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
SBS스페셜 제작팀.강범석.김설화 지음 / 그린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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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아이를 '어디서' 키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했다. 이렇게 유익하지만 놓쳤던 방송을 단행본으로 엮어주어 고마운 마음도 든다.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가 집안에서 뛰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 아파트가 아닌 다른 거주지는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이 책의 질문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문제의식을 안은 채, 어쩔 수 없다고, 뾰족한 수가 없지 않냐고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일단 딱딱해진 머릿속에 탄력이 필요할 듯하다. 문득 어릴 때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던 마음이 떠올랐다. 조만간 아이 방을 만들어줘야지 하던 차에, 여러모로 유용한 내용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쳐본다.

아파트는 아이들에게 "모험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아파트 풍경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떠난 거주지는 어떨까. 방송 제작팀은 아파트를 뒤로하고 전원주택을 선택한 가족들을 인터뷰한다. 그들의 전원주택 집 짓기는, 집을 투자 대상이나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군이 아닌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했기에, 당장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겼기에 선택한 결과물이다. 마당 있는 집, 이웃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 이 책에는 전원주택 짓기의 팁도 상세히 나와 있다.

과감하게 전원주택 생활을 결정하고 추진한 가족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럽기도 하고 언젠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아직은 요원한 상태. 그렇다면 현재의 거주지 안에서 어떤 변화를 모색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질문을 해보며 다음 내용을 이어가본다.

이 책에서는 여러 실험 결과가 나온다. 뇌파를 통해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가령, 도심 풍경보다 전원 풍경을 바라봤을 때 스트레스 지수가 현저히 낮고,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뇌파가 안정적이다. 제작팀은 심리건축 전문가, 인테리어 전문가와 함께 실제 두 가정을 방문해서 아이들의 방, 기질을 살펴보는데, 그 분석이 흥미롭다. 시각적 정보가 중요한 어린 시기의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원색도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 다양한 색감의 조명 활용도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 두 아이의 기질이 달라 각자의 공간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 가족들의 필요에 맞게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 책상이 방문을 등지는 구조일 때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아이 방을 어떻게 꾸며주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이라, 나에게 적용할 부분은 없는지 살피면서 읽게 된 대목이다. 공간의 구분과 아이의 취향 반영이라는 중요한 핵심을 상기해본다.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는 말을 비롯해, 밑줄 치고 싶은 문장도 발견했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112쪽)

이 책은 도시냐 자연이냐 혹은 아파트냐 주택이냐의 이분법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변화가 가능한 공간을 강조한다. 집 구조를 바꾼다든지, 가구 배치를 달리한다든지, 마당 대신 테라스를 활용한다든지. 또한 이 책은 건축 전문가들의 집, 공간 이야기도 담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형태에서 벗어난 미래형 공간, 획일화된 놀이터가 아닌 새로운 놀이공간 등의 모색이 이루어지는 사례도 만나볼 수 있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말 가운데, "도시 곳곳에 숨은 보물 같은 곳"을 찾으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똑같은 아파트에 산다면 차별화는 주변 동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곧장 아파트 내 작은 연못이 떠올랐다. 날이 쌀쌀해지기 전까지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물고기들과 거북이도 만났던 곳. 현재 우리 가족의 보물 같은 곳이다. 그런 곳이 또 어디 있을지, 동네 탐색이 더 필요하겠구나 싶다.

이 책을 통해, 아파트 혹은 전원주택의 선택, 아파트 내부 구조 및 가구의 변화, 아이 성장과 취향을 반영한 방 꾸미기 등 공간에 대한 여러 사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살필 수 있었다. "내 아이 어디서 키울까"에 대한 답변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고 이 책에서 언급됐듯이 정답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아부터 청소년기까지 아이에게 공간의 힘은 꽤 크다는 사실을 실감해본다. 공간의 영향력은 성인에게도 크게 좌우하는 것일 테지만.

