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특별한 집을 짓는지 알려 줄까? - 최고의 동물 건축가들,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자연 속 탐구 쏙 3
레이나 올리비에.카렐 클레스 지음, 스테피 파드모스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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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출판사의 자연 속 탐구 쏙 시리즈 세 번째 책이 나왔다. 큰 판형 위에 세밀한 그림, 흥미로운 동물의 생태 이야기가 펼쳐져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번 주제는 최고의 동물 건축가들이다. 비버, 크로스 스파이더, 집단베짜기새, 흰개미, 황새, 미어캣, 꿀벌, 복어, 두더지 등이 주인공들이다. 어류인 복어부터 살펴본다.


복어는 천적이 나타나면 몸을 부풀리는데, 자기 몸의 세 배나 네 배까지 부푼단다. 수컷은 둥지 만들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바다 맨 밑바닥 모래를 지느러미로 고르게 펴고 원 그리는 작업을 일주일 이상 하면, 그 둥지가 마음에 든 암컷이 그곳에 들어와 알을 낳는다. 그리고 새끼들이 태어나 다른 곳으로 갈 때쯤 또 다른 곳에 새집을 만든다. 누가 더 예쁜 집을 지었나 하고, 암컷이 이곳저곳 수컷의 둥지를 보러 다니는 것일까. 사람들이 볼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일 텐데, 복어들 세상에는 디테일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럼 조류의 둥지는 어떨까.


황새는 1미터 정도 되기 때문에 커다란 둥지가 필요하고 둥지 짓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매번 새로 짓기가 힘들어서 봄마다 원래 살던 둥지로 돌아온단다. 둥지 무게만 최대 2000킬로그램이라니 놀랍다. 황새에 비하면 너무 작은 14센티미터의 집단베짜기새는 얼핏 보면 참새 같다. 실상 참새보다 부리가 더 단단하고 색깔이 회청색이다. 둥지 크기가 최대 3미터 높이, 6미터 길이도 있고 500마리까지 함께 살기도 한다니, 새들의 아파트인 셈이다. 한 번 지은 둥지가 100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포유류의 둥지 속으로 출발!


두더지는 땅 바로 아래에 굴을 파는데, 먹을거리인 지렁이가 많은 풀밭의 굴 파기를 좋아한다. 굴을 더 깊게 파서 다른 방과 이어주는 통로를 만들고 방도 만들며 음식을 저장할 창고도 만든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아기방도 만든다. 밝고 어두운 정도만 구분하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두더지와 달리, 미어캣은 눈 주변의 검은 테두리로 햇살이 비춰도 눈이 시리지 않고 시력도 좋다. 입구가 여러 개인 미로 같은 굴 속에서 살고, 위험시 대피소로 먹이를 구하는 곳 근처에 굴을 여러 개 만든다. 직접 굴을 파고 방과 입구, 통로 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두더지와 미어캣은 전문 건축가 같다.


야행성 건축가 비버의 집은 입구가 물 속에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얕은 물에 집을 지을 때는 댐을 만들기도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대체로 방이 두 개인데, 한 방은 몸을 흔들어 털을 말리는 곳이고 다른 방은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두더지 아기들은 태어난 지 5주가 지났을 무렵, 비버의 아기들은 두 살이 되면 살던 곳을 떠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곤충 흰개미, 꿀벌, 거미류인 크로스 스파이더에 대한 생태 정보도 흥미로웠다. 모래와 잘게 씹은 나무, 배설물을 모아 침으로 뭉쳐서 만들어진 흰개미 언덕은, 최대 10미터 높이나 되고 굉장히 강해서 벽을 깨려면 망치가 필요할 정도다. 꿀벌은 나무줄기 속 텅 빈 곳이나 사람들이 만든 물건에 집을 짓고 산다. 특히 벌집 안에 꿀을 채우는 과정도 쉽게 서술되어, 아이에게 벌이 왜 꽃에 앉아 있는지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크로스 스파이더가 만든 거미줄은 머리카락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다섯 배나 강하다. 또한 거미줄이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자연스러운 여행이 된다.


