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신문 기자가 젊은 여성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소설은 그 여인이 어떻게 신문 기자를 죽이게까지 되었느냐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불과 4일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 나름 인정을 받아가며 성실히 살아가던 말없는 아가씨가 어떻게 살인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카타리나 블룸은 27살의 감수성 풍부하고 매사 꼼꼼한 성격의 숙녀이다. 그리고 그녀는 우연히 파티에서 본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그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그를 떠나보낸 후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지명수배범의 도주를 도왔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그렇다. 바로 그 남자는 경찰에 쫓기던 범죄자였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언론에 노출되었고 <차이퉁>이라는 이름의 신문은 그녀의 전 남편, 다니던 학교의 교장, 다니던 교회의 신부, 그녀가 일하는 집의 주인까지 인터뷰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하여 그녀를 더욱 궁지에 몰아 넣는다.
그녀는 <차이퉁>지에 의해 어느덧 ‘살인범의 도주를 도와준 정부’에서 ‘테러리스트의 공범’이 되고 심지어는 매일 신사들이 방문을 하는 ‘음탕한 공산주의자’ 가 되고 만다. <차이퉁>지는 드디어 이제 막 암수술을 끝낸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어머니를 몰래 찾아가 인터뷰를 하게 되고 그 어머니는- 평소의 병마 때문이었는지, 충격적인 사실과 인터뷰 때문이었는지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다음날 죽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과연 어찌 했을까?
고난에 처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도와줬던 그녀의 고용인인 블로르나 변호사는 어느덧 그녀와 엮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변호사에서 사회를 전복하려는 빨갱이 공산주의자가 되고 점점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들은 정말 그저 난데없이 들어온 한 범죄자들에 대한 필연의 결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차이퉁>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저 우연히 범죄자와 하룻밤을 보낸 그저 운이 없는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의 입에 한번 정도 오르내린 후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니다. 그녀는 그 범죄자가 범죄자임을 알고 있긴 했다. 도주를 도운 혐의로 몇 개월의 징역은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그녀와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전하는 모든 상황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왜곡을 취미로 사실 은폐를 특기로 하는 이 나라의 주류언론, 그것들에 의해 황폐해진 많은 사람들, 그 주류 언론과 결탁한 사회 기득권층, 그저 빨갱이로 몰아붙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상황. 이것은 독일의 이야기이지만, 독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중에 하나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를 앉힌 것이다. 그리고 전문보도방송채널인 YTN의 사장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KBS의 정연주 사장을 조,중,동의 시끌벅적한 대서특필을 앞세워 배임혐의로 구속시킨 후 사장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꾼다. 그 이후 KBS는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어르신들이 가장 믿고 보는 9시뉴스의 편성권을 좌지우지하며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물론 당연히 정연주 사장의 배임혐의는 무죄판결이 났으며 그에 관련해 언론에는 그저 짧은 몇 줄의 기사만이 나갔을 뿐이다.
그는 왜 이렇게 방송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이번에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현대판 사사오입의 재림을 보여주는 만행을 저질러가며, 이미 헌법과 법률은 안중에도 없이 다수의 폭력으로 모든 일은 성사되었다. 이번 미디어법 통과로 인해 조,중,동의 방송진출이 더욱 수월해졌으며-기존에도 진출할 수는 있었다. 다만 이미 포화상태인 곳에서 새로운 곳을 차리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기존의 것을 사들이기는 매우 쉽다- 세계 유이(유일의 오타가 아니다)의 언론과 정치의 야만적인 동맹관계를 그대로 과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이미 쓰레기언론의 세뇌에 의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우리 사회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것은 경제살리기에 반대하는 것이며, 이것만이 그저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좌빨들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미 조,중,동과 KBS만으로도 이러할진대-SBS는 언론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곧 KBS도 이런 대접을 받겠지만-MBC까지 저들의 손아귀에 넘어간다면.
책에 나오는 구절로 마무리할까한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차이퉁> 읽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는 블룸을 돕기 위해 잠시 동료 휘프텐에게 감시를 맡기고, 블룸이 연루되어 심문받은 내용, 그녀가 수행했을 만한 역할에 관해 철저히 객관적인 형식으로 보도한 다른 신문들을 문서실에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3,4면에 실린 짧은 기사에서는 블룸의 성과 이름을 전부 밝히지 않고 가정부 카타리나 B양으로만 언급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움샤우>지에는 열 줄 정도의 기사가 났고 물론 사진도 실리지 않았으며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불운하게 사건에 연루되었노라 보도했다고 한다.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그리고.
<차이퉁>보다 몇 배는 더한 악질들과 외로이 싸웠고 끝내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