"자라나는 아이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131쪽)

아이를 위한 공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아이의 독립 공간이 필요한 유아를 둔 부모부터 읽으면 좋을 책이다.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 답 없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킬 변화를 만들어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실행해보면 좋겠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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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좀 펴고 삽시다 통증 없는 개운한 아침을 만드는 1분 체조
구로사와 히사시 외 지음, 김은혜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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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때문에 올해 초 병원을 간 적이 있다. 마트를 여러 번 오가고 부모님 댁에 다녀오고 뭔가 유난히 분주했던 어느 주말, 집에 돌아오니 왼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한때 걸음도 빠르고 씩씩하게 걷는다고 해서 '쌩쌩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는데, '나도 늙는구나'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단지 그날 하루 무릎의 무리 때문은 아닌 듯했다. 몇 년 전, 이사와 함께 입식 식탁과 의자를 마련했는데 그전까지 좌식 생활을 해왔던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10층 이하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습관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냥 통증만 있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왼쪽 무릎이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심각하구나 싶어서 전문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기 위해 MRI까지 찍었다. 결과는 반달 연골의 손상이었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수술은 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그때와 동일한 통증과 붓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릎이 크게 놀랐던 일을 계기로 이런저런 무릎 관련 책도 찾아 읽어보았고, 무엇보다 무릎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게 되었다. 현재 심한 통증이 없다고 해도, 퇴행성 무릎 관절염은 나이가 들수록 그 확률이 높아져간다고 하니, 무릎이 더 크게 놀라기 전에 미리 무릎 건강을 챙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 건강서적으로 '아마존 건강 분야 1위'라는 이 책은, 네 명의 정형외과 의사들이 쓴 '최신간'이라 더욱 기대감을 가졌다. 이 책은 오래 걷는 무릎을 만드는 1분 체조부터 수술 없이 통증을 완화하는 법, 그리고 무릎 통증을 없애는 최신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일상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무릎 통증의 원인 가운데, 나에게 해당하는 '운동 부족'을 주의 깊게 읽었다. 무릎 관절을 지탱하는 뼈와 연골, 근육이나 인대는 매일 움직여 자극을 주지 않으면 약해지기 때문에, 근육과 인대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의 정도가 중요할 듯하다. (60대 중반인 이모님의 경우, 스스로 젊을 때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서 현재 류머티즘 관절염이 생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은 무릎 관절의 구조, 퇴행성 무릎 관절염의 진행 상태, 무릎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 등을 그림과 도표로 상세히 보여준다. 또한 수술하기 전, 무릎 통증의 보존 치료와 그 단계를 하나씩 알려준다. 궁극적으로 운동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하면서, 그에 따른 무릎 체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무릎 체조는 말 그대로 '1분' 안에 할 수 있는 동작이다. 1세트당 1분 동안 하는 것인데, 해당 동작에 따라 하루 몇 세트씩 할 수 있다. 무릎 건강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동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다고 느낀 점은, 여러 동작들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특정 동작을 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서술하는 대목과 치료 케이스가 있어서다. 가령, '다리 올리기' 체조를 하면 넙다리네갈래근, 엉덩허리근, 복근이 강화된다는 내용과 함께, 그림자료도 첨가되어 이해를 돕는다. 넙다리네갈래근은 나이 들고 운동량이 부족하면 약해지기 쉬워서 결국 연골 마비와 통증 악화를 수반하게 된다. 저자들은 실제로 이 체조로 치료 효과를 보인 사례를 덧붙인다.


이 책의 운동 처방은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걷기가 무릎 통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걸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하루 걸음 수의 경우 1만 보를 삼가고 6000보로 하는 게 좋다. 통증이 있거나 불안하다면 집에서 '책상 잡고 제자리걸음' 체조를 할 수 있다. 또한 무릎 통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무릎 구부리기를 피해도 안 된다고 말한다. 무릎 구부리기 체조의 경우 경증용과 중증용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에서는 O자 다리 교정 부분도 있다. O자 다리로 걸으면 체중이 실릴 때마다 무릎을 바깥쪽으로 벌리는 힘이 더해져 새끼발가락 쪽에 체중을 싣게 된다. 이는 퇴행성 무릎 관절염의 주요 원인이 된다. 바른 걸음걸이가 무릎 통증을 막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반증이다.


