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인간 -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EBS CLASS ⓔ
권수영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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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과 부제에 끌렸다. 나 자신에게 남보다 못하게 너무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가족에게는 마음과 다르게 툴툴대는 말투가 많았던 지난 시간들도 떠올랐다. 사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많이 남아 있는 나에게, <치유하는 인간>이 툭 던져주는 느낌은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우리 안에 이미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용어나 사례 등은 그동안 읽었던 심리학 책에서 봐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많았고, 이 책을 읽는 도중 여러 번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시울도 적셔졌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눈물 많은 성향의 개인 에피소드, 편안한 서술이, 어딘가 단단히 뭉쳐 있던 마음을 풀어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공격성에 보복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아이의 숨겨진 불안을 충분히 공감하는 안아주기가 필요하다."(59쪽)

 

발달장애를 가진 만수의 사례에서 나온 표현인데, 이것은 자녀 양육뿐 아니라 자기 자신, 타인에 대한 태도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상대방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뚝심을 가지고 참으라고, 겉으로 보이는 행동 대신 상대방 내면의 불안이나 혼란을 공감하라고 말한다. 가족과의 갈등이 있었을 때, 나는 그런 안아주기를 원했다. 돌아보면 상대방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먼저 그래주기를 바라면서, 겉으로는 뾰족하고 날카롭게 찌르기만 했던 게 아니었던가. 저자가 정의하는 공감은 "꼭 안아주기, 그리고 고통당한 이와 함께 웅덩이 바닥에서 우는 일"(75쪽)이다. 문제 해결의 말이나 손쉬운 동감이 아니라 공감을 하라는 말이,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이 책에는 여러 용어가 나오는데, 그중 판단 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자세인  '괄호 치기', 겉으로 드러난 방어 자세인 '원심력 감정', 진정 공감받고 싶은 마음인 '구심력 감정', 누군가와의 사별부터 잊고 싶은 트라우마나 심리적 외상에 대한 '애도' 등이 있다. 최근 트라우마 연구자들은 '외상 후 성장'이라는 용어를 말하는데, 외상 후에 스트레스장애만 있는 게 아니라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상처가 생명의 숨으로 변화되는 것"(287쪽)으로 정의되는 '영적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즉,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 예로 나온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영화 <굿 윌 헌팅>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과이어 교수로 나왔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다른 이를 치유하는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도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스쳤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우리 모두 치유하는 사람, 힐러인 셈이다.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이나 말로써 나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지 말자. 이제는 정말 킬러를 그만하고 힐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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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들링 2 - 첫 번째 엔들링 2
캐서린 애플게이트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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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엔들링1>을 읽고 나서 빅스 원정대의 다음 여정이 궁금했다. 1편에서 "진실 안에 힘이 있다"는 문구를 인상적으로 봤고 진실과 거짓의 대립 구조가 두드러지게 느껴졌기에, 2편에서는 어떤 구절과 맥락이 나를 사로잡을지 두근두근 기대감을 가졌다. 그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중간까지 읽기도 전에, 어떤 상황과 설정에 좀 의아스러움이 느껴져 얼마 동안 이야기 밖으로 나와 있어야 했다. (그 이유는 '배신자의 최후' 정도로 밝혀둔다. 사실 그 대목이 나중에 이야기 전개와 해결방법으로 나아갈 때 필요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엔들링2>에서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꿈'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편은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꿈을 크게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미약해 보였지만 점차 또렷해지는 꿈, 지극히 개인적인 꿈처럼 보였지만 서로의 꿈이 만나 뭔가 더 큰 의미와 가치를 품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빅스가 데언을 찾아 떠나는 여정 가운데 잠시 카라의 가문을 찾아가는 길로 새는 듯하나, 이는 궁극적인 큰 이야기의 밑그림이 된다. (자연스럽게 3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빅스 일행은 '타록'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섬을 찾아 떠난다. 그 섬에 데언의 마을이 있다는 '전설'과 멀리서 얼핏 데언을 본 것 같다는 빅스의 '희망'을 붙든, 어찌 보면 희미한 꿈 같은 여정이다. 애써 찾아간 섬에서는 같은 또래의 데언인 맥신을 동행자로 삼게 되었을 뿐, 일행은 다시 펠라고강 근처로 가면 데언 마을을 찾을 수 있다는 '소문' 혹은 다른 꿈을 붙들게 된다. 토블, 맥신, 새로운 동행자 사비토와 함께 작은 원정대의 리더로 나서게 된 빅스는, 우여곡절 끝에 많은 데언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여러분을 이곳에서 데려가기 위해 왔어요. 데언들은 카라산드 도나티와 협력해서 이 전쟁을 멈춰야 해요. 그래야 모든 종족의 죽음을 막고 네다라에 정의를 가져올 수 있어요!"(449-450쪽)

