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 온 아이 - 세계문화유산 도시 경주로 떠나는 신비한 역사 여행 와이즈아이 나만의 책방 2
심상우 지음, 진선미 그림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과 같은 시도가 아주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어린이 책 글감을 넓힌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가지게 될까. 수천 년을 넘는 역사와 수만 년을 넘나드는 선사를 지닌 우리로선 이런 책이 많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런 책을 쓰는 데에는 용기도 필요했으리라. 우리는 신라시대를 입체감있게 설명하는 자료를 그다지 많이 갖지 못했고, 향가라는 노래를 가지고 퍼즐 맞추듯 그들 생각을 알아낸 것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상했던 작은 실망도 가졌고, 바라지 았던 감동도 얻었다.  

 무엇에 실망했는가? 

 나는 경주를 사랑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 마음 속에 잊지 않고 있던 그 곳을 지난해엔 세 차례나 갈 기회가 있었다. 요즘은 문화해설사가 있고, 마지막에 갔을 때는 멋진 설명을 들으며 역사 답사를 갔던 터라 나는 경주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쓸어 버리고 갈아 엎은 자본주의 깃발이 이곳을 남겨둔 것이 고마웠다. 그런 만큼 나는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첫째로 어색한 점은 이 책 제목이다.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이 책 내용이 제목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었는데, 이 책은 '신라에서 온 아이'보다 '신라에 다녀 온 아이'라고 해야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신라에서 온 그 아이가 신라에서 와서 여기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질 때도 다른 아이한테는 그저 꿈같이 가물가물 없었던 존재처럼 사라진다. 오히려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신라에 다녀 온 일을 한 아이가 더 돋보이는 일을 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제목에서 조금 어그러져 있다고 느꼈다.   

 그 다음은 '글쓴이말'이다.  

 아름다운 경주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황룡사터라는 것, 그곳에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것, 한 번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것 들이야 의심할 것이 없고 나도 멀지 않은 시간 간격에 세 번을 다녀온 터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화가 솔거를 만나고, 김대성을 만나고, 진평왕과 선덕여왕, 원효대사를 만나고, 이름도 모르는 신라 사람을 만났다고 할 때, 나는 그것은 거짓말일 거라고 느꼈다.  

 읽는 사람이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은 이 이야기와 같은 환타지 기법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3년 전, 초겨울 방금 신라에서 건너온 아이, 무웅이를 만났고 그 아이가 피리를 불어 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황룡사 건물들이 나타나고 탑도 구층을 이루며 세워졌다는 장면은 아름답기는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무웅이가 신라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었다니. 대체 그날 이후라는 건 뭘까? 며칠 동안 같이 지냈다는 건지, 날마다 가서 만났다는 건지.   

 그러면서 무웅이가 털어놓은 비밀이야기가 바로 이 책 '신라에서 온 아이'란다. 그리고 무웅이는 지금도 그 곳에서 피리를 불고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이 또한 거짓이라는 걸 바로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무웅이를 만난 정수라는 아이가 1인칭 시점에서 털어놓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무웅이가 털어 놓았겠는가? 게다가 이야기 속에서 '절대시간'을 거쳐 신라로 가고 지금 시대로 오고 하는 것은, 오로지 무웅이와 그 할아버지, 정수 이 세 사람 뿐이라고 했다. 그들만 만났다고 했는데 무웅이가 글쓴이를 만나 신라 이야기를 들려 주다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읽는이가 거짓이라고 느끼게 하는 어긋난 퍼즐이다.  

 그 다음은 내용 안에 있는 장치들이다.  

 정수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경주로 전학을 가는데 아프다고 해서 경주로 전학가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픈 엄마가 아프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없다. 그것이 또한 이 이야기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라에 갔을 때, 무웅이 집 앞에는 황금호두나무가 있고, 돌아올 때 호두 네 알을 준다. 그리고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소원을 빌라고 한다. 그 호두로 정수는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고 이야기는 끝난다. 더구나 그 아이 엄마는 아픈데...... . 

 대화글에도 몇 군데 어색한 곳이 있다. 경주가 고향인 아빠가 '저 뒤는 토함산이고, 저기 북쪽은 만호봉이고...'이렇게 설명하자 엄마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하고 말한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인 것처럼.  

 신라로 간 정수가 귀족아이 옷을 입고 떡장수 아주머니한테 떡을 사먹는데 아주머니가 "아유, 말씀도 잘하시네요."한다. 정수가 한 말은 "떡 좀 주세요."하고 "예."였다.  

 문장도 가끔 어색한데 '내 두 손바닥에는 황금호두가 두 개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에서 호두는 몇 개이겠는가. 호두는 모두 네 개다. 하지만 위 문장은 호두 두 개로 보여서 나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읽고 해야 했다. '내 두 손바닥에는 황금호두가 두 개씩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라고 써야 하는데 '씩'을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기철 씨 책을 읽으면, 나는 그가 꼭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주는 것처럼 느낀다. 초등학생 주인공이 1인칭시점으로 말할 때조차 글쓴이 자신으로 들린다. '일곱 번 째의 기적'을 읽고는 일곱 번째 기적을 나도 만날 지 모른다고 은근히 기다려 볼 정도다. 그래서 잘쓴 작품을 읽으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와 글쓴이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혹시 자신이 겪은 이야기인지 알고 싶다. 우리는 그럴 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꼼꼼히, 길게 말하는가. 그것은 내가 이 이야기를 즐겁게 단숨에 읽었고, 그 내용이나 기법, 시도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뚜렷이 다가왔다.   

 한 가지 아주 커다란 인상인데, 그것을 덧붙이자면, 우리가 경주를 볼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경주를 천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 보아야 한다. 신라 사람들이 그랬듯이 부처님 나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당시 시대정신이었던 불교를 아름답게 실현해낸 치열한 정신과 문화! 그것을 누릴 수 있었던 우리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불국사 대웅전에서 기도하는 정수한테 스님이 "정수님은 이 절의 주인이십니다. 부처님 집은, 간절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분이 모두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하고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있는 것이 감동을 주긴 했지만, 신라에 있는 절은 종교를 넘어 문화이고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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