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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EBS 제작팀 기획, 정우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가끔 뽀야와 미술 전시회를 같이 가는데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편안하고 익숙하게 미술을 대할 수 있으면 해요. 한 그림 혹은 조각 앞에 오래 머물게 되든 그냥 스치듯 지나가게 되든, 각 작품들이 자신에게 주는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요. 아이와 함께 보는 미술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그 덕분에 저도 예전과 달리 조금씩 화가들의 인생, 삶의 태도, 작품이 안겨주는 느낌에 주목하게 되었지요.
도슨트 정우철 님의 책을 처음 봅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싶었는데 최근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리즈 미술 편으로 읽게 되었네요. 미술작품 감상을 다룬 책들이 워낙 많아서 선별조차 어려운데요, 이 책은 저자뿐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냅니다.
이중섭과 모딜리아니 / 박수근과 고흐 / 모네와 르누아르 / 클림트와 실레 / 모지스와 루스 / 젠틸레스키, 수잔 발라동, 프리다 칼로 / 칸딘스키와 클레 / 뭉크와 키르히너 / 로댕과 클로델 /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우리나라 화가 중 이중섭과 박수근을 다루었고요, 저자 나름대로 주제를 정해 그에 따른 둘 이상의 인물을 비교해서 서술하고 있어요. 프롤로그에 이 책의 의도가 잘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림을 마주하는 이유에 대해서.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조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슬픔을 위로받고, 행복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림은 변하지 않으면서 나와 함께하는 친구이며,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이기도 하다.(9쪽)
사랑으로 행복했지만 전쟁으로 고통스러웠던 삶, '사랑과 전쟁'의 공통 분모를 가진 이중섭과 모딜리아니, '서민의 평범한 삶'에서 '숭고함'을 주목한 박수근과 고흐, 오늘날 '소확행'의 시초라 할 만한 인상주의 화가들 모네와 르누아르를 읽어가면서, 미술 수업을 듣는 느낌입니다. ('왜 학창시절에는 이런 선생님이 없었을까? 적어도 화가의 인생을 짧게라도 알려주고 우리가 배울 자세로 잠깐 연관짓는 수업이었다면!' 하는 생각, 감성이 배제된 수업이었다는 기억.)
모네와 르누아르의 인상주의가 보여준 행복, 경쾌함, 즐거움의 이면에는 삶을 대하는 매우 중요한 태도 하나가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정신이다.(108쪽)
저자는 '오스트리아 미술계 천재들'로 우정을 나눈 클림트와 실레, 추상화의 영역을 개척하고 서로 격려한 칸딘스키와 클레, 유명한 조각가 연인이었던 로댕과 클로델, 르네상스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경쟁자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을 다룹니다. 또한 다른 시대와 배경이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세 여성 화가들(젠틸레스키, 수잔 발라동, 프리다 칼로), 표현주의의 거장 뭉크와 키르히너 등의 인생과 작품을 서술합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끝은 원대했다'고 할 만한 모리스와 루소의 삶과 작품을 보여준 후,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좀 속도가 늦으면 어떤가? 남들에게 조롱 좀 받으면 어떤가? 그것들이 나의 꿈보다 더 소중할 리는 없지 않을까?(163쪽)
이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진 화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고요, 잘 몰랐던 몇몇 화가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유익했어요. 이 책은 화가나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 듯해요. 그만큼 쉽고 친근한 서술로 되어 있어요.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미술작품도 개인 혹은 사회가 처한 환경에 따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불안 가운데 자유로운 존재를 표현했다는 추상화(클레, <붉은 풍선>), 최악의 공포를 표현한 작품(뭉크 <절규>) 등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네요. 이 책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제적 빈곤, 전쟁 등으로 절망하고 화가의 삶마저 파탄에 이르는 모습들이 안타까웠고 극복 의지조차 소멸될 만큼 좌절된 상황이 주는 암담함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요. 안팎으로 평안한 상태에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때는 어떤 그림들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지, 좀 더 밝고 따뜻한 작품이 되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