 

처음 빅스의 꿈은 자신의 종족인 데언들을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엔들링이 되지 않기 위해. 그러다가 자기 종족의 위험뿐 아니라 네다라 전체의 전쟁 상황을 알게 된다. 네다라의 평화! 이것이 빅스 안에 자신도 모르게 키워진 새로운 꿈 아닐까.

 

한편 데언은 '꿈만들기'를 한다. 꿈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것. 빅스는 꿈 속에서 한 데언을 만난다. 그는 데언어로 "다이 알우 머르크 레 위르타니"라고 속삭이는데, 그 말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뜻이다. 그 순간 기억의 자락을 움켜쥐려고, 빅스는 꿈만들기를 위한 주문을 외운다.

 

"내가 꿈이고 꿈이 나다."(119쪽)

 

이 구절은 책 후반부에 다시 나온다. 빅스는 악몽을 꾸는 중에 필사적으로 이 주문을 외운다. 그것은 악몽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그런 과정 끝에 결국 마음대로 꿈을 통제하게 되고, 예지몽처럼 책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꿈을 꾼다.

 

책 중반 이후에는, 실제 원정대의 리더인 카라에 대한 에피소드와 활약상이 나온다. 1편에서 카라가 가진 검 '네다라의 빛'이 신비롭게 느껴졌고 정체를 숨겼던 카라의 가문 도나티도 궁금했는데, 2편에서는 그런 궁금증이 해소될 뿐 아니라 카라의 꿈이 소개된다. 그것은 순진하고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원대하며 결연한 꿈인데, 나티테 족의 그렌드왈리프와 나누는 대화(280-281쪽 발췌) 가운데 드러났다.

 

"전 아버지에게 돌아가 군대를 일으키기를 꿈꿔요."

"그럼 당신 군대는 어느 편에 서서 싸울 건가요?"

"어느 편도 아니에요! 나는 싸움을 막을 거예요. 내가 가진 모든 힘과 이 검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전쟁을 막을 거예요."

"평화를 위해 검을 쓰겠다고요?"

"네."

"당신들이 '평화'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기 위해 아주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거예요."

 

포악한 자들인 무르다노와 카자르의 전쟁을 막기 위한 일은, 영웅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는 한 번도 여성이 수장인 적 없던 도나티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인 카라에게 힘을 실어주지만, 몸집도 작은 막내였던 빅스가 그러했듯이 카라를 통해서도 '부족하지만 성장하는 리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라의 검이 평소에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엄청난 힘을 내재한 것처럼, 무모하고 불운해 보이는 원정대였지만 그들이 결국 네다라에 희망과 정의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3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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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제랄드 브로네르 지음, 김수진 옮김 / 책세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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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관점으로 가짜 뉴스를 다루는 책을 꽤 흥미롭게 봤다.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관점이다. "가짜 뉴스로 도배된 현대 사회의 인식 메커니즘"을 밝혔다는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프랑스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쓴 내용이 궁금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거짓과 의혹으로 공적 공간을 점령하는 과정들이 정보기술의 발달과 우리 사고방식의 작용, 민주주의의 본질 그 자체 등에 의해 조장"된다고 말한다. 서문에서는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한 의심의 영역이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이유를 정보 시장의 자유화와 '상품' 공급의 획기적 변화로 본다. 본문은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가는 내용인데, 다음 문장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설명한 듯하다. (저자는 본문에서 소위 음모론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일축하지 않고, 거기에도 신빙성 있어 보이는 근거가 있다고 전제한 뒤, 그렇다고 해도 옳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믿는 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33쪽)

 

가설, 신념, 뉴스 등 정보 상품이 확산되는 가상 공간인 '인지 시장'은 오늘날 정치적, 기술적으로 자유화됐고, 정보 보급은 대중화됐으며, 보급자들 간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과잉 공급이 되면 진실보다 '정신적 편안함' 쪽으로 마음이 끌리고, 반증 과정은 시간이 걸리므로 의심스럽지만 쉽게 설득되는 신념을 수용하고 만다. 선별되지 않은 정보가 많아질수록 '확증 편향'이 심해지고 맹신이 만연한다. 저자가 지적한 '필터 버블'은 인터넷 검색의 허상과 위험성을 말해준다. 또한 구글의 검색 사이트 관련 실험 결과는, 편파적이지 않을 것 같은 정보 자체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편집되어 보여질 수 있는지를 반증한다.

