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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 나를 지키는 거리두기의 심리학
송주연 지음 / 한밤의책 / 2021년 11월
평점 :
어쩌면 익숙한 제목일 수도 있다. 읽어보기도 전에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간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를 다시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심리학 관련 서적의 경우,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의도된 것이기에, 이 제목을 보면서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 절묘하게 부합되는 부제와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듯한 카피, 단순하지만 명확해 보이는 그림 표지 등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거리와 경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너무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거리, 나 자신과 상대방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점에서야,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온전히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선 긋기를 해야 한다.
먼저 나와의 거리두기를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자신을 온전한 한 사람이 아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 현재 겪는 어려움만으로 인식하는 게, 곧 자신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또한 어릴 때 모든 욕구를 충족받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자랄 수는 없기에,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 책들을 볼 때마다 아주 어릴 때 주양육자로부터 받은 사랑, 보호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고, 그것이 현재 돌출된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가면서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주양육자의 문제점, 그로 인한 상처받은 내면 아이만 강조하는 데 그치는 느낌도 있었다. 이 책의 경우는 다르다.
누구나 상처받은 과거나 내면 아이가 있는데, 어떤 이는 거기에 덜 영향을 받고 또 어떤 이는 거기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묻는다. 핵심은 거리두기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와 선을 긋고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희망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어서 좋다. 이 책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과거의 상처와 거리두는 법을 알려준다. 내면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마음을 수용하고 다독이며 어릴 적 부모에게 원하던 것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비난'을 버리고 '자기 자비'를 가지라고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명명한 '자기 자비'의 뜻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취약성을 가지며, 실패를 겪는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이해하고, 결함과 괴로움이 곧 자신이라는 과도한 동일시를 하지 않는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는 것."(52쪽)
방탄소년단의 'Epiphany'는 자기 자비를 통한 진정한 자기 사랑을 잘 보여주는 곡의 예로 나와 있다.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걸"이라는 구절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이 외에도, 저자는 나와의 거리두기를 위해 완벽주의, 무기력, 나를 역할이나 직업과 동일시하는 것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찰하는 자기'로 나아가기를 하나씩 서술하고 있다.
다음은 타인과의 거리두기다. 내게 좋은 것이 네게도 좋을 것이라는 착각의 말들에 경계할 일이다.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학자 피터 포나기가 개념화한 '정신화'라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서술해간다. '정신화'란 나와 타인의 마음을 성찰하듯 바라보는 능력이다. 곧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타인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또한 연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비현실적인 자기애를 가진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기 영역이 침범당했을 때의 대처법,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매이지 않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결국 나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친밀감과 보살핌을 느끼면서도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의 자율성을 누릴 수 있는 적당한 거리. 이 거리를 찾는 것은 관계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184쪽)
신승훈의 'Interstellar'는 적당한 거리에 대한 그 나름의 답을 제시한 예로 나와 있다. "우리 조금 떨어져서 걸어봐요 있는 그대로의 서롤 바라보며 가장 소중한 게 뭔지 느껴봐요 그때쯤에 우리는 더욱 눈부시게 빛날 거예요"라는 가사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게 뭔지"에 따라 우리 각자의 바운더리가 정해진다는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세상과의 거리두기다. 나와 타인을 넘어 세상에 선 긋기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 공감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두가 나와 같다는 전제하에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편견을 유발한다. 이 책에서는 '가부장적'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가정 구성원 개개인보다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중시하는 '가족주의',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 '외향성 신화'로 인한 내향성에 대한 오해, 나이 드는 것을 혐오하는 '연령차별주의' 등을 다룬다. 저자는 나와 타인의 고유한 개성을 막는 통념과 편견에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따라서 선을 긋고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은 크게 프롤로그에 나온 저자의 일상 예와 문제의식, 본문 전체에서 다루어진 여러 사례를 비롯한 심리학적 용어와 관련 책, 드라마, 가요, 에필로그에 나온 저자의 일상 예와 당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그동안 알고 있던 심리적 거리두기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정리해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든 예에서 맞장구 치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만큼 내가 거리두기를 제대로 못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쩌면 불쑥 튀어나오는 과거의 상처 혹은 후회의 조각들 때문에, 이러한 거리두기는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선을 그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