앞선 두 권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 해당 주제에 대한 내용 외에도 각 동물의 크기, 서식지, 먹이, 천적, 특징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벌집이나 거미줄만 눈에 드러날 뿐, 이번 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깊은 바다, 나무 위, 땅 속에 집을 짓기 때문에 평소에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의 보금자리 만들기를 상세한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튼튼한 둥지를 자랑하며 다른 종류의 새들이 찾아와도 너그럽게 맞이한다는 집단베짜기새가 인상적이었다. 문득 사람들의 집 짓기란 어떤 의미일까, 특별한 집이란 어떤 곳일까 생각해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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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 놀자 국악 동요 그림책
류형선 지음, 김선배 그림 / 풀빛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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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출판사에서 국악 동요 노랫말로 엮은 그림책 시리즈를 출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 책이 처음이다. 먼저 <밖에 나가 놀자>라는 책 제목과 귀여운 표지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와 함께 기대감을 가지고 펼쳐본다.

새가 밖에 나가 놀자고 지저귀는데, 아직 자고 있는 아이와 짝꿍 고양이. 그들은 놀자는 외침에 잠을 깨고 양치질과 세수를 한다. 아이와 고양이가 내는 소리와 동작이 각각 대비된 그림이 재미있다. 둘은 밖에 나갈 채비를 한다. 둘이 밖에 나가자 다른 동행이 생긴다. 친구들, 선생님, 강아지도 그들과 함께 어울린다.

산등성이 비탈진 곳은 자연 미끄럼틀이 되고, 오르막길도 여럿이 함께라면 덜 힘들다. 오히려 그것도 즐거운 놀이가 된다. 그들 모두를 환히 비추어주는 햇님,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한 바람, 모두의 안락한 의자가 되어주는 나무도 그들과 어울려 논다.

"햇님도 놀고 바람도 놀고 나무도 놀고"

이 대목은 자연환경을 정적인 배경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적인 놀이 대상으로 표현한 부분인 듯하여 흥미로웠다. 한 편의 동요 가사를 각 구절과 어울리는 그림들로 담아낸 책이다. 그림책을 덮을 때면 이미 가사가 마음속에 저장된다. 곡도 마찬가지다.

책 말미에 악보가 실려 있다. 책 속에 QR코드는 없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책 안의 그림들과 달라서 또 다른 새로움도 느껴볼 수 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반복해서 본 후에, 어느새 둘이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덩실덩실 기분 좋게, 박수도 치면서...

계속 귓가에 맴돌다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국악 동요다.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국악 동요의 세계를, 지금이라도 아이와 함께 알게 되어 좋다. 책을 읽은 후 본의 아니게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하게 되었다. 글쓴이의 다른 국악 동요도 들어보느라고. 아무튼 이 그림책 내용처럼 씩씩하게, 여럿이 함께, 자연과 벗 삼아 노는 아이들이 많아지기를, 부디 새해에는 그런 날들이 활짝 열리기를 소망해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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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컵하우스 : 쫑긋 가족을 소개합니다 웅진 꼬마책마을 5
헤일리 스콧 지음, 피파 커닉 그림,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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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그림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아담한 크기의 동화책이다. 저자 소개도 재미있다. 글작가 헤일리 스콧은 어렸을 때 인형의 집을 꾸며 놓고 놀았고 지금도 조그마한 물건들을 좋아한단다. 그림작가 피파 커닉은 책벌레이자 토끼 집사라고 한다. 얼마 전 아이와 애완동물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토끼는 어떨까?" 하는 말이 오간 적이 있어서인지, 티컵하우스에 사는 쫑긋 가족, 토끼들의 등장만으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어서, 만나러 가보자.

