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악당 바람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사토 메구미 지음, 황진희 옮김 / 올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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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과의 갈변 현상을 보고 "색깔이 왜 변했어요?" 하고 묻는다면 "악당 바람 때문이야."라고 대답해주면 될까요. 어쩌면 <사과와 악당 바람> 그림책을 본 아이들이라면,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사과 편입니다.

과일과 채소 친구들이 모여 있는 맛있는 숲에, 빨간 사과가 친구들인 노란 사과, 초록 사과와 함께 놀러왔어요. 그리고 기마전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머리띠를 가장 많이 빼앗은 팀이 이기는 놀이지요. 세 사과가 한 팀, 다른 과일과 채소 친구들도 팀을 만들었어요. 이 장면에서 여러 과일 채소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특히 여기서부터 무를 주목해보면 더욱 흥미로워요. 무는 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지요.

"꼭 이기고 말 테야."

셋 모두 크기가 같아서 안정감 있고 흔들리지 않은 덕분일까요. 기마전 결과는 사과 팀의 승리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사과 친구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가는 뒷모습을 누군가 따라갑니다. 갈색 바람이에요. 한편 저만치 가는 사과 셋을 바라보는 과일 채소 친구들의 표정 가운데 두드러진 얼굴은 무예요. 인상 찌푸린 모습. 그에 어울리는 대사도 적혀 있지요.

"억울해."

무는 기마전에서 진 게 몹시 속상한 모양이에요. 저는 주된 이야기인 '사과와 갈색 바람'도 재미있었지만, 이기는 데 집념을 보이는 무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릴 때 경쟁심이 너무 없어서 탈이었던 저에게, 오히려 무의 표정과 말이 더 눈에 띄었어요. 여럿이 놀이를 할 때면 꼭 무와 같은 친구가 있는 법이지요. 놀이뿐 아니라 뭐든 승부 근성이 강한 사람이 있는데요, 겉으로 솔직하게 표출된 감정은 건강하고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장면에서는 사과 셋을 뒤쫓는 갈색 바람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레몬의 시선이 더 마음에 와닿았지요. 자기 감정에만 갇혀 있다 보면, 정작 봐야 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싶고요. 감정과 표출의 적정선이란 참 어려운 듯해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과 셋을 휘감은 갈색 바람의 횡포에 맞서, 과일 채소 히어로즈가 출동합니다. 향신료 스파크에 갈색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되지요. 문제는 사과 셋의 얼굴이 갈색으로 변하고 만 거예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바로 그림책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사과 친구들이 숲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지 무가 기마전을 하자고 말하는군요. 이쯤 되면 부제목이 <사과와 집념의 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겠어요. 과연 무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도 무를 비롯해 과일 채소 친구들의 표정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 놀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상대방의 머리띠를 빼앗는 과정에서 손이나 얼굴에 생채기도 날 수 있는 놀이, 위로 들어올린 친구가 너무 무거워 끙끙대다가 팀 전체가 꽈당 뒤로 넘어갈 수도 있는 놀이, 그게 기마전일 텐데... 문득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런 놀이 장면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졌어요. 씁쓸해지기도 하고요. 항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오늘의 일상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인식되면 안 될 텐데 말이지요. 일상이 회복된 풍경 중 하나는, 아이들의 신나는 함성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한창인 운동회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가 사과의 갈변 현상을 보고 "색깔이 왜 변했어요?" 하고 묻는다면 "악당 바람 때문이야."라고 대답해줄 수는 있겠어요. 그런데 <사과와 악당 바람> 그림책을 본 아이니까 이렇게 되묻지 않을까요. "악당 바람은 왜 갈색이에요?" (제 아이는 그런 질문이 없었지만요.) 만약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그림책을 함께 읽는 어른은 자신의 지식과 설명 능력으로,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갈색 바람의 정체를 설명해주면 되겠지요. 사실 악당이니까 일반 바람과 다르다고 여기면 그뿐일 거예요.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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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씨앗 발사! 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
사토 메구미 지음, 황진희 옮김 / 올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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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채소 히어로즈 시리즈를 이제야 만나봅니다. 앞선 두 권의 책 <맛있는 숲의 레몬>과 <딸기와 팡이>를 그냥 스쳐지나갔었지요. 표지 속 귀엽고 앙증맞은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고 미루었어요. 그러다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복숭아 편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명랑하고 상냥한 친구 복숭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복숭아가 맛있는 숲에 나타나자 과일 채소 친구들이 공놀이하자, 기차놀이하자, 소꿉놀이하자, 그렇게 같이 놀자고 권하는군요. 복숭아의 답변은 모두 같아요.

