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낭독 - 내 마음에 들려주는 목소리
서혜정.송정희 지음 / 페이퍼타이거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담한 판형, 책 읽는 여자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인 책이다. <나에게, 낭독> 저자는 두 명의 성우다.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나를 위한 낭독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내용이다. 낭독이 생소하게 느껴지든, 원래 낭독에 관심이 있었든, 누구라도 이 책으로 낭독하는 일상을 시작할 수 있다. 한때 낭독이 습관화됐던 시절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녹음 자원봉사에 참여한 일도 있다. 물론 그전에 관련 교육을 받은 이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딱 멈추고 말았다. 낭독이 내 삶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된 계기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부터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들려주는 낭독'에 대한 궁금증으로 펼쳐보게 됐다.


이 책의 구성은 깔끔하다. 성우 두 명이 각각 1장, 2장에서 낭독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담과 일상을 담았다. 또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낭독하면 좋을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3장에서는 낭독하기 좋은 글들이 실려 있다. 시, 소설, 동화, 판소리 등 글의 종류도 다양하다. 몇 줄만 인용된 정도가 아니라 한 페이지 이상씩 긴 호흡의 글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4장은 저자들이 낭독 강의를 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5장은 30일간의 낭독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1일차부터 30일차까지 매일 짧은 질문 혹은 제안이 나와 있다. 가령 "오늘의 날씨를 나의 목소리에 담아 표현해볼까요?", "10년 전의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짧게 편지를 쓰고, 목소리로 전해주세요."와 같은 내용이다. 참신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낭독을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에 소리가 스며든다."(29쪽)


서혜정 성우는 낭독이 주는 위로를 말하고, 낭독을 '자신과 만나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거칠고 메말랐던 마음밭이 물기를 머금는다는 표현이 좋다. 낭독을 자주 했던 시절에도, 내 삶이 곤고할 때 낭독으로 피난처 삼지는 못했던 듯하다. 돌아보니 즐겁고 기분 좋을 때 읽었고, 의무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정작 힘든 내 마음을 다독이려고 소리 내어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낭독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는데, 왜 잊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 책에 따르면, 낭독을 하면서 더욱 경청하게 되고 발음도 좋아지고 목소리에 힘도 생기며 소리에 감정과 정서를 싣는 법도 배우고 평상시 바른 언어 습관을 가지게 된다.


"목소리 자체에 집중하기보단 자기가 가진 감성을 소리에 실으면 된다."(63쪽)


송정희 성우는 삶이 묻어나는 소리가 최고라고 하면서, 낭독이란 '내면의 아름다움을 소리로써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정서와 감정을 담은 목소리를 강조한다.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말이 와닿았다. 이 책에서 나를 위한 낭독이란,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해서 텍스트를 들려주고, 자기 마음의 변화를 느끼면 된다. 밤 늦게 혹은 이른 새벽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따로 내어 해보고 싶어진다. 그날 하루의 기분 그대로 책을 읽어보자. 그런데 어떤 텍스트로 할까.


오늘은 이 책의 3장에 수록된 글 가운데 박완서 작가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어봤다.


이 책은 성우 되는 법처럼 어떤 테크닉 위주의 내용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시간, 낭독을 해보면 좋다고 넌지시 낭독의 일상을 권한다. 자기 목소리를 들어보고 녹음해보면서 반복해서 연습해보기. 이런 기본 방법부터 힘 있는 목소리, 자기만의 소리 찾기, 호흡을 조절하고 집중하는 법, 오독을 피하는 법 등 구체적인 내용도 소개해준다. 어찌 보면 목소리에 윤기를 더하는 일이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 책의 제안대로, 30일 동안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낭독을 해보기로 한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와 함께 다시 읽고 싶은 추리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오래전에 단편적으로 읽은 기억 탓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작가만큼 안개 속에 가리워진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반가웠다. 저자는 국내 사학과 교수로 영국 역사를 전공했고, 이 책에서 작가의 전집과 자서전을 읽고 나서 16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소환함으로써 추억을 떠올리거나 새롭게 읽기를 권유하는 듯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문학가의 시선이 아닌 역사가의 작품 탐색이라는 특별한 관점을 발견하고, 20세기 영국의 역사, 특정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볼 수 있다.