외할머니가 곧 새집으로 이사할 스티비에게 준 선물, 찻잔 모양 인형의 집을 소개해본다. 책을 넘겨보다가 짠 하고 나타난 티컵하우스가 눈길을 모은다. 창문 여덟 개와 정문, 뒷문이 있고 나뭇잎과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찻잔 집 밑에는 돌길이 나 있는 정원 모양의 찻잔 받침이 깔려 있다. 파란문 위의 작은 문패에는 '쫑긋 가족'이라고 쓰여 있다.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도 이렇게 예쁜데, 실제로 선물로 받은 스티비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아이에게도 앙증맞는 인형의 집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스티비는 아빠 토끼, 엄마 토끼, 누나 토리, 남동생 토미 인형도 건네받았다. 그런데 새집으로 이사한 후에야, 아빠 토끼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는데...

아기자기하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각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그림체, 정원과 하늘, 구름 등의 자연 묘사가 돋보인다. 아이와 함께 읽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된다. 물론 이야기 전개 과정 중에 조마조마한 장면들도 있다. 아빠 토끼가 큰 버섯을 징검다리 삼아 폴짝 뛰면서 건너다가 휘청했을 때, 거미줄에 얽혀서 꼼짝 못하게 됐을 때, 토리가 사라진 아빠를 찾아 나섰다가 머리 위로 거대한 부츠 바닥이 보였을 때, 커다란 거미와 탁 마주쳤을 때. 결과적으로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게 된다. 이 책에서 아빠 토끼와 토리가 티컵하우스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 발명왕이면서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토리의 활약상을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스티비의 마음 변화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

도심 고층 아파트에 살던 스티비는 엄마와 시골로 이사하게 된 것인데, 자기 방과 학교, 친구들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정든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새집에 도착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러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빠 토끼가 제자리에 놓여 있는 모습을 발견한 후였을까. 스티비의 마음에 안도감이 자리잡은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잡동사니들로 만들어진, 토리의 발명품 '종이두둥실추락방지장치'를 본 후 신비한 마법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뭔가 달라진 마음과 함께 눈 속으로 들어온 풍경은 예쁜 정원과 새집의 모습이다. 토리도 그랬듯이, 스티비도 즐거운 모험을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스티비의 마음 변화를 상징하는 구름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집에서는 하늘을 보면 아기 고양이 모양의 구름이 있었는데, 이사한 집 하늘을 보니까 그저 부푼 덩어리 구름뿐이었다. 스티비의 마음이 편안해진 후 구름 모양이 바뀌는 대목이 나온다. 이번에는 예전에 보던 아기 고양이뿐 아니라, 등에 햇살을 짊어진 유니콘, 용, 풍선 구름도 보인다. 뭔가 더 특별하고 멋진 일들이 펼쳐지리라는 희망을 더해주는 장치 같다. 아름다운 정원도, 신기한 구름도 마음이 침울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찌릿하게 다가왔다. 예전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현재를 소홀히 할 변명거리가 되지 못할 터이다. 아이가 내일의 모험을 기대하며 오늘을 신나게 보낼 수 있기를, 그런 유년생활, 나아가 그런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읽고 나면 구름처럼 기분이 붕 뜨게 되는 동화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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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그림 찾기 : 플러스 집콕놀이
별별공작소 엮음 / 소울키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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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말문이 트이기도 전에 그림 찾기와 미로 찾기 책을 여러 권 마련해서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언젠가 아이가 이런 책에도 관심을 가지겠지 싶은 마음에, 그보다 내가 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아이는 내 예상보다 빨리 그런 책들에 관심을 보였고, 두 그림 혹은 사진의 다른 점 찾기를 재밌어 했다. 미로 찾기는 그려진 길이 아닌 자기가 마음대로 가는 것을 더 좋아하더니, 최근에는 그려진 길을 따라가보는 재미를 붙였다. 숨어 있는 그림도 쏙쏙 찾아내는 중이다. 새로운 미로와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신간을 검색해보았다. 올해 초 이미 <다른 그림 찾기 종합편>을 출간했던 소울키즈에서 얼마 전 <다른 그림 찾기 플러스>를 선보였다. 이 책은 어떤 그림들로 아이의 흥미를 더해줄지 궁금했다.

