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글 읽기와 삶 읽기 - 겉도는 삶, 헛도는 교육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박진환 지음 / 우리교육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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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선생님을 따라 초보교사에서 어느덧 경력있는 선생님으로 자라나 본다.  

 이오덕 선생님 책이 어둠 속 빛처럼 찾아와, 그분을 따르고자 애썼다니 똑같은 만남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 나도 그저 반갑다.  

 깨달은 바를 겸손하게 실천하는 선생님 모습과 그 선생님 아래에서 삶을 배우는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 모습이 참 귀하게 보인다.  

 여러 가지 나와 비슷한 것도 재미있고, 내가 따르지 못한 것도 배울 수 있고, 마음 든든해 좋다. 송언 선생님이 백오십 살 먹은 도사라고 뻥친다니, 참 나는 해도 너무한 선생님이긴 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나는 팔백 살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마법 나이 팔백 살. 그냥 나이 스물 다섯. 육학년한테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웃긴다면서도 속아준다. 그러다가 역사 이야기를 가르치면 선생님은 그때 뭐하셨냐고 한다. 물으면서 한 일 없어도 변명하는 나를 보면서 즐거워 한다.  

 이런 분이 '동지' 아닐까 한다. 김수업 선생님께 전자우편으로 편지를 드렸더니 선생님이 우리말교육대학원에 나중에라도(선생님 표현으로는 '내가 죽고 없더라도') 와서 동지를 만나라고 하셔서 눈물이 난 적이 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책을 읽고 있던 터라, 그 말이 무척 다가왔다. 혼자 공부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나도 이제 동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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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몹 2009-12-0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해보이기만한 제 책에 고마운 평을 해주셔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김수업선생님과 편지를 주고 받으셨다니 더욱 기쁩니다. 아마도 제가 내년에는 김수업선생님을 곁에서 도와드리며 함께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곧 동지를 만나게 될 것 같아 저 또한 기쁩니다. 선생님을 동지로 만나고 싶네요^^ 언제든 연락 주셔요. 박진환(k950108@hanmail.net)

우리말사랑 2009-12-0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이한테 댓글을 받아 영광입니다~. 왠지 자꾸 제 인생이 저절로 그렇게 달려가 줄 듯하네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몽양 여운형 - 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 산하어린이 155
전상봉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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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반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바꾸고 달라지는 일'이다. 한 해 동안 참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달라져서 얻는 기쁨을 누렸으며, 함께 있는 우리한테 달라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 사람은 아침마다 학교로 가는 길을 바꾸는 일도 어렵다고 했다. 그 때, 고등학교를 가면서 다른 길로 가려다가도 가던 길로 가게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은 생활방식 하나 바꾸는 일도 마음 먹고, 몸소 해 보고 되풀이 애써서야 되는 일인데, 전통으로 여기던 일, 남들이 다 하는 일,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도 여운형 선생님은 수많은 일을 바꾸고 늘 새롭게 받아들이셨다. 남이 한 일이라고 들을 때는 어렵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상투를 자르고 신주를 묻고 노비 문서를 태워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를 버리는 일은 참으로 놀랄 만한 행동이다. 옛날 의원 문 앞에는 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무언가 섭생을 잘못하고 행동과 마음을 어긋나게 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을 잘라내라는 뜻이었다 한다. 때는 1908년, 나라가 통째로 남에 나라에 넘어가고 있으니, 죽어가는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급박한 지경이었다. 여운형 선생님은 그것을 읽어내셨다. 그렇다해도 스물 한 살 젊은이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둘레에서 무어라 하든 뜻대로 밀고 나간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 뒤에도 선생님 행적을 보면, 선생님은 경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를 다니다가도 졸업장에 연연해하지 않았고,임시정부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만든 정당, 신한청년당을 스스로 해산해 이광수는 '이런 희생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고 했다 한다. 더구나 신채호같은 분들이, 미국에게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통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 이승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는데도 이승만이 뽑혔을 때 ,여운형선생님 뜻도 달랐어도 이 결정을 따른 것이다.  

 누구한테나 인기있는 선생님을 써먹으려는 심보로 일본이 초청하자 그에 따랐다. 육군 장관 다나카와 만나는 것을 함께 해 보았던 최근우는 뒷날 이렇게 썼다고 한다.  

 

   다나카와 여운형을 속으로 비교하여 보니 다나카는 연장자에다 주권국 대신이요, 크나큰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여운형은 나이 젊은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좌석을 여운형이 혼자 압도적으로 좌지우지하여 정의로 싸우는데, 그런 통쾌함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정의가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지요. 

 

 정의는 힘이 세었다. 선생님 힘도 거기서 나왔으리라.  