 

밀푀유 같은 방대한 논거를 내세운 소위 '포티언 상품'은 음모론 신화의 신뢰성을 구축하고 엄청난 정보의 양으로 위압감을 준다. 저자는 인터넷 상의 음모론이 사람들에게 파고드는 방식, 그로 인해 동조하든 안 하든 '전부 다 거짓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인지 오류의 용어들과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정보의 빠른 전파 속도와 광범위한 파급, 과도한 경쟁이 결국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를 초래했다고 본다.

 

팩트 체크가 되지 않은 채 방출되는 기사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저자가 예로 든 다른 나라 언론의 가짜 뉴스나 과열 보도가 생소하거나 놀랍지 않다. 개인 SNS도 마찬가지다. 어떤 내용을 올려야 관심과 홍보가 될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도,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우려스러운 경쟁의 단면이다. 다만 저자가 든 여러 사례 중에서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다.

 

2012년 유전자변형 옥수수의 특정 품종에 대한 위험성 증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언론이 서둘러 <GMO는 독약>이라는 기사를 터뜨리고 여러 정치인이 GMO 금지를 촉구한 사태가 있었다. 저자는 이를 '극단적 사전주의 원칙'의 예로 보면서, 대다수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과학자의 말을 신뢰하면서 왜 GMO에 대해서는 위험하지 않다는 과학자의 말에 불신하냐고 반문한다. 개인적으로 GMO의 문제점에 대한 자료를 많이 접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의견에는 선뜻 동조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이 부분은 과학자에 대한 신뢰 문제와는 좀 다른 맥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이 될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보고, 정치인들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판단 오류 성향을 자극하는 대신 이를 진정시켜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포퓰리즘은 인민의 외국인 혐오증을 먹고 살고, 또 어떤 포퓰리즘은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인민의 혐오를 먹고 살며, 또 다른 포퓰리즘은 평등에 대한 인민의 지나치게 단순화한 인식을 먹고 산다. (중략) 이득보다는 비용에 주목하고, 낮은 확률을 과대평가하며, 의심스러울 땐 가만히 있는 게 좋다는 등의 사고방식을 조장한다."(309쪽)

 

궁극적으로 저자는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에서 '지식의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그에 따른 저자 나름의 논리와 대안이 나와 있다.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해결 방법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장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책임이 막중한 언론에 대한 저자의 기대 부분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 손쉬운 검색 가운데 은연중 판단의 착오와 추론의 오류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실감해본다. 무엇보다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에 대한 저자의 식견을 보면서, 이 문제가 단순하지 않고 꽤 심각하다는 것, "그저 안 믿으면 그만, 내가 잘 분별하면 되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민주주의'로 가는 여정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 반면 '합리적 의심'이 무조건 음모론으로 내몰리는 것도 경계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친다. 기존에 가진 생각의 틀을 제대로 흔들어보게 되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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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데이브 에거스 지음, 앤젤 창 그림 / 상수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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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책을 마주했다. 2020년의 마지막, 의미 있는 날에 펼친 책이어서 더 반갑다. 글 없는 그림책으로, 글 작가의 구상에 그림 작가의 영감이 펼쳐져 있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자연 경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나와 있을 따름이다. 가령, 계곡을 배경으로 하얀 호랑이가 보이는 장면에서는 'VALLEY'가 적혀 있다. 사실 영어 단어도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각 장면과 어우러진다. 그래서 본문에 단어 번역이 나오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모든 장면이 끝나는 지점에, 썸네일을 통해 본문에서 영어로 표기된 장면들의 번역과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운무림, 피오르, 환초, 고산호 등의 여러 지형들과 설명을 보면서, 각 지형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그림책에는 노란 의자를 들고 길을 떠나는 하얀 호랑이가 등장한다. "너, 어디로 가니? 노란 의자는 뭐야?"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호랑이를 따라 함께 떠나본다. 호랑이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노란 의자를 배낭처럼 짊어지고 간다. 배를 탈 때는 앞에 풀어놓은 채 노를 젓는다. 각종 꽃들이 만발한 곳에서 작은 동물들과 만났을 때는 노란 의자를 잠시 한곳에 놓아둔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오로라를 감상할 때는 노란 의자도 호랑이처럼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다른 곳 '타이가'에 이르면 또다른 호랑이들, 노란 의자들과 만난다.