뒤표지에 "초등학생들의 두뇌 트레이닝을 위해"라는 문구가 나와 있기는 한데, 유아라도 그림 찾기와 미로 찾기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시도해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가 좀 어려워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면 어떠랴. 나중에 또 해보면 되겠지. 함께 보는 어른이 먼저 성급하게 답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정답까지 100쪽 되는 분량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책 속의 그림도 알록달록, 아기자기해서 관심을 돋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미로 찾기와 같은 모양의 그림 찾기다. 미로 찾기는 총 27개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둘 이상, 최대 여섯이 출발하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밑그림에 색칠 완성을 해볼 수도 있다. 잃어버린 물건 찾기, 맛있는 먹이 찾기, 함께 모일 장소 찾기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니, 아이와 함께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길 찾기를 해봐도 재미있겠다. 그리고 같은 모양의 그림 찾기는 총 62개로, 두 그림의 다른 부분을 찾는 '삐에로와 풍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러 그림들 중 같은 그림 한 쌍을 찾거나 모양과 색이 같은 것끼리, 또한 해당 그림과 동일한 그림자로 짝을 지어보는 방식이다. 모양과 색이 복잡한 경우, 아이들의 집중력과 관찰력, 도전 정신을 높여줄 수 있겠다. 다만 같은 모양의 그림 찾기 중간에 들어간 '산타 할아버지의 굴뚝 미로'는 앞부분 미로 찾기에 있어야 할 부분이 잘못 편집된 듯하다.

이 책에서 그동안 아이가 해왔던 그림 찾기, 미로 찾기와 다른 형태를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림 찾기의 경우 두 그림의 다른 부분을 찾는 것, 단순한 그림 형태의 같은 짝을 찾는 방식에 익숙했다면, 이번에는 같은 짝을 찾더라도 그림 형태와 색 배치가 좀 복잡해졌고, 해당 그림과 동일한 그림자 찾기는 처음 해본다. 미로 찾기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여럿이 출발하는 형태, 도착 후 밑그림에 색칠하는 형태를 새롭게 접해보는 셈이다. 유익한 집콕놀이 시리즈를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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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 - 가짜 이야기, 진짜 이야기, 이야기의 순간
조서연 지음 / 아우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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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제 이야기를 이야기하기로 복원시키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한 이야기의 순간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11쪽)

궁금증을 일으키는 제목과 함께,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말에 주목해본다. 대학에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선보인다. 다음으로 그 이야기에 대해 엄마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다. 전체적으로 일곱 편의 이야기와 이야기하기가 나와 있다. 각 이야기하기의 주제가 나와 있는데, 질문식의 주제들이 독자인 내게도 말을 거는 듯하다. 그중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것일까?"

'소설 쓰는 여자'에서, 소소연 씨는 말문을 닫은 백발 노인의 입모양을 보고 글로 옮기는 일을 맡는다. 그 일을 의뢰한 여자는 엄마의 말에 복종하며 살다가 화가의 꿈과 멀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무작정 이탈리아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그러자 엄마가 자신을 보고 입을 봉해버린 것이었다. 소소연 씨는 자신 앞에서는 의심스럽게 입술만 달싹거릴 뿐이던 노인이 도우미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그곳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소소연 씨 개인의 에피소드도 교차된다. 어릴 적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자, "그건 꿈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엄마. 훗날 엄마의 유품인 일기장을 보면서, 딸이 자신이 겪은 일을 꿈이라고 믿도록 주문을 외웠다는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저자와 엄마는 소소연 씨의 심정을 비롯한 소설 전반에 대해, 실제 저자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단절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차단된 말하기란, 어떤 식이든 표출되게 마련이 아닐까. 내밀한 일기로 혹은 공개된 소설로. 소소연 씨의 경우는 말문이 막혀버린 자신의 상황, 심정에 대해 결국 모두 소설로 발설한 셈이다.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것일까?"를 조금 변형해서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었을까?"로 표현해본다. 말하기에 대한 화두라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참 많다. 실제 있었던 일과 허구적 상황을 결합시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듯, 이 책은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머물지 말았어야 할 공간이 있을까?"