먼저 주제어 '탐정'을 살펴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벨기에인 푸아로, '노처녀' 마플이라는 탐정 캐릭터를 만든다. 작가는 영국의 사법체계를 옹호했고, 두 탐정 모두 마지막에 범인을 경찰 손에 넘겨준다. 대놓고 경찰을 무시, 조롱한 셜록 홈스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집'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작가는 집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집을 많이 사고팔았다고 한다. 이는 인형의 집을 좋아하던 어릴 때 취향의 연장선 개념이고, 영국인들 특유의 집에 대한 광적 집착의 반영이다. 저자는 집과 관련된 작가의 개인사와 작품을 아울러 서술한다.


'독약'이라는 주제어도 있다. 작가는 간호사와 약제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조제실에서 일할 때, 주변에 독약이 널려 있으니 독살 이야기를 써볼까 싶어 나온 소설이 데뷔작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다. 작가의 장편 66권 중 41권에 독약이 등장하고 약물 범위와 약학 지식도 상당하다.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 작가는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묻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독약을 주었나요?"


주제어 '영국성'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작품들에 인종, 민족, 젠더적인 차별과 편견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속에는 비유럽 지역뿐 아니라 유럽 내 다른 나라들에 대한 편견이 나오는데, 영국에 대해서는 어떨까. 우월성과 배타성을 비꼬는 '섬나라 근성'과 다름을 강조하는 자기 정체성을 의미하는 '영국인 근성' 곧 '영국성'도 혼용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국성의 특성을 몇 가지로 추가, 서술한다.


작품에 미국인 상속녀가 다수 등장하는 배경과 관련해 주제어 '돈'을 풀어가고, '계급' 편에서는 작품 속 계급적 표지를 들여다본다. 영국은 지금도 쓰는 용어에 따라 상류층과 비상류층을 구별한다는데, 제시된 예들이 흥미롭다. 특히 반려견에게도 계급적 판가름을 할 정도라니!


주제어 '미신'도 이채롭다. 작품 속 미신은 마녀, 관상, 심령술로 분류되는데, 저자는 역사 속에서 세 가지가 어떤 변모를 해왔고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도 간략하게 기술한다. 코넌 도일이 심령술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일화도 나온다.


주제어 '미시사'는 뜻풀이부터 필요하다. 1970년대 '거시사'에 대항해 나온 연구방법론으로,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행위, 동기, 전략 등에 주목한다. 작가의 추리소설에는 이런 미시사의 단초들이 많다. 구체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망, 역사소설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 집단 경험보다 개인의 삶, 한 사람 안의 여러 정체성,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다성성 등이 작품에 어떻게 구현됐는지 제시한다.


그 외에 병역면제, 섹슈얼리티, 호텔, 교육, 신분 도용, 배급제, 탈것, 제국 등의 주제어를 만날 수 있다. 모든 주제어가 단순히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분석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장치, 나아가 오늘날 비판적 안목이 필요한 지점까지 일깨우는 거울로 작동되는 느낌이다.


이 책 덕분에,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다시 찾아 읽고 싶은 기대감이 커졌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망가자 Run with me 노래를 그리다 1
선우정아 노래, 곽수진 그림 / 언제나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노래 <도망가자>, 그 가사에 그림을 입힌 책이 나왔다. 지난해 루시드폴 님의 노래 가사와 이수지 님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선우정아 님의 노래 가사와 곽수진 님의 그림이 함께한 그림책 <도망가자>는, 책 자체가 나에게 건네주는 선물 같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직접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며 그림을 한 장씩 넘겨보면 된다고. 삶의 위안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그저 이 책을 안겨주면 그만일 것이다.


