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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Run with me ㅣ 노래를 그리다 1
선우정아 노래, 곽수진 그림 / 언제나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노래 <도망가자>, 그 가사에 그림을 입힌 책이 나왔다. 지난해 루시드폴 님의 노래 가사와 이수지 님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물이 되는 꿈>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선우정아 님의 노래 가사와 곽수진 님의 그림이 함께한 그림책 <도망가자>는, 책 자체가 나에게 건네주는 선물 같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직접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음미하며 그림을 한 장씩 넘겨보면 된다고. 삶의 위안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그저 이 책을 안겨주면 그만일 것이다.
도망간다는 것. 세상은 그것을 비겁하다고, 나약하다고 말한다. 어떤 책임, 역할의 무게가 버거워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자주 그랬고 지금도 종종 그렇다. 그때마다 내가 들은 말이 "도망쳐도 돼."였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나에게 '도망'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의미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하고 있는데, 왜 나만 힘들어할까. 역시 내가 여러모로 부족한 탓이겠지. 이런 생각으로 괴롭기도 했다. 왜 그토록 나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도망가자>의 가사는 도망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진짜 도망, 잔뜩 긴장한 나를 회복시키는 쉼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이 그림책에서, 도망이란 걱정을 내려놓고 실컷 웃고 마음 편할 수 있는 곳 어디든 다녀오는 것이다. 그다음에 씩씩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영영 도피하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도망인 셈이다. 가사 속에는 사랑하는 이가 동행한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나에게 도망을 권유하고, 손 내밀면 잡겠다고 말한다. "너라서 나는 충분해.", "너와 함께하면 난 다 좋아.", "사랑해. 눈 맞춰줄래." 하는 감미로운 속삭임도 있다. 아, 정말 삶이 버거운 순간마다 이렇게 지친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가족이라도, 부부나 연인이라도 각자 삶의 무게로 허덕일 때가 많으니... 그런데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나. 그전에 내가 나 자신에게 도망을 권유하고 나를 토닥여주면 되지 않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이 표현이 너무 좋다. 다시 빛나기 위해, 나답기 위해 도망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듯해서. 글 없는 그림책 <별 만드는 사람들>로 만났던 곽수진 님의 그림체를 이 책에서 다시 마주하니 반가웠다. 그림이 더해져 가사의 의미가 더 폭넓어진 느낌이다. 한 사람과 하얀 강아지의 평화로운 동행길. 물속에서 서로 눈맞추는 장면은 예쁘고 사랑스럽다.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리며 그들의 얼굴이 항상 빛나도록, 나도 그들에게 도망을 권유해보면 좋겠다. 언제나 당신 옆에는 내가 있다고,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듯이.
그림책 말미에 전체 가사가 나와 있고, 가사에 얽힌 글작가와 그림작가 각자의 사연도 담겨 있다. 이 그림책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떠올리며 메마른 감성을 적시고 빡빡한 일상에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깊은 우물 속의 나를 위로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더 알뜰히 사랑하게 만든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하얀 강아지가 그저 좋았나 보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책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