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
임유정 지음 / 원앤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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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용서적을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정도로 모든 장르의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실전 연습 어쩌구가 달린 책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 책이 급 땡겼던 이유는 아마도 나에게도 이런 실용서적의 활용가치가 높아지는 때, 즉 사회에 나갈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든 내가 내년 4월까지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내 직업과 향후 진로는 너무나 또렷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상대할 수 밖에 없는 일, 특히 아프고 지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여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짧은 임상의 시간동안 그래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관계를 사람들과 맺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상대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은 말 한마디에 상대방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법과 필살기를 꼭! 하나 갖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역시 나도 그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특히 목소리와 발음에 조금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제목부터 상당히 꽂혔던 책이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이었다.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왜 목소리에 주목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역설한다. 또한 어째서 목소리를 타고났다고 한계지어서는 안되는지, 목소리도 바꿀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보여준다. 두번째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인지, 어떤 억양이 상대방을 집중하게 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그것을 갈고 닦아야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통해 조금씩 따라해볼 수 있게 부추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정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를 알려주기 위한 실제 노하우, 실제의 연습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사실 책의 구성에는 여러 실용서적이 그러하듯 별다른 변화는 없다. 우리가 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목소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그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실제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3단구성은 수많은 실용서적에서 익히 보아온 구성이다.

 

결국 이러한 실용서적의 승패는 책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이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할 수 있는가(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을 위해서 결국 또 성공적으로 독자에게 역설해야 한다!)와 이 역설한 내용, 독자가 감화된 내용을 실제로 체득할 수 있는 실전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가로 판가름날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은 이 두 가지를 참으로 잘 배합했다고 할 수 있다. 암만 노하우의 전수부부분이 탁월해도 독자들이 왜 그것을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결국 뒤의 노하우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아무리 이것을 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하는지 깨달았어도 결국 그것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그 책에서 알려주지 못한다면 역시 책은 용두사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항목 모두 이 책은 꽤 좋은 점수를 얻고 있다.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 목소리를 바꾸기 위한 기본 원리부터 실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방법까지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실행력이다. 아무래도 목소리 연습이라는 게 남들과 함께 있을때는 창피하기도 하여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우리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중 가장 적합한 곳은 역시 화장실일 것이다. 화장실에 있는 동안, 목소리도 울리니 얼마나 좋은가. 화장실에 한 권, 가방에 한 권. 항상 가방속에서 목소리의 중요함과 실제 대화속에서 이것을 써먹어봐야지 상기하며 한 권. 그 기억과 실제의 대화를 위한 연습을 위해서 화장실에 한권. 이 책은 그래서, 두 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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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작가들을 나름의 기준에서 분류를 하다보면 글을 잘써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기도 하고, 나의 감성을 마구 건드려주어서 좋아하는 작가기 있기도 하며, 그 작가의 사상과 삶, 생각이 너무도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기도 하다. 나에게 조지오웰은 세번째 경우, 즉 그의 생각과 사상, 삶이 너무도 멋져서 좋아하는 작가였다. 그리고 은연중 그러한 마음 속에는 조지 오웰과 감수성은 조금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오해를 나 혼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바로 <숨쉬러 나가다>를 읽으면 그 미안한 오해를 멋지게 깨버릴 수 있다.

 

<숨쉬러 나가다>는 2차대전이 벌어지기 얼마전 영국에 사는 한 평범한 가장의 소소한 일상 탈출기를 담고 있다. 친구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한 내기에서 이겨 17파운드를 번 조지 볼링은 그 돈으로 무얼할까 고민하던 중, 바람도 쐴겸, 예전의 공기를 마쉬기 위해 자신이 자란 고향을 방문한다. 그러나 지금만큼이나 엄청난 속도로 변화를 하는, 오히려 사상과 생각,가치관과 패러다임의 차이로 치자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급변기를 맞고 있는 20세기 초의 유럽사회에서, 20년의 세월은 그가 숨쉴 공기마저도 빼앗아가버렸다.

 

숨쉬러 나갈 공간이 없다.

조지오웰은 쉼쉬러 나갈, 잠깐 바람좀 쐬고 올 공간과 시간, 정치적인 것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의 네가지를 모두 한 작품 안에 아울렀다. 이미 조지 볼링의 고향은 그가 생각한 한적한 농촌 마을이 아니었다. 마을에는 큰 공장지대가 있고 그에 따라 그가 살았던 마을에는 무려 2만명이 산다! 더이상 볼링가문의 조지라는 이름으로는 누구를 찾을 수 없는. 그런 도시가 되어버렸다. 도시와 시골을 비교함에 있어서 가장 큰 대비는 바로 밀도의 차이일 것이다. 오밀조밀 모여사는 도시와 띄엄띄엄 살아도 되는 시골의 차이. 그 차이의 간극을 가장 확실히 메워버린 것은 바로 조지 볼링만의 연못이다. 이미 연못은 마을 주민의 60%가 채식을 하는 주민들의 쓰레기장이 되어버렸다. 더이상 주인공이 숨을 쉬러 갈 공간은 연못의 물이 마르듯 말라 버렸다.

