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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사회 -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거의 2년 전에 있었던 '조국 사태'는 당사자와 가족의 법적 다툼이 남아 있는 것과 별개로,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과 의미의 파장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공정'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에게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정한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일까. 덧붙여, 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한 조각도 남았다. 우리 사회를 철학적 사유로 들여다보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읽고 싶었다. <불공정사회>라는 책 제목과 지난 30년간 정치철학을 가르쳐온 저자 이진우. 어쩌면 이 책에서 앞선 의문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정치철학의 본질적 질문에서 시작하면서, '왜 우리 사회는 이래야만 하는가?',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의는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실제 수업한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공정을 간절히 외치는 사회는 불공정사회이고, 공정은 언제나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소를 전제하기에 허구다. 이것이 저자가 논의를 펼치기 전에 명시한 내용이다. 공정은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통로지만 불공정이 만연하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정치적 허구일 뿐이다. (그런데 '허구' 대신 '구호'로 대체해도 말이 되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아홉 가지 질문이 나온다. 그중 우리 사회 '공정'과 관련해, 현실 정치 상황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펼친 항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합법적인 것은 반드시 정당한가?"(첫 번째 질문)에서, 저자는 '추미애-윤석열 사건'을 두 프레임 '검찰 개혁'과 '법치 파괴'의 대립 양상으로 보고, 여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에 대해 '입법 독재'를 거론한다. 그런데 저자의 논의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 자체가 공정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더 섬세한 논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저자는 경찰법, 국정원법 개정안 등이 합리적 토의나 논의 없이 처리됐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는데, 여러 반대 논리를 경청하면서 가장 최선의 길을 모색해가는 과정이 순조로울 수는 없는가. 현실 정치에서 '여야 합의'란 요원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능력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가?"(두 번째 질문)에서, 저자는 '조국 사태'를, 능력주의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라 진단한다. 능력이 부와 권력과 명예의 수단이 될 때, 능력주의(엘리트 집단이 특권을 보존,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는 도덕적 자원을 잃는다. 저자는 차별을 없애는 것만이 공정이 아니라 "기회가 공정이고, 기회를 늘리는 것이 공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삶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고 전망할 기회를 늘리는 것만이 공정이다."(75쪽)라고 강조한다. 앞선 논의의 연장선으로 "뛰어난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가?"(세 번째 질문)에서, 저자는 학벌사회, 시험 인생의 문제에 대해 다룬다.
이 외에 "내 것은 정말 나의 것인가?"(네 번째 질문)에서, 저자는 부의 세습이 정당한지, '정당한 부'란 불가능한지 묻고, "부는 집중되어야 생산적인가?"(다섯 번째 질문)에서, 양극화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잉여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문제 삼는다. "경쟁은 효과적인 분배 방식인가?"(여섯 번째 질문) 항목은 시장에 의한 불평등의 심화 현상을 다룬다. "연대는 언제 연고주의로 변질되는가?"(일곱 번째 질문) 항목은 연고주의가 지배하는 한, 공정사회를 실현할 수 없다는 맥락이다. 세분화된 질문인데, 실상 부의 축적과 분배, 집단주의의 문제를 다룬 내용들이다.
"정의는 이념 갈등에 중립적인가?"(여덟 번째 질문)에서, 저자는 상호 관용이 필요한 정치를 강조하면서 '좌파 포퓰리즘'의 문제점으로 적폐 세력,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등의 새로운 적을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신뢰는 더는 사회적 덕성이 아닌가?"(아홉 번째 질문)에서, 가족주의 부활과 민주주의 쇠퇴를 언급하면서, 집단의 소속과 정체성에 많은 기반을 둘수록 불신 사회를 초래하고 집단주의를 가져온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각 질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여러 철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등을 소환한다. 법치주의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칸트와 카를 슈미트를, 능력주의와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이클 샌델, 존 롤스, 마이클 왈저를, 소유와 양극화의 주제를 다루면서 로버트 노직, 존 로크, 카를 마르크스를 언급한다. 또한 사회적 병리 징후인 자살률(뒤르켐), 경쟁의 제거가 아닌 건강한 경쟁(니체),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 국가(홉스) 등의 개념을 서술한다.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기사나 통계 등도 참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 언급된 사상가들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독자들은 불공정사회라는 인정이 전제된 상황에서, 그럼 어떻게 공정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의 질문들, 저자가 던지는 의문들 자체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이 책은 공정사회에 대한 논의가 각 분야별로 더욱 확장되고 세밀해지는 계기로 작동될 것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