 1933년 쯤 일제가 사백 석 논과 밭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것을 거절하고 조선중앙일보 사장이 된다. 일본이 식민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몇 백 년 가리라고 절망하면서 뜻을 꺾을 때에, 선생님은 "이럴 때일수록 일제의 빈틈을 노려야지. 일제가 만주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세계정세는 달라질 걸세. 달라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백성들의 독립 의지를 드높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네."하고 말씀하시고 이순신 장군 묘소도 다시 손질하고 나중에 손기정 선수 가슴에 일장기를 없앤 일로 폐간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미국과 영국은 물건을 만들 자원과 물건을 소비할 인구가 많은 중국을 일본 한 나라에 몽땅 넘겨주지 않을 것이며 이제 해방이 가까와졌으니 그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읽고 나면 세계정세를 읽는 그 밝은 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이화 선생님은 인물로 읽는 한국사 8번에서 '해방공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지도자'라는 글 안에 '그는 중단 없는 운동가였고 목숨을 바쳐 민족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남보다 한발 앞서서 이꿀어 나간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갖추었어도 훌륭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에는 선생님 흑백사진이 많이 있어 좋았다. 이 시대를 살았던,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도 흑백사진을 많이 갖고 계셨다. 그 사진을 보면서 집안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에 얽혀지는 것을 느꼈더랬기에 이런 흑백사진들은 나한테 남다른 느낌을 준다.  

 선생님 딸들이, 통일의지를 꺾지 않으시다가 일제한테도 내어주지 않은 선생님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선생님 같은 분 피와 땀과 젊음, 인생을 딛고 편히 살고 있는 후손으로서 죄송하다.  

 선생님을 쓰러뜨리고 김구 선생님도 쓰러뜨리고, 분단을 계획하던 자들은 분단을 '이루었다.' 그리고 민족을, 씻을 수 없는 전쟁, 그 깊은 수렁으로 내몬 뒤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친일 역사를 대한민국정부 수립으로 감추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선생님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선생님께 편히 계시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책에 연도를 쓰면서 선생님 나이를 쓰지 않아 내가 따로 셈을 해야 했으니, 군데군데 그것을 넣었더라면 좋았겠다. 그래서 어느 나이 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 읽고도 뚜렷하지 않았다.  

 선생님을 기리는 책이 이제라도 아이들 손에 들어가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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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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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먼저 이 책 겉장그림이나, 색깔, 차례에 찍은 숫자 도장, 책 판형 이런 모든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손에 쏙 들어오고,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  

 프랑스는 언젠가 큰 더위가 찾아왔을 때 수많은 노인들이 더위 속에 죽었지만, 자식들이 찾지 않거나 모른 채 방치되어 문제라는 기사를 읽은 생각이 난다. 이 책에서 할머니는 500m 떨어진 곳에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8년 전부터 함께 살았다고 했다. 우리네 할머니같다. 다행이다.  

 이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설명하는 네 번째 장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 . 이런 추억이라면 그 누구가 가진 것이라도, 모았을 때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하는 울림을 마음에 줄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연구회에서 부모님 전기문인가를 모았던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데에 몇 군데 거슬리는 데가 있다. 죽음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소년이, 그것이 말벌이고, 말벌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여동생을 지키려는 태도가 굳세긴 하지만, 쫓아내지 않고 철저하게 죽이는 장면이 조금 그랬다. 그리고 우리말로 깨끗하게 잘 옮겨 부드럽게 읽을 수 있는데도, 자연스럽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내가 안타깝게 읽은 것은, 할머니 인생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루지 못한 꿈은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인생 이야기에 넣어서 손자들한테 얘기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소년처럼 상처를 받으며 진실을 눈치채거나 애처로움을 느끼면서 할머니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길을 건너가는 개 한 마리나 요구르트를 먹는 어떤 사람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할머니,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던 할머니라면 진짜 자기 인생,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루하게 평생을 고무공장을 다닌 것으로 보이더라도, 공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자녀를 기르는 그 진짜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 성격과 좀 다르다. 옮긴이 말은 좋은 설명이었지만, 마치 그것이 인생 한 단계인 것처럼 보여 아쉬웠다.

  이 책은 시 한 편과 같은 구석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 시신이 놓여있는 침대 방에서 아빠와 같이 레코드를 돌아가게 하는 부분, 그 글이 아주 아름다웠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검은색이 밤을 떠오르게 했다. 전축의 바늘은 숨을 거둔 누군가의 얼굴 위에 새겨진, 깊은 주름 사이를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밭고랑을 만들며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가로지르는 목소리처럼 노래는 계속됐다.  