 

숨쉬러 나갈 시간도 없다.

곡물 종자상의 아들 조지. 그가 자동차를 끌고 다니고 욕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모습을 그의 아버지가 봤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무척 대견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런 조지 볼링이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도시의 여느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쉴새없이 일해야 한다. 그에게는 더이상 엘시의 남편과 같은 티타임이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그 역시 회사에서 잠깐 짬을 낼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그의 공식 일정에 티타임이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더이상 자영업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내가 주인이 아닌 사회에서는 점점 숨쉬러 나갈 시간이 없다. 나갈 시간은 있을지언정, 내 마음대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가지 더. 조지 볼링의 아버지가 일을 할 때에는 그의 일과 그의 수입에 대해서 그의 어머니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신경자체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한세대를 건너자 조지 볼링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 즉 숨쉬러 나갈 시간은 이제 없다. 매순간 볼링은 부인의 잔소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물론 여기서 남여차별을 주장하고, 어디 남자가 하는 일에 여자가 참견이야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볼링의 아버지 세대에는 아버지의 일과 어머니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가지는 모두 노터치였으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한세대를 지나자 서로의 일에 서로를 간섭하게 되었다. 이 간섭자체를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간섭과 참여가 어쩌면 더욱 신경쓸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서로에 대한 걱정의 증폭속에서 스스로에게 숨쉴 여유와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비단 조지 볼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아내 힐다 역시 점점 스스로에게 숨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 모든 시간에 돈걱정, 아이걱정, 남편 걱정을 해야만 하는 그녀 역시, 어느 순간 그의 남편처럼 잠깐 틀니를 새로 하다가 숨을 쉬고 싶어졌을 때, 그녀 역시 숨쉴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한세대를 건너자 우리는 조지 볼링도, 힐다도, 숨쉴 시간을 빼앗겨 버렸다는 것. 숨쉴 시간이 사라졌다.

 

숨쉴 시간이 없어진 것은 '나' 때문인가 '너희' 때문인가

이 책의 소개에서부터 시작해서 흔히 이 책을 조지 오웰이 1984와 동물농장을 쓰기 전, 그의 작가의식이 이미 그것에 거의 근접한 나머지 숨쉴 공간과 시간이 없어진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에 대한 표현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 영국의 하늘에는 폭격기가 날아다니고-심지어 오폭사고까지!- 조만간 파시즘과의 전쟁이 일어날 것은 기정사실화 되며, 많은 반파시스트들이 이에 대한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는 그 시절. 시골마을에까지 대기업의 체인 슈퍼마켓이 들어오고 어느 가게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은 익명성으로 전환되어버린 시절. 모두가 바삐 돌아다니고 서로에 대한 관심은 이제 남들과 내가 같은가 다른가에만 맞춰진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중심축인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처음 조지오웰을 다시 봤다고 얘기했듯이 이 소설을 그런 정치적인 소설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1984나 동물농장의 경우는 누가 머라고 부인할수 없는 정치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나는 조지 오웰이 그 위대한 소설들을 쓴 사상에는 무한한 경의를 보내지만 그 소설을 보고 잘썼다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 사상의 거대함에 짓눌려 그러한 생각은 아예 해볼 엄두조차 못냈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 <숨쉬러 나가다>에는 평상시의 조지 오웰을, 인간적인 조지 오웰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간적일 것 같은 조지 오웰 속에서 나는 이사람이 이토록 감수성이 충만하며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로이 체감할 수 있었다.

조지 볼링이 숨을 쉬기 위해 그의 머리속에 떠올린 생각. 그날 유난히 기분이 좋은 이유는 아주 사소한, 그러나 매우 중요한 새로운 틀니를 했다는 것. 그를 시골 마을로 데려간 것은 흘러가는 신문의 조그왕이라는 한단어 뿐이라는 것. 그 한단어를 통해 주인공을 40년전 꼬꼬마 시절로 한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조지볼링, 그리고 조지 오웰의 감수성. 그 곳에서 나는 숨쉴수 있는 시공간의 지나감은 비단 2차세계대전 직전의 세기말적 분위기 뿐 아니라, 단순히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낙화를 바라보는, 그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부여잡기 위한 한 인간을 바라본다. 인간은 점점 절대적으로 숨쉬러 나갈 시간을 빼앗겨버린다는 거대한 진리. 