"그래, 좋아!"

전부 다 할 수 없는데도, 복숭아는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는데요, 아마 "싫어."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어요. 복숭아는 거절을 잘 못한다네요. 그래서 복숭아가 참여한 최종 놀이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했지만, 그 내용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듯이 살짝 넘어갑니다. 복숭아가 많이 좋아하는 일은 꽃을 키우는 거예요. 제법 꽃밭이 넓어졌지요. 그런데 계속된 비 때문에, 꽃밭이 망가지고 말았어요. 민달팽이들이 꽃을 사각사각 먹어치우고 있어요.

그때 향신료 친구들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그림책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요, 그 장면에서 민달팽이들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과일 채소 히어로즈 덕분에 강적인 대왕 민달팽이도 물리치게 되지요. 그전에 복숭아의 눈부신 활약을 빼놓을 수가 없답니다.

"꽃과 향신료 친구들에게 못되게 굴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 복숭아가 곤경에 빠진 향신료 친구들을 도와줍니다. 그림책 제목과 연관된 무기를 이용해서요. 인상적인 장면은 복숭아가 벌벌 떠는 모습이에요. 대왕 민달팽이 앞에서 두렵고 긴장했던 탓인지, 무기가 무거웠던 탓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떨렸지만 끝내 행동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그림책 초반에 친구들의 놀이 제안에 무조건 좋다고 말하던 복숭아의 반전 모습이기도 해요.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친구들을 괴롭히는 악당에게는 무섭고 단호하게! 멋져요.

그림책 마지막의 꽃밭 장면이 참 예뻐요. 잘 가꾼 꽃밭, 벤치와 그네, 분수도 멋지지만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북적이는 공간이라 더 예쁘게 보여요. 이 세상도 복숭아의 작은 꽃밭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아이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게 되는 그림책이에요. 굵고 큰 글씨체는 더 크게 소리치며 읽게 되지요. 대왕 민달팽이도 됐다가 히어로즈도 됐다가 복숭아도 됐다가 하면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복숭아의 멋진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누군가 용기란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워도 씩씩하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이 그림책을 통해, 떨고 있지만 당당히 악당과 맞서는 복숭아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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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 매거진 POPOPO Magazine Issue No.05
포포포 편집부 지음 / 포포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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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포 매거진을 처음 만나봤다. 그래서 글의 내용 전에 외형을 꼼꼼하게 살펴보게 됐다.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의 줄임말이 '포포포'다. 한글 발음, 영문 표기, 풀이된 뜻 모두 인상적이다. 판형만 보면 잡지라기보다 단행본 같은데, 일반 책보다 가로 사이즈가 좀 길게 설정되어 있고 4도 컬러에 레이아웃이 자유롭다. 글마다 영문 번역이 되어 있어서, 영작 연습을 할 때 참고 삼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특별히 이번 호에 끌렸던 것은 '내면아이'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울고 있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꼭 안아주는 일. 어쩌면 그것은 평생에 걸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잊고 있던 내면아이가 가끔씩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모습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면 아이, 집으로'를 주제로 한다. 먼저 '엄마'를 주제로 한 정문정 작가의 글을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는 영화 <러브 스토리>의 명대사라고 알려진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는데, 나도 그 부분이 거슬렸었다. 왜? 미안할 일을 했으면 사과해야지. 그런데 참 어려운 것 같다. 상대방이 미안할 일도, 사과할 일도 없다고 느낀다면 할 말이 없게 되니까. "사과 같은 소리하네. 자식한테 사과하는 부모도 있냐?"라고 했다는 작가의 엄마처럼. 나의 엄마는 굳이 미안하다고 하실 일이 아닌데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 사람마다 느끼는 미안함, 고마움의 온도와 무게가 다른 탓일까. 사랑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작가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는 배우자를 만났고, 자녀에게 그런 표현을 자주 한단다. 미안해. 고마워. 그 말은 어린 시절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기도 하다.