도망간다는 것. 세상은 그것을 비겁하다고, 나약하다고 말한다. 어떤 책임, 역할의 무게가 버거워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자주 그랬고 지금도 종종 그렇다. 그때마다 내가 들은 말이 "도망쳐도 돼."였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나에게 '도망'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의미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하고 있는데, 왜 나만 힘들어할까. 역시 내가 여러모로 부족한 탓이겠지. 이런 생각으로 괴롭기도 했다. 왜 그토록 나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도망가자>의 가사는 도망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진짜 도망, 잔뜩 긴장한 나를 회복시키는 쉼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이 그림책에서, 도망이란 걱정을 내려놓고 실컷 웃고 마음 편할 수 있는 곳 어디든 다녀오는 것이다. 그다음에 씩씩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영영 도피하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도망인 셈이다. 가사 속에는 사랑하는 이가 동행한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나에게 도망을 권유하고, 손 내밀면 잡겠다고 말한다. "너라서 나는 충분해.", "너와 함께하면 난 다 좋아.", "사랑해. 눈 맞춰줄래." 하는 감미로운 속삭임도 있다. 아, 정말 삶이 버거운 순간마다 이렇게 지친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가족이라도, 부부나 연인이라도 각자 삶의 무게로 허덕일 때가 많으니... 그런데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나. 그전에 내가 나 자신에게 도망을 권유하고 나를 토닥여주면 되지 않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이 표현이 너무 좋다. 다시 빛나기 위해, 나답기 위해 도망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듯해서. 글 없는 그림책 <별 만드는 사람들>로 만났던 곽수진 님의 그림체를 이 책에서 다시 마주하니 반가웠다. 그림이 더해져 가사의 의미가 더 폭넓어진 느낌이다. 한 사람과 하얀 강아지의 평화로운 동행길. 물속에서 서로 눈맞추는 장면은 예쁘고 사랑스럽다.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리며 그들의 얼굴이 항상 빛나도록, 나도 그들에게 도망을 권유해보면 좋겠다. 언제나 당신 옆에는 내가 있다고,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듯이.


그림책 말미에 전체 가사가 나와 있고, 가사에 얽힌 글작가와 그림작가 각자의 사연도 담겨 있다. 이 그림책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떠올리며 메마른 감성을 적시고 빡빡한 일상에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깊은 우물 속의 나를 위로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더 알뜰히 사랑하게 만든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하얀 강아지가 그저 좋았나 보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책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을 수프 - 가을 아이세움 그림책
문채빈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부터 귀엽고 깜찍한 느낌을 풍기는 그림책이네요. 얄라차 생쥐 형제 시리즈인데요, 앞선 <구름 주스>(봄), <고래 빙수>(여름)에 이은 가을 이야기입니다. 이번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가 싶었는데, 이미 올해 초에 <낭만 찐빵>(겨울)이 나왔군요. <노을 수프>(가을) 출간은 입추와 말복을 지난 지금, 성큼 가을이 오는구나 실감 나게 만듭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벌써 가을이라니요. 이 그림책으로 미리 가을 기분을 내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새 단어도 알게 됐어요. '얄라차'라는 말로, 어떤 것을 신기하게 여길 때 내는 순우리말 표현이라네요.


먼저 일곱 생쥐 형제의 이름부터 소개해봅니다. 대장 도롱, 독서왕 레레, 먹보 미미, 예술가 파랑, 잠꾸러기 솔솔, 개구쟁이 라라, 겁쟁이 시롱이랍니다. 안경이나 모자, 표정 등으로 각 캐릭터가 구분이 되니까, 그림책을 넘겨보면서 아이와 함께 "미미 찾아볼까?", "파랑이는 뭐해?", "저 아이는 솔솔인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어요.


마을의 '낭만' 가을 운동회 날, 일곱 생쥐 형제를 비롯해 여러 동물들이 운동장에 모였어요. 몸을 풀어주고 준비 운동을 하고요, 징 소리와 함께 신나는 운동회가 시작됐어요. 줄다리기부터 둘씩 짝지어 달리기, 뜀틀 넘고 깡충 뛰어 과자 먹기, 긴 줄넘기, 박 터뜨리기가 이어지는데요, 동물들의 동작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요. 아, 그런데 알밤을 던져 박을 터뜨릴 때, 튕겨나온 알밤 하나가 미미의 머리에 퉁 떨어지네요. 과자 먹기를 할 때도 다치더니, 즐겁게 웃는 아이들 사이로 아파하는 미미가 눈에 띄었어요. 놀이도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동물들의 운동회 장면만으로 아기자기한 그림책이, 다음 장면부터 더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마지막 경기인 큰 공 굴리기가 참신하게 다가와요. 커다란 공을 굴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시원한 그림이 펼쳐집니다. 라라가 큰 소리로 "얄라차!" 하고 외칠 만하지요. 그리고 반전은 큰 공이 커다란 호박으로 바뀐다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림책으로 확인해볼 수 있어요. 호박 위에서 이번에는 도롱이가 "얄라차!" 하고 외칩니다. 이후 모두 함께 '노을 수프'를 만들고 나누어 먹지요. 정말 낭만 마을에 가서 맛보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즐거운 운동회, 시원하면서 아슬아슬한 공 굴리기, 그리고 맛있는 노을 수프까지, 재미있는 이야기와 앙증맞은 그림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 사계절로 얄라차 생쥐 시리즈는 완결된 것일까요. 다른 이야기와 그림으로, 일곱 생쥐 형제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올해 가을은 이 그림책처럼 운동회까지는 아니어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시끌벅적 웃으며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주보기 - 에리히 캐스트너 시집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감정이 죽어 버린 정원을 거닐며/ 유머의 나무를 심는다."(150쪽)

