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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의 대가라 불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영화 세런디피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설이다. 영화 세런디피티에서 남, 여 주인공은 자신들의 운명적 사랑을 시험해보기 위해 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책을 이용한다. 남, 여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운명을 시험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친구이자 그의 과거를 친구에게조차 속여야 했던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자살과 함께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자신이 얼마나 참을성 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소설이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 곳에 달려간다. 그리고 그의 숨겨진 연인도 만나게 되고 친구의 자살이 스스로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우르비노 박사는 자신의 제자의 의사 입문 25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저택에 돌아와 말썽쟁이 앵무새를 스스로 잡으려하다가 갑작스레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많은 이야기-이렇게 정리하면 참 간단하지만, 책으로 읽기에는 참 길다-가 진행되는 동안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르비노 박사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부인인 페르미나 다사가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준 손님과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이야기는 드디어 시작된다.
“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청년시절 아주 우연히 페르미나를 보게 된 후 즉시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실천에 옮기지만 함께 사랑의 열병을 앓던 페르미나가 그것이 사랑이 아닌 자신의 환상속의 가두어진 마음의 열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둘의 사랑(이라 믿어왔던 것)은 깨어지고 만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생을 그녀에게 바칠 것을 맹세하고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살아가게 된다.
그 후 페르미나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만나 사랑없는 결혼을 하게 되고 50여년의 세월을 그와 함께 하게 된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와의 실연 이후 그녀의 대체물을 찾아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 페르미나가 어떻게 사는지 항상 관찰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다시 혼자가 된 페르미나와 플로렌티노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해마다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연인들에게 선물하는 사랑의 책이라는 소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반세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에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의 소설답게 20세기 초의 중,남미의 시대상황을 세세히 묘사하며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묘사와 풍자를 가득 담고 있다. 식민지의 지배가 끝난 이후 노예 해방과 함께한 도시의 몰락,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회 지도층의 고향을 바라보는 인식 속에서 당시 시대상의 부조리함을 가득 꼬집고 있다.
또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방탕한 생활들과 함께 인간의 성에 대한 욕망과 그에 대한 억압들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순결한 사랑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들에 대한 고민을 한층 깊이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시작을 함께하는 제레미아의 자살로 시작함으로써 한 인간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반문하면서 그와 동시에 늙음과 늙었음에도 이루어질수 있는 사랑, 늙었기 때문에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책을 관통하며 많은 질문을 던진다.
몇 년 전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70대 노부부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 다룬 이 영화는 늙은 사람들도 사람이며 그들에게도 사랑이 있으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주장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면 사랑에 초탈해지며 아무런 욕망도 없으며 그저 성인군자가 되어 한없이 너그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혹여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사랑에 빠지면 주책이라고 하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재혼이라든지 사랑에 남세스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흘러 흘러 늙어갔을 때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똑같이 노망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어 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유치원아이들의 사랑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것이고, 사춘기의 사랑은 풋내기 사랑이며, 20대의 사랑은 불같은 사랑이며, 40대의 사랑은 어느덧 불륜이 되고 60대의 사랑은 노망이 된.
운명은. 유치원생에게도, 20대에도, 할아버지가 된 뒤에도 똑같이 찾아온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53년 7개월 11일동안 하고 싶었던 말처럼.
“우리 목숨이 다 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