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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데이브 에거스 지음, 앤젤 창 그림 / 상수리 / 2020년 12월
평점 :
오랜만에 그림책을 마주했다. 2020년의 마지막, 의미 있는 날에 펼친 책이어서 더 반갑다. 글 없는 그림책으로, 글 작가의 구상에 그림 작가의 영감이 펼쳐져 있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자연 경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나와 있을 따름이다. 가령, 계곡을 배경으로 하얀 호랑이가 보이는 장면에서는 'VALLEY'가 적혀 있다. 사실 영어 단어도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각 장면과 어우러진다. 그래서 본문에 단어 번역이 나오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모든 장면이 끝나는 지점에, 썸네일을 통해 본문에서 영어로 표기된 장면들의 번역과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운무림, 피오르, 환초, 고산호 등의 여러 지형들과 설명을 보면서, 각 지형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그림책에는 노란 의자를 들고 길을 떠나는 하얀 호랑이가 등장한다. "너, 어디로 가니? 노란 의자는 뭐야?"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호랑이를 따라 함께 떠나본다. 호랑이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노란 의자를 배낭처럼 짊어지고 간다. 배를 탈 때는 앞에 풀어놓은 채 노를 젓는다. 각종 꽃들이 만발한 곳에서 작은 동물들과 만났을 때는 노란 의자를 잠시 한곳에 놓아둔다. 그러다가 호랑이가 오로라를 감상할 때는 노란 의자도 호랑이처럼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다른 곳 '타이가'에 이르면 또다른 호랑이들, 노란 의자들과 만난다.
호랑이의 여정 가운데 화려하고 멋지게 수놓아진 풍광을 눈에 담다보면, 뭔가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그림책의 흐름과 별도로, 한 장면씩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혹은 마음을 사로잡는 특정 장면에 눈을 고정한 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돈해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그래, 이렇게 이 그림책에 기대어 올해의 아쉬움들도 털어내보자.
노란 의자는 뭘까. 처음에는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감이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무게나 책임'을 무겁거나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때로는 버겁지만 기꺼이 또 넉넉히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각자 생각하고 품고 사는 가치, 소중한 의미일 수도 있겠다. 더불어, 호랑이의 여정은 하루일 수도 있고 인생 전체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그 여정을 올 한해로 적용해보고 싶다.
호랑이를 따라온 여정 끝에, 호랑이는 자기 집으로 가고, 나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곳, 이리저리 지친 몸과 마음의 상처들도 감싸주는 곳... 이제 다시 충전하여 새로운 여정을 준비해야 할 때다. 아마 하얀 호랑이도 그럴 것이다. 다시 노란 의자를 들고 세상 밖으로 힘겹지만 눈부신 모험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