자신과 가족들의 무릎 통증이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통증의 원인과 처방, 최신 치료법까지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통증이 심한 사람의 경우, 이 책에 나와 있는 치료 케이스처럼 통증 완화의 효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는 나이, 운동 부족, 비만을 무릎 통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는데, 운동 부족이나 비만은 개별적일 수 있겠지만 나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대목일 터이다. 평소 무릎을 무리하게 혹은 놀라게 만드는지, 아니면 잘 관리하고 있는지도 체크해볼 수 있는 책이다. 미리 무릎 건강을 유지하는 법을 찾는다면, <무릎 좀 펴고 삽시다>를 펼치고 하루 1분씩 몇 세트 동작을 따라해보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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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올리 그림책 10
오은영 지음 / 올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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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볼 그림책을 선별하는 몇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는, 무한한 상상력을 뻗어나갈 수 있는 그림책이다. 내용 소개를 보니까, 이 그림책 <보니까>가 그에 부합하는 듯하다. (일부러 '보니까'를 넣어서 문장을 만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보니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구나 싶었다.) 실제로 첨부된 독서활동지에 '보니까'를 이용한 말놀이가 나와 있다. '보다'의 뜻도 두 가지로 풀이해놓고 있다. '눈으로 대상을 살펴본다'와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시험 삼아 한다'는 의미. 여러 도형에 덧붙여 그림을 그려보는 페이지, 모눈종이 상상화를 그려보는 공간도 나와 있다. 모눈종이가 활동자료에 등장한 이유는, 특이하게도 이 책 전체 배경이 모순종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펼치면 동그라미가 나온다. 양면에 같은 크기의 동그라미가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달라진다. 둘의 색깔이 다르다. 재미있는 점은 모눈종이의 작은 네모 안에 조금씩 색깔 차이가 있다. 이어지는 세모와 네모 차이는 도형인데, 각각 모서리가 세 개, 모서리가 네 개라는 짤막한 설명이 나와 있다. 삼각기둥, 원기둥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도형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의 내용이라면 평범하다고 볼 수도 있다. 흔히 보던 원, 삼각형, 사각형이 변형을 거치면서, 점점 다른 모양으로 변해간다. 동그라미와 기둥을 그리고 선을 꺾어 보니까 어떤 형태가 보이고, 생각을 움직여 보니까, 더 많은 모양이 그려진다. 생각나는 대로 더더, 그려 보니까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보니까, 보이고, 보이네" 등의 말들이 자주 반복된다. 자세히 보니까, 큰 소리로 읽고 싶은 문장들도 보인다. (나도 모르게 자꾸, '보니까'와 '보인다'를 넣어 말놀이를 하게 된다.)


아니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다르니까 오히려 더 멋져 보인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이 함께 어울리니까 훨씬 더 재미있어 보이네.

와! 생각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까 멋진 세상이 보인다!


재미있는 말놀이와 그림놀이가 조화롭게 펼쳐진 그림책이었다. 내용을 읽으면서 말의 즐거움도 느껴보고, 그림을 관찰하면서 도형을 이해하고 상상력도 넓혀볼 수 있다. 글 작가가 그림도 그렸다. 이토록 멋진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자유로운 한 편의 상상화가 펼쳐진다. 이 그림을 본 아이들이, 당장 자신만의 상상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될 듯하다. 아이와 같이 보는 내가 그런 마음이 솟아날 정도니까. 참고로, 이 책은 제6회 2020 상상만발 책그림전 당선작이다.


그림책을 포함해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날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했던 말에 '왜 저렇게 말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여러모로 나와 다르니까 그렇다고 이해하면서도, 내 안에 '저 사람이 한 말은 틀렸어' 하는 판단이 숨어 있었다. 다르게 생각해보니, '내가 단어 사용에 좀 민감한 편이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특정 상황에 모두 나처럼,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니까. 한 번쯤, 과도한 민감성은 아닌지 살필 필요도 있겠다. 다르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유익했다. 잠시 불편했던 마음이 편해졌으니까. 나와 상대방을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니까. 이 그림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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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커다란지 알려 줄까? -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들 자연 속 탐구 쏙 1
레이나 올리비에.카렐 클레스 지음, 스테피 파드모스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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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을 처음으로 맞아준 동물은 타조였다. 기린은 긴 목을 뽐냈을 뿐 아니라, 긴 다리를 옆으로 펼쳐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냥 갈까 하는 순간에, 코끼리 여러 마리는 한꺼번에 자기들 숙소에서 나와서 우리 가족을 비롯한 방문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갇혀 있는 동물들이 행복할까,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와 함께 그림책 속 동물들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왜 커다란지 알려 줄까?>라는 그림책 표지를 보면서, 아이와 자연스럽게 직접 만나본 타조, 기린, 코끼리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들"로 어떤 동물들을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제, 커다란 동물들을 다룬 만큼 판형도 큰 책을 펼쳐볼 차례다.