"깊은 곳 열정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막고 사느니 내 변덕을 쫓으며 살기로 했다."(25쪽)


남편을 떠나 아이들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떠났던 박민아 님 글의 일부인데,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 깊은 곳 열정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신경 써야 할 현실이 많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서 스스로 열정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게 아닐까. 마흔에 찾은 자신의 열망, 사진 찍기에 충실한 지난 10년을 이야기하는 23년차 주부 윤성회 님의 글을 보면서 오롯이 나로서 '하고 싶다' 느끼는 것, 일이든 취미든 뭐든 찾아나선다는 것은 정말 용기 같고, 더 늦기 전에 그 용기를 품고 싶다. '엄마'를 주제로 한 1부에서는 그림책 만들기에 동참한 청소년 미혼한부모 인터뷰, '돌봄'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역설하는 리카르타 체차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정말 궁금했던 2부 '내면아이' 편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뭔가 연상되고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다. 문득 떠오르는 일화, 그 속의 정말 나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모습, 자신감 부족이라는 현상 이면에 내면아이가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등. 기질을 분석해 상담하는 전문기업의 이다랑 대표는 내면아이를 성장 경험에서의 트라우마에 한정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 맺을 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나"로 정의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 외면했던 감정을 포함한다. 육아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나를 키우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와의 인터뷰 글을 참고로, 실제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라이프코치 다니엘라의 인터뷰 글에서는 '자기 가치' 곧 자기애, 자기 존중, 자신감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본적인 개념을 발견해본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 셀프 케어 및 연습도 나와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 하상윤 기자의 글에서 엄마의 에피소드가 뭉클했는데, 담담한(당당하기도 한) 엄마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거리의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아. 요즘은 누가 쳐다보면 웃음으로 돌려줄 수 있어."(149쪽)

3부 제목은 'The Sun is Going Home'인데, 이것은 블루메미술관의 전시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전시 작품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담아놓았다. 차분한 방구석 전시회인 셈이다. 직접 찾아가봐도 좋겠다. 이 외에도 밥솥으로 만드는 당근 케이크 레시피를 비롯해, 집을 주제로 자유롭게 펼쳐진 글 여러 편을 읽어볼 수 있다.


잡지의 장점은 다양한 글쓴이를 한 공간(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여러 글들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 다르지만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새로운 시도 등 다양한 사유와 감정을 가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포포포 매거진은 특히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고 하니, 매번 다음 호를 기대하며 찾아볼 것 같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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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의 다이어리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6
엘런 델랑어 지음, 일라리아 차넬라토 그림, 김영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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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덕분에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매번 따뜻함을 전해주는 그림책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참 좋다. <리시의 다이어리>도 그렇다. 표지에서 아이가 들고 있는 꽃 때문일까. 밝고 화사한 느낌을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가 좋다. 이 책에는 꽃과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나온다. 손녀와 어떤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게 될까. 기대하면서 그림책을 펼쳐본다.

리시는 할머니 생신 선물로 알록달록한 꽃다발과 근사한 일기장을 준비한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선물을 샀던 것일까. 리시는 함께 선물을 골랐던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께 이런 질문을 건넨다.

"할머니, 일기가 뭐야?"

아마 엄마에게도 물었을 수 있겠다. 같은 질문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고, 특히 아이가 던지는 질문의 경우는 더욱 그럴 듯하다. 그림책에서 할머니는 옛날 일기를 읽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일기가 뭔지 바로 이해가 될 것이라면서. 할머니는 손녀만 했을 때 썼던 일기 한 편을 읽어준다. 리시가 재미있다고 하나 더 읽어달라고 졸라대자, 할머니는 다른 일기를 읽어준다. 이야기에 집중하며 들었던 리시는 할머니 일기 속 '그 애'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 애는 이름이 뭐야?"

'그 애'는 리시다. 손녀 리시는 할머니 이름 리시에서 따서 지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제목 <리시의 다이어리>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것인가. 할머니의 일기도 되고, 손녀의 일기도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일기장들을 버리지 않고 전부 모았고 지금도 중요한 일들을 기록한다. 늘 기억하기 위해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권한다.

"우리 리시도 일기 써 보고 싶니?"

이튿날 리시는 할머니와 함께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일기장을 고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당장, '새 보물'이 된 일기장을 펼쳐 써 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할머니가 소개한 두 편의 일기를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한 이야기와 아슬아슬 실수담인데, 잘했든 못했든 솔직한 자기 감정을 풀어보라는 무언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할머니가 대단하시다. 오래전 일기장을 차곡차곡 모았다는 것,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때, 매일 일기를 썼고 그것이 꽤 많이 축적되었을 때 모조리 버렸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이런 내용을 읽어봐서 무슨 소용일까 싶었던가. 당시 힘들었던 일보다 더한 것이 앞으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한동안 엄마께 매년 일기장을 사드린 적도 있었다. 한 줄이라도 쓰시는 게 좋지 않겠냐고 권하면서.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부터, 누군가에게 일기장이든 다이어리든 선물하지 않게 되었다. 이 그림책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아이에게 권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꾸준히 일기를 써야겠다는 각성이 든다.

