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더 많이 했으리라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한편, 그는
‘인간으로서의 죄‘를 두고 내내 괴로워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이 그것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싸움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통해 그 무거움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했어요. 간신히 편해졌지요? 많이 애썼어요.
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P9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을까, 얼마나 불운했을까. 심약한 나는바로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미국 한구석에서 만난 이 불운한 여성,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같은 인간에게도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 P39

박정희 시대의 한국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2005년에 한국 국가정보원은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2007년 사법부(서울중앙지법)는사형이 이미 집행된 8명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 P55

. ‘안전보장법‘이라든지, ‘기본적 인권‘이라든지, ‘천장에 매달려 매질을 당하는 고문‘과 같은 말은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가능했다. 찾아갔던 곳곳에서 그런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렵다.‘라는 간단한 말조차 할수 없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어 이외에는 일상생활을 위한 어휘를 알지 못했던탓이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신경과민상태였다. 호들갑스러운 말이겠지만 그때 차안에서 "몸이 가려워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만으로도 망명자라도 된듯 마음속저 밑바닥에서 고독감과 비애가 솟아올랐다. - P63

벨로스는 이른바 ‘애시캔파Ashcan School‘ 화가에 속하며,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에드워드 호퍼도 그중 하나이다. 이들은 20세기 초반 뉴욕의 변두리와 노동자 계급 사람들의 생활을사실적으로 그렸다. 드디어 미국을 그린 미국인 화가와 만났다는생각이 들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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