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번역가의 일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뭐랄까, 보통은 이런 청탁에서 내가 제공할 수 없는 유의 상당히 우아한 글을기대한다는 인상을 받는다(이 책은 내가 얼마나 우아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증명할 것이다).
때론 어이없는 청탁을 받기도 한다. 어느 잡지에서는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했는데, 그 의도가 무엇이든 나로선 상당히 불쾌했다. 전문 산악인에게 ‘오를 수 없는 산‘, 오페라 가수에게 ‘부를 수 없는 가곡‘ 따위를 글로 써달라고 할까? 번역을 단순히 단어를 번역하는 일 정도로 보는 무지함(야만성이라고 썼다 지웠다)은 말할 것도 없고. "네가 못하는 걸 털어놓지 그래" 하는 저의가 느껴지는 요청이다. 대한민국 번역 평론 담론의 수준이 지옥까지 떨어졌을지라도 번역가에게 대놓고 이런 글을 부탁하다니 번역가에 대한인식이 얼마나 밑바닥에 있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수많은 번역가 지망생들을 봐왔고, 앞서 언급한 문제점을 가진 해외파 학생들도 꽤 자주 접했다. 그들에게 당부한다. "출중한 영어실력은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목발로 걷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걷는 방법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고. 결국 훌륭한 번역가란 명문 대학을 졸업한 번역가나 ‘원어민‘ 번역가가 아니라 번역과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번역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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