 

 할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 기운을 내고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글에는 있다. 많다. 그 '의'는 어디서 왔나. '의'는 일본말 '노'라고 한다. 일본말에 아주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들 어릴 적 우스갯말에 일본 시계는 '똑이노 딱이노'한다고 했다. 이어령선생님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것을 아주 재미있고 정확하게 풀어놓았다. 이오덕선생님은 이 '의'를 빼자고 하셨다. '나의 살던 고향'을 쓰신 이원수 선생님도 이것을 뒤에 안타까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 전기는 제목을 '내가 살던 고향'으로 바꾸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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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돌 구름송이 생각 그림책 3
지미 지음, 심봉희 옮김 / 대교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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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버지와 어머니께 바친다는 헌사와 함께 이 그림책은 시작한다.  

이 긴 그림책 그림을 다 그리느라 무척 오랜 시간을 들였을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부터 놀란다.  

끝까지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화면마다 가득 채운 멋진 그림, 수수께끼 같이 이어지는 떠돌이 이야기. 이런 것에 먼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을 우리 아이들과 같이 읽고 4학년 아이한테 물어 보았다. 이 책이 좋았니? 무엇을 좋게 느꼈니? 

 아이는 아무리 버려도 원망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역시 여러 사람 생각을 듣는 일은 이래서 좋다.   

 나로서는 좀더 생각할 일이 많긴 하다. 내가 읽어 보고, 아이들 읽어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훌륭한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이것저것 짚어볼 게 있다.  

 먼저, 이 책을 지은이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읽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책 하나에 수많은 어느 이야기들 한 장면이 조금씩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보았을 서커스 장면, 바닷가 부두, 감옥. 그런 것은 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이 그림책은 국적을 잃어버렸다.  

나는 모든 책을 보면서 지은 사람 배경, 어느 나라 사람인지, 식구들은 어떤지, 그 책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정보는 알고 보기 시작한다. 이 지미라는 작가는 대만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서 대만이라는, 우리와 좀 다른 세계를 느끼고 싶다. 하지만 서커스 장면이나, 부서진 코끼리 조각을 사는 할머니와 일꾼들, 부두에 있는 아이들, 죄수들 옷 같은 것들이 외국 책에 나오는 이미지를 닮았고 대만이라고 알아볼 단서는 그다지 없었다.  

 또한 하필이면 부서지기도 하고 눌려서 더 커다란 땅덩어리 한쪽이 되기도 하는 돌을 소재로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구나 하고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리워하는 일말고는 스스로 하는 일이 없는 돌이 희망을 가지고 있다가 바람에 날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책에서 말한 대로 간절히 바란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주기 어렵다.  

 또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자연스러운 입말을 놓치고 딱딱한 한자말을 넣은 곳이 여기저기 있어서, 읽어줄 때 그것을 바꾸어 가며 읽어야 했다. 그것까지 마음에 두고 책을 만들어 준다면 좋겠다. 그림책 작가가 애써 이룬 성과를 옮긴이가 또 조금 깎아내리면 미안한 일이고 이 책을 읽을 어린이들한테도 좋은 글 본보기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마치 그림 전시회에 다녀온 것처럼 수많은 멋진 그림을 본 느낌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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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 온 아이 - 세계문화유산 도시 경주로 떠나는 신비한 역사 여행 와이즈아이 나만의 책방 2
심상우 지음, 진선미 그림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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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 책과 같은 시도가 아주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어린이 책 글감을 넓힌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가지게 될까. 수천 년을 넘는 역사와 수만 년을 넘나드는 선사를 지닌 우리로선 이런 책이 많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런 책을 쓰는 데에는 용기도 필요했으리라. 우리는 신라시대를 입체감있게 설명하는 자료를 그다지 많이 갖지 못했고, 향가라는 노래를 가지고 퍼즐 맞추듯 그들 생각을 알아낸 것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상했던 작은 실망도 가졌고, 바라지 았던 감동도 얻었다.  

 무엇에 실망했는가? 

 나는 경주를 사랑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 마음 속에 잊지 않고 있던 그 곳을 지난해엔 세 차례나 갈 기회가 있었다. 요즘은 문화해설사가 있고, 마지막에 갔을 때는 멋진 설명을 들으며 역사 답사를 갔던 터라 나는 경주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쓸어 버리고 갈아 엎은 자본주의 깃발이 이곳을 남겨둔 것이 고마웠다. 그런 만큼 나는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첫째로 어색한 점은 이 책 제목이다.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이 책 내용이 제목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었는데, 이 책은 '신라에서 온 아이'보다 '신라에 다녀 온 아이'라고 해야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신라에서 온 그 아이가 신라에서 와서 여기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질 때도 다른 아이한테는 그저 꿈같이 가물가물 없었던 존재처럼 사라진다. 오히려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신라에 다녀 온 일을 한 아이가 더 돋보이는 일을 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제목에서 조금 어그러져 있다고 느꼈다.   

