선이 글에서 벗어난다.
시선은 공중에 머물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원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공간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 P106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 어느여름, 비가 오지 않던 해에 일어났다. 온 땅의 풀이말라붙자, 풀의 귀신들은 고향을 버리고 각자 마음대로 서로 다른 장소에 정착하려 했다. 그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초록색 우유를 마셨고, 공통된 성격을 보였다. 감정들은 처음에 강한 알칼리성을 띠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른바 질투심이나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초록은 초록 속에서 얽히기 시작했고,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물론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117

이 인터뷰를 읽고 나자 사진 책의 마지막 사진을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신발 가게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배우는 막 가죽신을 신어보는 참이었다. 뒤편으로 스무 켤레의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거의 독자적인 자기 삶을 가진 듯 보였고 그래서 위협적으로 보였다. - P147

지금은 나의 성스러운 그 사진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 책은 나의 눈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자마자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사진들은 이제 얇은 막이 되어내 망막의 한 층을 만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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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승희가 아는 한 돌아오지않은 사람은 없었다. - P9

마스크를 놓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날들에 사람들 모두 익숙해지고 있던 차였다. 물론코로나 이후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할 거라는 예상은 있었다. - P10

라마단 기간이라 아침과 점심은 먹지 못합니다.
개수가 맞아야 하는데요. - P12

복도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사를 꼭 챙겨 드세요. - P15

여자도 환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혼자가 익숙한 사람들을 일주일간의 합숙을 통해 사회화시키는 게 목적인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승희는 얼른 수화기를들었다. - P19

그 말을 들은 뒤로 승희는 되도록이면 욕실로 들어가 통화했다. 반면 유정은 통화할 때도 승희를 신경쓰지 않았다. - P23

승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활치료센터. 전부터 참 이상한말이라고 생각했다. 생활을 일상을 치료한다는 뜻일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돌아간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걸까. 승희는 확진 문자를 받기 직전의 생활을 떠올려봤다. - P31

우리 이런 질문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계속해야죠. 의문을 가진 채 앞을 향해 나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 P35

저는 매일 영상을 찍어요.
승희도 망설이다 고백하듯 말했다.
저는 매일 블로그를 해요.
하산은 수줍게 말했다.
저는 매일 시를 써요. - P40

어느덧 승희가 퇴소한 날짜에 이르렀다. 창가에 놓여 있는의자 하나, 승희가 누웠던 침대, 그리고 긴 울음을 터뜨렸던욕실 문 앞을 카메라는 오래오래 응시했다. 승화는 영상 안에서 유정이 그 방에서 그랬듯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침묵으로 - P45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모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오늘밤이 바로 그 밤이길바라며 승희는 어딘가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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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서서 커피 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뜨거운 물이 커피 알갱이를 통과해 드리퍼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P31

남자가 내게 책을 건네며 웃었다. 모든 관계는 오해로 시작된다.
다 읽으시면 글방 오시는 길에 돌려주세요.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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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들고 잠든 사람들은 글자에서 올라오는 책 냄새를 들이마시려는 것처럼 보인다. - P103

책을 들고 있는 손가락들은 독서를 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형태를 갖게 된다. 손가락들은 책의 내용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자아 이미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정말로 다양한 표정을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손가락들은 서로 아무도 못 알아듣는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제스처 언어는 전철의 밀어가 된다. - P103

책 읽는 사람 옆에서 잠이 드는 사람은 꿈속에서책의 주인공을 만난다. 잠을 잔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그책을 읽으면 그는 책의 주인공이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느껴져 놀란다. - P105

전철에서 읽는 책은 기댈 곳이 없다. 책들은 책상위가 아니라 공중에 떠 있다. 때로 책들은 적당한 고도를 찾지 못해서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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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인형들을 거리낌 없이 빤히 쳐다볼 수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만약 그 인형들이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면, 나는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일이 무례하다고느꼈을 것이다. - P75

좁은 골목길에서 나는 나를 몰래 지켜보는 여러개의 눈을 느꼈다. 작은 쇼윈도에 나란히 앉아 있는 테디베어 다섯 마리였다. 일본의 테디 베어들과는 달리 이테디 베어들은 호기심, 배고픔, 악의를 망설임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 P77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내 감정과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 P83

내 일본 안경은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이아니다. 기분에 따라 썼다 벗었다 할 수도 없다. 이 안경은눈의 통증에서 생겨나, 내 살이 안경 속으로 자라 들어간것처럼 안경도 살 속으로 자라 들어갔다. - P93

길다의 문에서는 스티커가 매끈거리는 금속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어하며 펄럭거렸다. - P101

도쿄 사람들은 집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언제나 전철에서책을 읽는다. 전철에서는 익명성이 주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 P103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습관이있다. 그들은 책을 얼굴에 바싹 대고 읽는다. 그래서 책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쉽게든다. 책은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 두 번째 이름과 호칭을주는 마스크라 할 수 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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