숨쉴 공간을 없애버린 것은 너희이지만, 숨 쉴 시간을 빼앗아가 버린 것은 너희 와 나 라는 사실.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수십년 전의 나를 찾아가는, 그러나 그 잡을 수 없는 세월의 거대한 벽 앞에서 소소한,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하고 다시 현실로, 힐다의 앞으로 순간이동 해버린 조지 볼링. 당신. 나.

 

멀게만 느껴졌던 조지오웰이 이상하게 친숙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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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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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성을 볼 때도 첫인상이 상당히 중요하듯, 책을 만나면서도 첫인상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 첫인상이란 주로 책의 표지와 책의 첫 부분일 것이다. 이 책은 두가지 모두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특히 외모라고 할 수 있는 책의 표지에서는 더더욱. 그린 사람의 잘못인지, 고른 사람의 잘못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지 앞에서 아무리 외국에서는 유명하고,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명예가 따라다녀도, 사람인 이상. 먼저 손이 안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나는 순간 생각했다. 이여자는 오늘 잠깐 만나는 것으로 인연이 다하겠군.

 

그래도. 외모에서 풍기는 첫 인상보다는 그녀의 첫마디 말이 주의를 끌었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달호랑이라는 다소 시적인 제목과 함께. 그래도 그녀의 말 한마디로 나는. 그래 모든 걸 외모로만 평가할 수는 없지. 조금 더 만나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여자 정말로 비호감이다. 이렇게 자의식이 충만한 여자는 처음 만나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서는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물론. 나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비호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닮아서. 어쩌면 나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심한 자의식과 안하무인으로.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성격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매력에 꼼짝 못했다는 사실이다. 모르지. 이것 역시 그녀만의 자의식 속 세계일지도. 왜냐?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를 먼저 만나보았던 주변의 평가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력적이라는 여자가 왜? 어째서? 한국사람들에게는 그닥 어필을 못하는지. 그래. 어쩌면 외국에서는 이런 스탈이 먹힐수도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대체 외국에서는 어떤 매력으로 세계3대 문학상중 하나라는 상을 거머쥐고, 숱한 화제속에 고전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는지. 그래도 먼가 있지 않을까? 라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권위에의 오류에 나도 역시 편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역시나. 정말로 자기 얘기만 한다. 자신의 70여년 인생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의 자랑 반.(자랑이긴 하지만 잘난척은 아니다. 잘난건 사실인 것 같으니까), 이야기 반, 그리고 그 안에 얼핏얼핏 끼어있는 세계의 역사 한모금에 대해서. 나는 도무지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퍼붓는다. 모..이해는 한다. 이제 곧 그녀의 이야기가 다할 것이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솔직히..힘들다. 그래도 무언가, 힘들지만 왠지 힘든 것을 참고나면 무엇인가 있을것만 같은 아주 약간의 희망때문에.. 그녀 본인이 그러지 않았는다. 희망은 인내가 된다고. 나 역시 그 실낱같은 희망으로 인내를 불러들였다.

 

결국. 희망이 인내가 되었고 그 인내가 성과가 되었다. 왜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지, 왜 부커상을 수상했고 비록 우리나라에는 처음 선보이지만 외국에서는 왜 유명했던건지. 그녀가 스스로를 어째서 그토록 자신있어했던건지. 결국 그 이유는 얻어내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 조금 힘겹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힘든 과정 덕분에 결국 그녀의 매력을 끝에 가서 알아낼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과정이 없었어도, 혹은 조금 간결했어도 결국 마지막에 쏟아진 그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것인지. 과정이 하나씩 합쳐지면서 생기고 응축된 감정의 폭발이 결말인 것인지. 그 모든 소소하고 약간 지루했던 과정을 뒤엎어버릴만큼 매혹적인 결말의 찬연함인것인지.

 

어쨌든. 과정에서의 응축으 폭발력인지, 결말 자체의 찬연함인지. 결과적으로. 클라우디아는, 페넬로피 라이블리는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을 가치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가치를 찾기까지. 그녀를 만나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 약간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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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6-2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신간평가단 담당자입니다.
이 글이 먼댓글 연결이 안되어 있어서 체크를 못했네요.

