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는 더 이상 높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 뒤에야 느리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네로부터 내려와 지상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어느새 한 시절이 떠나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P161

니까 어떤 휴지기와 휴지기 사이에서 솟아나는 잔상들,
잔음들, 물결들, 걸음들. 멀리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종이 위에 적힌 문장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읽는법을 잊은 사람처럼 읽었다. 읽는 동시에 잊어버리는사람처럼 읽었다. - P163

시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가닿을 고유한 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편의 시는 모두에게보편적으로 다가가는 것일 수 없는, 개별적인 사건 그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어떤 시를 발견하게된다면, 혹은 어떤 이가 어떤 시를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의 너와 나를 마음 깊이 돌보고 돌아보는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시는 언제나 바로 곁에 있었지만 결정적인 상황을 겪은 뒤에야 혹은 우연을가장한 필연적 사건을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불현듯뒤늦게 찾아드는 무엇이라 여겨집니다. - P167

몸과 마음을 허물어지게 했던 어떤 고통의 기록을읽습니다. 때때로 어떤 몸의 고통은, 그로부터 오는 영혼의 아픔은, 생동하는 한 생명을 보잘것없는 사물의자리로 끌어내립니다. 사람이었던 자리에서 사람 아닌자리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어떤눈과 어떤 목소리를 덧입게 되는 것일까요. - P170

그때. 언어가 몸을 얻을 때. 언어가 혼을 얻을 때. 그때.
언어는 무엇인가. 언어는 무엇이라 불리는가. 그때. 세계는 어떻게 무엇으로 물결치는가. 너와 나는 어떤 울음으로 일렁이는가. - P190

시의 자리로 옮겨온 언어는 이미 문맥 속에서 이전의 소리와 의미와는 다른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 P193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말 건네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세계의 끝잔디 위를 한나절 정도 산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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