이 책은 기린, 코모도왕도마뱀, 아프리카코끼리,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 말코손바닥사슴, 흰긴수염고래, 타조, 갈라파고스땅거북, 하마 등을 다룬다. "나는 풀이 많은 넓은 들판을 우아하게 걸어 다녀요."라는 기린의 말투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들 각자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크기, 몸무게, 먹이, 서식지, 속도, 천적, 신체적 특징, 생활 방식 및 생존 전략 등을 서술한다. 각 동물들이 직접 소개하는 내용을 읽다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정보가 많이 있다. 실제로 잘 몰랐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고, 숫자가 나오는 경우 관련 지식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효과도 있는 듯하다. 가령 기린의 꼬리는 1미터, 혀는 53센티미터, 기린이 하루 먹는 나뭇잎과 잔가지 양은 45킬로그램이 넘는다.

어른 코모도왕도마뱀이나 다 자란 코끼리에게는 천적이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반면 다른 동물들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천적이 있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한번 물었던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물 때 넣은 독 때문에 상대방이 죽는 탓이다. 어릴 때 다른 동물들만 조심하면 어른이 되면 무서울 게 없다. 심지어 인간도 공격할 수 있단다. 코끼리의 적은 사냥꾼들이 아닐까. 그들이 우유빛 상아와 가죽, 고기 때문에 코끼리를 죽이는 현실이라고 하니...

남극하트지느러미오징어 길이는 14미터 이상, 몸무게는 495킬로그램이며, 눈의 지름만 30센티미터다. 이 거대한 오징어는 무려, 수심 1000미터 아래에 살아서, 아직 생활 방식이 규명되지 않은 생명체다. 말코손바닥사슴의 암컷은 뿔이 없고 수컷만 있는데, 그 뿔은 계절의 변화로 떨어진단다. 녹용을 얻기 위해 일부러 자르기도 하는데, 이 사슴의 경우만 저절로 떨어지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수컷 몸무게는 800킬로그램, 암컷은 400킬로그램인데 숲속에서 조용히 걸어다녀서, 숲속 산책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종종 로드킬 피해자가 된다고 하니, 안타깝다.

흰긴수염고래는 몸집도 크지만 엄청 시끄럽다고 한다. 최대 180데시벨까지 낼 수 있는데, 이것은 비행기 소음인 120데시벨보다 크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다른 흰긴수염고래와 이야기를 나눈다. 날개는 있지만 날지 않는 타조는, 모든 새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무겁고 빠르다. 단, "가장 빠른 달리기 선수"다. 더 빨리 날아가는 새들이 있기 때문에. 하마는 반전 캐릭터다. 동작이 느리고 순해 보이지만 아주 재빠르고 위험하다. 물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누군가 길을 막으면, 하마는 그냥 들이받는다. 다른 하마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할 때는 상대방에게 단단한 똥을 한가득 누면서 흩뿌려 준단다.

갈라파고스땅거북은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굳이 애써 달릴 필요도 없다. 위험하면 언제든 숨을 수 있는 등딱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토끼와 거북 우화가 떠올랐다. 달리기 경주라는 설정 자체가 거북에게는 우스운 것이었겠구나. 토끼는 위험에 노출되면 무조건 달려야 했겠지만, 거북은 단단한 갑옷 같은 등딱지 안에 숨어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거대한 몸을 가진 우리는 느긋하게 사는 걸 좋아해요. 햇볕을 즐기며 하루에 거의 16시간이나 잠을 잔답니다."(54쪽)


수명은 150살이지만, 다른 동물들이 거북의 영역을 침범해 풀을 뜯어 먹어서 먹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쥐들은 거북의 알을 훔쳐 먹고 사람들은 거북을 사냥한다고. 거북이 제 수명대로 살도록 서식처 보호를 해줘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동물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라, 아이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원시원한 그림체를 보면서 호기심, 관찰력, 탐구심도 솟아날 듯하다. 함께 보는 어른들도 즐거워진다. 이 그림책을 통해, 몸집은 크지만 더욱 친근감 있게 느껴지는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느긋하게", "즐기며" 살아가는 갈라파고스땅거북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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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 나를 지키는 거리두기의 심리학
송주연 지음 / 한밤의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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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익숙한 제목일 수도 있다. 읽어보기도 전에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간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를 다시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심리학 관련 서적의 경우,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의도된 것이기에, 이 제목을 보면서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 절묘하게 부합되는 부제와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듯한 카피, 단순하지만 명확해 보이는 그림 표지 등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거리와 경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너무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거리, 나 자신과 상대방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점에서야,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온전히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선 긋기를 해야 한다.