 그 다음은 '글쓴이말'이다.  

 아름다운 경주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황룡사터라는 것, 그곳에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것, 한 번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것 들이야 의심할 것이 없고 나도 멀지 않은 시간 간격에 세 번을 다녀온 터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화가 솔거를 만나고, 김대성을 만나고, 진평왕과 선덕여왕, 원효대사를 만나고, 이름도 모르는 신라 사람을 만났다고 할 때, 나는 그것은 거짓말일 거라고 느꼈다.  

 읽는 사람이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은 이 이야기와 같은 환타지 기법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3년 전, 초겨울 방금 신라에서 건너온 아이, 무웅이를 만났고 그 아이가 피리를 불어 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황룡사 건물들이 나타나고 탑도 구층을 이루며 세워졌다는 장면은 아름답기는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무웅이가 신라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었다니. 대체 그날 이후라는 건 뭘까? 며칠 동안 같이 지냈다는 건지, 날마다 가서 만났다는 건지.   

 그러면서 무웅이가 털어놓은 비밀이야기가 바로 이 책 '신라에서 온 아이'란다. 그리고 무웅이는 지금도 그 곳에서 피리를 불고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이 또한 거짓이라는 걸 바로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무웅이를 만난 정수라는 아이가 1인칭 시점에서 털어놓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무웅이가 털어 놓았겠는가? 게다가 이야기 속에서 '절대시간'을 거쳐 신라로 가고 지금 시대로 오고 하는 것은, 오로지 무웅이와 그 할아버지, 정수 이 세 사람 뿐이라고 했다. 그들만 만났다고 했는데 무웅이가 글쓴이를 만나 신라 이야기를 들려 주다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읽는이가 거짓이라고 느끼게 하는 어긋난 퍼즐이다.  

 그 다음은 내용 안에 있는 장치들이다.  

 정수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경주로 전학을 가는데 아프다고 해서 경주로 전학가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픈 엄마가 아프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없다. 그것이 또한 이 이야기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라에 갔을 때, 무웅이 집 앞에는 황금호두나무가 있고, 돌아올 때 호두 네 알을 준다. 그리고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소원을 빌라고 한다. 그 호두로 정수는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고 이야기는 끝난다. 더구나 그 아이 엄마는 아픈데...... . 

 대화글에도 몇 군데 어색한 곳이 있다. 경주가 고향인 아빠가 '저 뒤는 토함산이고, 저기 북쪽은 만호봉이고...'이렇게 설명하자 엄마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하고 말한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인 것처럼.  

 신라로 간 정수가 귀족아이 옷을 입고 떡장수 아주머니한테 떡을 사먹는데 아주머니가 "아유, 말씀도 잘하시네요."한다. 정수가 한 말은 "떡 좀 주세요."하고 "예."였다.  

 문장도 가끔 어색한데 '내 두 손바닥에는 황금호두가 두 개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에서 호두는 몇 개이겠는가. 호두는 모두 네 개다. 하지만 위 문장은 호두 두 개로 보여서 나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읽고 해야 했다. '내 두 손바닥에는 황금호두가 두 개씩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라고 써야 하는데 '씩'을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기철 씨 책을 읽으면, 나는 그가 꼭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주는 것처럼 느낀다. 초등학생 주인공이 1인칭시점으로 말할 때조차 글쓴이 자신으로 들린다. '일곱 번 째의 기적'을 읽고는 일곱 번째 기적을 나도 만날 지 모른다고 은근히 기다려 볼 정도다. 그래서 잘쓴 작품을 읽으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와 글쓴이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혹시 자신이 겪은 이야기인지 알고 싶다. 우리는 그럴 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꼼꼼히, 길게 말하는가. 그것은 내가 이 이야기를 즐겁게 단숨에 읽었고, 그 내용이나 기법, 시도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뚜렷이 다가왔다.   

 한 가지 아주 커다란 인상인데, 그것을 덧붙이자면, 우리가 경주를 볼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경주를 천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 보아야 한다. 신라 사람들이 그랬듯이 부처님 나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당시 시대정신이었던 불교를 아름답게 실현해낸 치열한 정신과 문화! 그것을 누릴 수 있었던 우리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불국사 대웅전에서 기도하는 정수한테 스님이 "정수님은 이 절의 주인이십니다. 부처님 집은, 간절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분이 모두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하고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있는 것이 감동을 주긴 했지만, 신라에 있는 절은 종교를 넘어 문화이고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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