에리히 캐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전체 시에서 흐르는 정서는 담담함과 쓸쓸함에 가까워서 '유머'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의외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의미가 단순한 익살이 아니라 삶의 희망적 태도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 있다. '헛된 웃음소리'에서 참된 웃음소리를 갈망하거나 '비관주의자란, 딱 잘라 말하면'에서 비관주의자를 "모든 게 엉망이라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212쪽)이라 칭하는 맥락과 같지 않을까.

시인은 읊조린다. 이 시대는 죽어 가고 있고 대포가 꽃피는 나라에는 자유가 자라지 않는다고. 이 시집의 출간 시기는 1936년. 히틀러 정권 하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시인의 독일 내 출판 활동 금지로, 이 시집은 스위스에서 출간된다. 시인은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후 심장병을 얻어 평생 고생하는데, 이 시집에서 심장 관련 시 여러 편도 감상할 수 있다.

'옮긴이의 글'을 참고로 시인의 삶과 작품 경향을 대략적으로 살필 수 있다.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이 시집을 필사하며 읽고 위로받았다는 일화, 발터 벤야민이 시인의 한 시집에 대해 "좌파 멜랑콜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비평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다.

시인의 삶과 시집 출간의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 시집은 오늘날 독자에게도 시공을 초월한 의미, 일상의 위로를 안겨주는 듯하다. 현학적이거나 관념적인 단어가 많이 쓰이지 않았고 비교적 쉽게 읽히는 시라서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시집이 '가정상비약'처럼 필요한 순간에 읽히기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집의 원제는 <에리히 캐스트너 박사가 시로 쓴 가정상비약>이다.)

이 책의 '차례' 다음에 제시된 '사용 지침서'를 보면서, 36가지 사례에 따른 적절한 시들을 복용할 수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이 겹친 요즘, "삶에 지칠 때"를 찾아보기로 한다. 여섯 편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먼저 '슬퍼할 용기' 전문이다.

슬플 땐 슬퍼하라.

자꾸만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 말라!

슬픔은

당신의 소중한 생명을 갉아먹지 않는다.

(20쪽)

이후 시들은 묘지에 앉아 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 자살할 생각 말고 살아남으라는 훈계,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는 법이고 그런 날도 지나간다는 것, 자동차에 치는 상상을 펼쳐 보인 내용, 자살자가 과꽃 다발을 들고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하는 상념 등을 담고 있다. 분명히 "삶에 지칠 때" 복용할 시들이 맞나 다시 확인해본다. 얼핏 이질감이 들었던 이유는, 그저 기분을 좋게 해주는 덕담, 그런 표현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슬퍼할 용기'의 내용을 곱씹어본다. 슬픔을 애써 억누르고 가벼운 웃음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된 위안이 아닐 수 있겠구나 싶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두워지려고 할 때, 그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삶이 지치고 괴로운 순간, 시인은 그런 삶의 끝, 삶이 주는 고통이 사라지는 종말을 연관시킨다. 묘지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듯하다.

삶의 여정을 기차 여행에 비유한 시(기차 여행, 기차 타기), 자신의 얼굴 대신 남의 얼굴로 바꾸는 꿈을 소개한 시(얼굴 바꾸는 꿈), 계획이 불어날수록 행동이 더욱 꼬이니 계획을 버리라는 시(제야의 격언), 부유함이 오히려 가족의 웃음을 앗아갔다는 시(현대적인 동화), 환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살면 안 된다는 지혜를 상기시키는 시(조부모의 방문) 등도 의미 있게 감상했다.

이 시집의 제목 <마주보기>는, 결국 자기 내면과의 마주함을 전제하는 게 아닐까. 버거움, 두려움, 불안, 근심, 상처 등 자기 마음이 고통을 호소할 때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이 시집으로 처방하고 각 시를 복용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살면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도록, 그리고 유머를 잃지 않도록!

[출판시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