먼저 나와의 거리두기를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자신을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 현재 겪는 어려움만으로 인식하는 게, 곧 자신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또한 어릴 때 모든 욕구를 충족받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자랄 수는 없기에,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 책들을 볼 때마다 아주 어릴 때 주양육자로부터 받은 사랑, 보호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고, 그것이 현재 돌출된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가면서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주양육자의 문제점, 그로 인한 상처받은 내면 아이만 강조하는 데 그치는 느낌도 있었다. 이 책의 경우는 다르다.


누구나 상처받은 과거나 내면 아이가 있는데, 어떤 이는 거기에 덜 영향을 받고 또 어떤 이는 거기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묻는다. 핵심은 거리두기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와 선을 긋고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희망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어서 좋다. 이 책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과거의 상처와 거리두는 법을 알려준다. 내면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마음을 수용하고 다독이며 어릴 적 부모에게 원하던 것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비난'을 버리고 '자기 자비'를 가지라고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명명한 '자기 자비'의 뜻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취약성을 가지며, 실패를 겪는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이해하고, 결함과 괴로움이 곧 자신이라는 과도한 동일시를 하지 않는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는 것."(52쪽)


방탄소년단의 'Epiphany'는 자기 자비를 통한 진정한 자기 사랑을 잘 보여주는 곡의 예로 나와 있다.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걸"이라는 구절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이 외에도, 저자는 나와의 거리두기를 위해 완벽주의, 무기력, 나를 역할이나 직업과 동일시하는 것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찰하는 자기'로 나아가기를 하나씩 서술하고 있다.


다음은 타인과의 거리두기다. 내게 좋은 것이 네게도 좋을 것이라는 착각의 말들에 경계할 일이다.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학자 피터 포나기가 개념화한 '정신화'라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서술해간다. '정신화'란 나와 타인의 마음을 성찰하듯 바라보는 능력이다. 곧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타인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또한 연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비현실적인 자기애를 가진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기 영역이 침범당했을 때의 대처법,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매이지 않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결국 나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친밀감과 보살핌을 느끼면서도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의 자율성을 누릴 수 있는 적당한 거리. 이 거리를 찾는 것은 관계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184쪽)


신승훈의 'Interstellar'는 적당한 거리에 대한 그 나름의 답을 제시한 예로 나와 있다. "우리 조금 떨어져서 걸어봐요 있는 그대로의 서롤 바라보며 가장 소중한 게 뭔지 느껴봐요 그때쯤에 우리는 더욱 눈부시게 빛날 거예요"라는 가사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게 뭔지"에 따라 우리 각자의 바운더리가 정해진다는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세상과의 거리두기다. 나와 타인을 넘어 세상에 선 긋기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 공감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두가 나와 같다는 전제하에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편견을 유발한다. 이 책에서는 '가부장적'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가정 구성원 개개인보다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중시하는 '가족주의',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 '외향성 신화'로 인한 내향성에 대한 오해, 나이 드는 것을 혐오하는 '연령차별주의' 등을 다룬다. 저자는 나와 타인의 고유한 개성을 막는 통념과 편견에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따라서 선을 긋고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은 크게 프롤로그에 나온 저자의 일상 예와 문제의식, 본문 전체에서 다루어진 여러 사례를 비롯한 심리학적 용어와 관련 책, 드라마, 가요, 에필로그에 나온 저자의 일상 예와 당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그동안 알고 있던 심리적 거리두기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정리해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든 예에서 맞장구 치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만큼 내가 거리두기를 제대로 못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쩌면 불쑥 튀어나오는 과거의 상처 혹은 후회의 조각들 때문에, 이러한 거리두기는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선을 그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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