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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요즘 청소년 소설을 여러 권 읽다 보니, 이 분야의 신간도 찾아 읽고 싶어졌어요. 연령대가 다양한 야간고등학교 동아리 과학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제목부터 호기심을 끌더니,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중간중간 과학 상식도 챙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작가 이요하라 신은 1972년생으로 지구과학과를 졸업, 대학원 지구행성물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요. 2009년 첫 소설을 시작으로, 2025년 <쪽빛을 잇는 바다>로 172회 나오키상(일본의 대중소설 작가에게 권위 있는 상. 저는 나오키상 수상작품 중에서 <꿀벌과 천둥>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지요.)을 수상했답니다. 작가가 과학 분야 전공자여서, 과학부 이야기를 더 실감 나게 썼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네요.
히가시신주쿠고등학교 야간반은 한 학년에 한 학급, 정원은 30명이지만 매년 정원 미달. 수업은 일주일에 5일. 5시 45분에 1교시 시작, 9시 정각에 4교시가 끝나서 졸업까지 4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다케토는 새로운 담임 후지타케의 관심 덕분에, 자기가 그동안 읽고 쓰는 게 왜 힘들었는지 알게 되지요. 난독증. 부모조차 불량품 취급만 했을 뿐, 자신의 난독증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후지타케가 다케토 앞에 특별한 폰트의 글을 내밀며 읽어보라고 합니다. 수월하게 읽히는 순간, 다케토는 잃어버린 학창 시절, 평범함에서 멀어졌던 자신의 지난 세월이 몹시 억울할 따름이에요. 후지타케는 그런 그에게 과학부 동아리를 만들 거라고 얘기하는데...
후지타케는 교실에 작은 '푸른 하늘'을 만드는 실험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다케토의 담배가 유용한 도구가 되고, 하늘이 파란 이유, 구름이 하얀 이유를 여러 학생들 앞에서 설명합니다. 말 그대로 생활 속 과학은, 된장국으로 '적란운'을 만드는 실험으로 이어져요. 일본과 필리핀의 혼혈인이자 남편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는 안젤라도 관심 가질 법해요. 후지타케는 부엌에서 할 수 있는 일명 '키친 지구과학'의 예들을 안젤라 앞에 열거해주기도 해요.
자율신경 이상(기립 조절 장애)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가스미는, 후지타케, 다케토, 안젤라가 함께하는 '화성의 저녁놀 재현' 실험에 동참합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인물들이 한 명씩 과학부 동아리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학습만화 <내일은 실험왕>의 소설 버전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과학 실험과 해설 위주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스미는 NASA 화성 탐사차인 오퍼튜니티가 찍은 바큇자국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리스트컷 자국(손목을 긋는 증상, 자해행위를 반복하는 흔적)을 연관지어요.
가스미는 자기와 비슷하게 리스트컷 자국이 있는 마야가 자기와 같이 자해행위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강하게 뿌리쳐요. 그리고 보건실 교사 사쿠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지요.
"너도 그 애보다 너 자신을 구해. 난 자신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밖에 도와줄 수 없으니까."(138쪽)
그러면서 오퍼튜니티의 미션 종료처럼, 자신도 그렇다고 느낍니다. 담담하고 야무지게.
왼팔에 새겨진 흉터를 한 번 어루만졌다. 이 바큇자국은 여기서 종료.
나는 지금부터 새로운 바큇자국을 만들 것이다.(144쪽)
이렇듯 등장인물 각각의 사연, 야간고등학교 적응, 그리고 과학부 활동이 전개되고요, 소설은 '일본 지구행성 과학연합대회'에 참가하는 과학부 부원들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그들의 활약과 수상 결과를 책에서 확인해보세요.
2024년 일본 NHK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던 원작 소설. 불량품 혹은 실패작이라고 스스로 낙인찍거나 좌절, 절망의 벽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야간고등학교 과학부를 통해 학문의 즐거움과 더불어 삶의 기쁨도 건져올리는 이야기였어요. 중간중간 과학 실험과 해설이 가독성에 제동을 좀 걸면서 주춤하게 되지만, 생활 속 과학, 그 속에서 찾아낸 인생의 진리 등이 녹아들어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