'판도라의 상자'에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작중화자가 떠올리는 다섯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은 개인뿐 아니라 타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는 클리셰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작중화자의 남자친구는 자기가 아는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진 일상에 유부남 K가 나타난다. K는 잘 아는 작가 S선생의 남편인 줄 알았지만 실상 K 핸드폰에 저장된 S선생은 또 다른 S선생일 뿐이다. 작중화자는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처참한 표정을 지었던 K와 헤어진 후, 우연히 K와 함께 있는 단짝친구 M을 발견한다. 이어서, 저자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저자의 다음 말에서 나의 공간도 소환된다.

"그들은 '나'를 힘들게 했던 인물들이니 애초에 대면하지 않았어야 해. 그 장소에만 가지 않으면."(79쪽)

애초에 대면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 그 학교, 그 공동체, 그 직장이 아니었다면 하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 그러다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답변을 저자의 엄마에게서 발견한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아닌 것도 경험으로 여기면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로 삼아야 한다."(85쪽)

'지도의 역사'에서는 국제상사를 찾아가는 길치 여자가 나온다. 길, 지도는 짐작하듯이 인생 행로에 비유될 수 있다. 이야기 주제는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이다. 주인공 여자가 머리띠 남자를 찾아나서기로 한 까닭이 소설 속에서 불분명한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감정과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손발이 움직이게 되는 일들이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개념 장착 전에 벌이게 되는 일 혹은 벌어지는 사건이란 당혹스러울 따름이지만.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에서는 아내에 대한 염려로 집안을 온실이 아닌 감옥으로 만든 남편이 있다. 수시로 전화하는 남편으로 인해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내는, 담배를 피우게 되고 귀를 쫑긋 세우며 이웃 집의 소리를 듣는다. 남편의 불안 심리는 친구의 아내가 집 보러 온 사람이라고 해서 문을 열어준 후 목숨을 잃은 데 기인했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소설 배경으로 끌어온 것이다. 이야기 주제는 "관심을 가지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이다. 관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타인의 행위에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허락된다. 저자 엄마의 말처럼 관심과 집착은 한 끗 차이일 테니, 그 경계란 참 어렵다.

이 외에도 흑석동 하숙집 대학생이 작중화자인 '검은 돌의 노래'에서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동생에 대한 질투와 아이 낳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의 심리를 그린 '한나의 실험'에서는 "콤플렉스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질까?"라는 주제로, 뇌종양 판정을 받은 여자가 찾아가는 불빛 혹은 기억의 편린을 담은 '반짝이는 그 무엇'에서는 "마지막에는 어떤 기억만 남게 될까?"라는 주제로 대화가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참 독특한 책이다. 공모전에 내고 상을 받았다는 한 작품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 발표되지 않은 소설들, 독자에게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주제 아래 펼쳐지는 저자와 엄마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주제에 따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엄마와 함께 소설의 제목, 인물, 구조, 가족간의 추억 등을 이야기한다. 그 무엇보다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소설 이야기하기가 아니라도, 나만의 다른 형태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소설의 존재 이유가 뭘까 하는 질문도 해본다. 그것은 삶에 지치면서도 이야기를 찾아 책을 읽는 이유와 연관될 것이다. 그 이야기가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물, 책이라는 인쇄매체 혹은 파일 형태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하기로 뻗어갈 때, 비로소 이야기란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 아니 삶을 지탱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책 읽기, 나아가 책 쓰기란 결국 삶을 이야기하기 위한 절실하고 치열한 몸짓일 터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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