할머니가 손녀를 맞이하며 준비해준 달콤한 케이크와 따뜻한 차,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모두 정겹다. 리시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지 할머니가 들려준 일기가 재미있어서가 아닐 터이다. 어쩌면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눈빛, 정성껏 준비한 손길,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 모두 어우러져서, 할머니가 쓴 일기가, 나아가 일기 쓰기 자체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글작가의 정겨운 글 내용과 이탈리아 그림작가의 아기자기한 그림 분위기가 멋지게 조화를 이룬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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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돌이 쿵!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78
존 클라센 글.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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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자 어디 갔을까?>를 비롯한 모자 시리즈, 그림작가 맥 바넷과 함께한 도형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존 클라센의 그림책 <하늘에서 돌이 쿵!>입니다. 제목부터 호기심과 위기감을 동시에 가지게 합니다. 단조로워 보이는 그림과 글의 구성인 듯하나 그 안에 생각거리를 담아내는 그림책 작가라고 생각해왔는데요, 이번 그림책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이 책에는 작가의 이전 작품에 나왔던 거북이, 아르마딜로, 뱀이 등장해서 반가움을 줍니다.


크게 5부로 나누어진 구성 중 '돌'을 살펴봅니다. 거북이가 한 송이 꽃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자리가 마음에 듭니다. 아르마딜로가 저만치 나타나자, 거북이는 같이 서 있자고 권하지요. 가까이 다가온 아르마딜로는 자리가 어떠냐는 거북의 질문에 느낌이 안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풀이 있는 다른 자리를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지요. 그러기를 두 번 반복하면서요. 아르마딜로가 서 있는 자리에 뱀이 나타나고 둘이 함께 그곳에 있습니다. 거북이는 여전히 꽃 앞에 있고요. 그러다가 거북이가 둘이 서 있는 곳으로 자리로 옮기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돌'은 여러 번 커다란 모습으로 나타나 독자에게 위압감과 긴장감을 줍니다.


꿈쩍하지 않을 듯했던 거북이가 어떻게 움직이게 되었는지 생각해봤어요. 멀리서는 잘 들리지 않는 아르마딜로의 말을 듣기 위해서였지요. 그가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 이유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타인과의 교감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행동이 결과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모면하게 해주었고요. 이대로 머물고 싶은 자리란 더 이상 변화를 받아들이기 싫은 안주일 수도 있고, 타인과의 교류를 담 쌓은 자기만의 세상일 수도 있겠네요.


다음 이야기 '쿵!'에서는, 분명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아르마딜로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거북이가 인상적입니다. 또한 거북이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솔직하게 약함 혹은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타인의 눈에는 너무 뻔히 잘 보이는데 애써 아니라고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해요. 누구나 강한 척, 아닌 척, 뭔가 있는 척 그렇게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는 하지요.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라기보다 스스로 바라는 자기 모습과 현실의 자신이 괴리될 때, 그래서 몹시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의 경우는 그랬던 듯해요.


'미래를 상상하며' 에피소드에서는 거북과 아르마딜로가 함께 눈을 감고 미래를 상상하지요. 하나의 '큰 눈'이 등장해서 꽃을 해치는 모습을 보면 디스토피아일까요. 이어지는 '해넘이' 이야기에서는 아쉽게도 거북이만 해넘이 장면을 보지 못하는데요, 어떤 타이밍의 중요성을 떠올려봤어요. 세상 기준의 성공 기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를 붙드는 삶에 대해서요. '해넘이'에 대해 하루의 끝, 인생의 마무리, 편안한 여유 등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자리가 없어' 에피소드에서는 반복과 변화가 있어요. 앞서 나온 '큰 눈'이 다시 등장해서 긴장감을 줍니다. 그리고 거북이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자신의 속마음을 아르마딜로와 뱀 앞에 그대로 드러냈거든요. 자기가 있을 곳이 없다고 지레짐작하고 떠났다가 다시 그들에게 다가갔는데요, 결과적으로 그런 행동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이번 그림책은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더욱 해석의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각 이야기마다 개별적인 의미 부여를 해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전체 이야기를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매개체는 물론 '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묵직한 소재인 셈이지요. 온전히 그림만 감상할 수 있도록 글 부분과 분리된 구성도 보기 좋습니다. 작가 특유의 색감 처리도 안정감과 차분함을 더합니다. 문득 커다란 게 떨어지는 다른 그림책이 생각났어요.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이 한바탕 웃음으로 끝난다면, 존 클라센의 <하늘에서 돌이 쿵!>은 아이와 이야깃거리를 남겨줍니다. 아마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야깃거리의 내용과 폭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당연히,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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