먼댓글 연결 부탁드릴게요! :)

저기요 2011-07-05 16:59   좋아요 0 | URL
앗 먼댓글 했다고 생각했는데 안되어 있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우리는 많은 영미문학의 작가들을 알고 있지만 정작 미국문학의 작가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미국의 4대작가라는 코맥 맥카시, 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의 책을 읽어보기 위한 대장정을 펼쳤으나 아직도 진행중..막상 그 작가들의 책도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동세대 미국 작가들 중 최고라는 그의 작품은 절로 우리를 주목하고 흥분하게 만든다. 

 

 

 

 

 사실 작가의 이름을 난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나 내가 처음 들어본 이름과 달리 작가의 수상경력은 화려하였다. 여기서 또 한번 발현되는 나의 무지와 무관심. 지금이라도 김인숙 작가를 알기 위한 좋은 기회. 이 좋은 기회에 발을 담그고 싶다. 

 

 

 

 

 

 

  최인호 작가. 음..낯선듯, 낯익은듯 한 작가의 이름. 그의 작품을 몇 개 읽어 보았지만 아직도 최인호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나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이 책이 이 작가를 타인에서 낯익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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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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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 마조히즘. 두개를 합쳐서 사도마조히즘. 변태성욕이라 불리는 것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이다. 마조히즘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켜 수천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성욕에 이름조차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이름이 영원하게 남게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작품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그래서 특별하다. 아니다. 어찌보면 정말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자허마조흐가 이 작품을 통해 '그들'과 '그것'에 이름을 붙이게끔 한 순간 특별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해진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가미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끔 진행된다. 어느날 자신의 이상형을 발견하게 된 제베린. 그는 그녀를 통해 삶의 영감을 얻게된다. 그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반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들은 1년의 시간을 두고 교제를 시작하고 제베린은 그녀에게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이야기하며 이 판타지를 그녀를 통해 실현하려 한다. 그 판타지란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의 노예가 되는 것. 거절하던 반다는 결국 그를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이를 점점 열정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절정을 맞이한다.

 

특별함.또는 비범함.또는 특이함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제베린은 학대받을 때 오히려 쾌감을 느낀다. 유년시절의 채찍질 이후 그 쾌감에 눈떠버린 제베린은 자신의 연인이 그 쾌감을 자신에게 선사해주길 원한다. 그리고 역시 반대로 학대할때의 쾌감에 눈을 뜨는 반다. 둘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어떠한 사회적인 반향이 일었을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선하다. 십여년 전 한국에서 영화 '거짓말'이 개봉되었을 당시에도 사도마조히즘과 관련한 부분이 크게 논란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백년도 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이 책뿐 아니라 안의 내용도 아직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아직 우리와 다른 것에 인색하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을 하는데 남들은 저렇게 사랑을 나눈단다. 그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된다. 마치 아무도 그러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분명 수 백, 수 천년간 존재해왔을진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정상이 아닌 양 취급한다

 

특이함을 감싸는 평범함

잠깐 다른 얘기. 환자들을 보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것 해도 되요? 저것 먹어도 되요? 라는 것들이다. 무엇이든 절대 해서도 안되고 절대 해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존재하지만 대체로 환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한정해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것이다. 어떤 쪽으로든 극단을 달리지 않는 것. 건강을 위해서라면 절대 이것이것은 하지 않아야한다는 그 강박관념만이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것과 절대 해야 할것은 없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관계 속에는 항상 적당한 정도의, 표면화되지 않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존재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주고 좋아하는 것도 결국 마조히즘의 순하고 좋은 예이며, 연인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겠는 그 감정, 심지어 살짝 깨물어보는 그 표현 역시 사디즘의 다름아니다. 우리는 항상 모루, 아니면 망치의 다름아니다. 다만 그 표현방식과 방법이 극단으로 흐르는가, 흐르지 않는가가. 누가 항상 망치의 역할만 모루의 역할만 하는지 그 관계가 시소처럼 왔다갔다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관계.특별한, 평범한.

이 책은 결국 조금 특이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루가 되었다가 망치가 되었다가 하는 시소와 같은 관계, 탁구와 같은 관계가 아니라 한쪽으로 조금씩 쏠려 어느덧 균형을 잃고 그 극단을 달리는 관계의 이야기이다. 너무 극으로 흐른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금기시 해왔던 그 관계. 물론 억눌린 금기속에서도 항상이 극단의 관계는 존재해왔으며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그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극단적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우리도 그 관계의 어느 한 중간지점에, 혹은 우리 역시 그 극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이라면, 연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관계의 균형점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곳으로 흘러가는지. 나는 모루쪽으로 가고 있는지, 망치쪽으로 가고 있는지. 그 균형을 유지하는지 점점 제베린과 반다처럼 그 끝으로 달려가는지. 모든 연인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리고 특이하다. 또한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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