 

호랑이의 여정 가운데 화려하고 멋지게 수놓아진 풍광을 눈에 담다보면, 뭔가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그림책의 흐름과 별도로, 한 장면씩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혹은 마음을 사로잡는 특정 장면에 눈을 고정한 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돈해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그래, 이렇게 이 그림책에 기대어 올해의 아쉬움들도 털어내보자.


 

노란 의자는 뭘까. 처음에는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감이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무게나 책임'을 무겁거나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때로는 버겁지만 기꺼이 또 넉넉히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각자 생각하고 품고 사는 가치, 소중한 의미일 수도 있겠다. 더불어, 호랑이의 여정은 하루일 수도 있고 인생 전체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그 여정을 올 한해로 적용해보고 싶다.



호랑이를 따라온 여정 끝에, 호랑이는 자기 집으로 가고, 나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곳, 이리저리 지친 몸과 마음의 상처들도 감싸주는 곳... 이제 다시 충전하여 새로운 여정을 준비해야 할 때다. 아마 하얀 호랑이도 그럴 것이다. 다시 노란 의자를 들고 세상 밖으로 힘겹지만 눈부신 모험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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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나는 이렇게 생각해! - 하브루타로 교육받는 유아들의 생생한 목소리
김미자 지음 / 피스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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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곳은 교회다. 주일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하브루타' 교육방법 소개였을 것이다. 이후 궁금해서 관련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보았고, 대부분 초등학생에게 적용된 내용이어서 '나중에 아이에게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정도로 생각을 정리했었다. 그러다가 유아교육 현장에 적용한 사례를 담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 기다릴 필요 없이, 이 책으로 아이에게 곧장 적용해도 되겠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친구를 의미하는 '하브루타'는 '둘이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공부방법을 말한다. 저자는 이것의 기원과 배경을 간단히 언급한 후, 이 방법이 왜 유아기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 일곱 가지로 설명한다. 그중 유아기가 주 양육자와 1:1 의사소통이 가장 많은 시기라는 점은 특히 공감이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유아교육 현장의 목소리, 유아들의 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두뇌 발달, 심리/정신 강화, 기본인성 지도, 의사소통 유형 교정의 큰 주제별로 나누어 실제 유아들의 대화와 활동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만3세, 만4세, 만5세의 활동명, 주제 선정 이유와 진행과정은 동일하되 각 연령대별로 도입-전개-정리 단계가 각각 달라 교육 현장에서 세밀하게 참고할 수 있겠다. 

 

이 책이 유아들의 사례 중심으로 엮어진 특성이 있지만, 각 주제별 개요 부분에 필요한 설명, 관련된 이론이 소개되어 유익하다. 가령, 유아기에 결정되는 신경회로가 이후 시기의 신경회로 재구성의 기본이 된다는 점, 단답식인 수렴적 질문과 여러 가지 답변을 열어두는 확산적 질문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애착이론과 의사소통 유형에 대한 내용이 의미 있게 다가왔고, 실제 아이와 대화할 때 주의하고 명심할 부분으로 여겨졌다. 

 

아이를 보면서 매번 그 생각과 표현에 감탄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하면서 뭔가 그 연령대에 제한시켜 바라본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책에 수록된 아이들의 말을 보면서 '와, 이런 생각도 하네. 이런 감정까지 느끼는구나' 하고 놀란 부분도 있다. 유아기가 무한한 두뇌 발달의 시기라는 점을 상기해보며, '하브루타'가 유아기부터 필요하다는 저자의 관점에 적극 공감한다. 집에서 부모나 주 양육자가 아이와 마주할 때는, 아이마다 발달 사항이 다르므로 이 책의 연령대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폭넓게 적용해봐도 될 듯하다. 한마디로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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